[새만금2003][삼보일배]2003년 5월 13일(화), 삼보일배 47일째

2003.05.15 | 미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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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13일(화), 삼보일배 47일째 – 화성 땅을 밟다  
옅은 구름이 끼었으며 후텁지근한 날씨

지난밤에는 길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자동차 소리에 방해받지 않고 오랜만에 조용하게 잤습니다. 온갖 종류의 나무가 있고 새들이 지저귀는 숲 속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은 순례단은 오늘도 어김없이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삼보일배를 시작하기 위해 차량의 흐름을 막고 도로를 건너는데, 코앞의 승용차 운전자가 경적을 계속 울려대더니 “아침에 지각인데 왜 길을 막고 난리냐? XXX…”고 삿대질입니다. 길어야 1분인데, 그 1분의 여유가 없는 각박한 세상을 살고있습니다.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제정구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 열두분이 순례에 참여하셨습니다. 1999년에 돌아가신 고 제정구 의원은 훌륭한 정치인이자 빈민운동가이셨는데, 1980년대초부터 김지하 시인과 함께 생명사상을 공부하시고, 생명운동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생명을 주제로 사셨던 고인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이 제정구를 생각하는 모임으로 가난·공동체·생명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인의 부인이신 신영자 여사님은 “진작 왔어야하는 건데 이제야 왔지만, 마음은 항상 삼보일배 순례단과 함께 있었다. 고 제정구 의원께서도 돌아가셨지만 지금 이 길을 함께 가시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순례 도중 간간이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박계동 전의원께서도 오셨는데, “잘못은 정치권에서 하고, 성직자들이 이렇게 고생을 하시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이를 계기로 사람들이 반성하고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30여년 전인 1980년대 초반, 문규현 신부님께서 전주 인근 고산본당에 계실 때에 신부님을 알게되었다는 어느 분은 “당시 신부님은 박정희·전두환 두 정권이 저질러온 온갖 못된 일들을 현수막으로 만들어 성당에 붙여놓았으며, 성당에서의 하시던 강론을 스피커로 방송하여 고산읍내 전체가 다 들을 수 있게 했다. 동네에서 행세께나 하던 예비군 중대장에게는 유인물과 책을 계속 보여주셔서 열렬한 농민회원으로 사람을 바꾸어 놓는 등 사람들을 많이 바꾸어놓았다. 문규현 신부님 다음에 오신 신부님은 신자들이 교육시켜 운동권신부로 만들었을 정도였다”는 일화를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길을 가는데, 길이가 1킬로미터는 족히 될 듯한 커다란 고개를 만났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후텁지근하게 더워 고갯길을 오르는 네분은 더욱 많은 땀을 흘리셨는데, 지나가는 차량들, 특히 버스와 트럭, 승합차, 4륜 구동차량 등 경유차량이 내뿜는 살인적인 검은 매연에 네분은 더욱 힘들어 하십니다.

그렇게 힘들게 오른 고개 마루에는 ‘유엔군 초전기념비’가 우뚝 서있습니다. 안내판에는 ‘1950년 6월 25일 북괴의 불법 남침으로 한국의 안정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파병된 유엔군은 1950년 7월 5일 오산시 내삼미동 죽미령 일대에서 최초로 북한 괴뢰군과 격전을 치루었다’고 쓰여있습니다.

‘북괴’, ‘괴뢰군’, ‘enemy’… 언제까지 이런 용어를 듣고 보고 써야할까요? 게다가, 바로 이 일대가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 사건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두 번씩이나 학살되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던 군인들은 웬일로 민간인에게 총을 겨누었으며, 희생당한 무고한 양민들의 넋은 누가 위로해 줄까요?

한낮이 되면서 점점 더워집니다. 오늘이 올 들어 가장 더운 날로, 기온이 30도 가까이 올라가면서 아스팔트가 후끈 달아오릅니다. 걷고만 있어도 등줄기가 끈적거리는데, 성직자들은 엎어질 듯 엎어질 듯 내리막길을 내려오시며 비오듯 땀을 흘리십니다.

윗도리가 땀에 흥건하게 젖으신 교무님은 절하기 위해 숙이실 때마다 얼굴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집니다. 최근 들어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시던 신부님은 잠깐 쉬어가겠다는 길잡이의 말에도 길바닥에 얼굴을 대고 한참동안 일어나시지 못했으며, 절을 하실 때 가장 먼저 벌떡벌떡 일어나시던 스님도 속도가 뚝 떨어졌습니다.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그토록 힘들게 삼보일배 고행하시는 모습에 곁에서 지켜보던 순례단 진행팀원 대여섯명이 눈물을 흘립니다. 저도 찍지도 않는 사진기를 얼굴에 대고 가린 채 눈물만 흘렸습니다. 한달 반 넘게 삼보일배를 지켜봤지만 네분이 이토록 힘겨워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기온이 올라갈텐데, 이분들에게 큰 탈이나 나지 않을까 매우 걱정입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백도웅 총무님 일행도 오셨는데, 그렇게 힘들게 고행하시는 네 성직자들의 손을 일일이 어루만져 주시며 아픔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이희운 목사님을 보시고는 눈시울을 붉히시며 손을 꼭잡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늦은 오후에는 시민방송 백낙청 이사장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이사장님께서는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하시며 “중앙 정치인과 지역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민심을 오도하여 자기 이익만 찾으려 하고 있다. 새만금갯벌을 죽여 전라북도에 이로운 것이 뭐가 있는가?”라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이렇게 힘겹게 고행을 하시는 가운데, 삼보일배 순례에 참여하시는 분들의 숫자는 점점 더 불어나고 있습니다. 강성구 국회의원님께서 이른 아침에 찾아오셨고, 민주당 오산화성지구당 최민화 위원장님과 은계동성당 신자 여러분, 대각사 신도 여러분, 12년 동안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전산화시킨 종림스님, 병점성당 송창현 신부님과 신자 삼십여분, 경남환경연합 김석봉 사무처장님과 임희자 정책실장님, 통영환경연합 박태민 사무차장님, 마산창원환경연합 장은주 간사님, 녹색연합 이병철 대표님, 수원가톨릭대학교 김건태 총장신부님과 부제 이십여분, 원주 문막성당 안승길 신부님, 작은안나의 집 방상복 신부님, 화성 용주사 총무스님과 신도 삼십여분, 전북 익산 청운회 임원 여러분 등 이백여명이 순례에 참여하셨습니다.  

오늘 아침과 점심은 오산 은계동성당, 저녁은 오산화성환경연합에서 각각 준비해주셨습니다. 멀리 강원도 홍성에서 오셨다는 비구니스님들께서는 맛있는 메밀전을 해오셨습니다. 도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일주일 가까이 쉬지 않고 삼보일배 순례를 계속하고 있는 순례단은 성직자들의 체력이 떨어진 점을 감안하여 수요일(5월 14일)에는 쉬기로 했습니다.

※지금 전북 부안군 계화도에서는 지역주민 고은식님께서 홀로 삼보일배를 하고계십니다. 지난 5월 7일부터 시작한 계화도의 삼보일배에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  http://nongbalge.or.kr

※순례가 한 달을 넘기면서 참여하시는 분들도 늘었는데, 삼보일배 순례에 참여하시려면 자신이 마실 물 정도는 준비해오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온 길 : 경기도 오산시 경기도산림환경연구원 – 화성시 병점 (5.5km / 새만금 해창갯벌에서 251.8km)

※앞으로 갈 길 :  경기도 오산시 – 수원시(5월 15일) – 의왕시(5월 19일) – 안양시(20일) – 과천시(5월 21일) – 남태령(5월 22일) – 서울 사당동(5월 23일) – 여의도(5월 25일) – 광화문(5월 31일)

– 5월 17일 : 수원 시민문화 한마당 (19시 – 만석공원)
– 5월 18일 : 불교인 삼보일배의 날
– 5월 19일 : 기독교인 삼보일배의 날
– 5월 20일 : 천주교인 삼보일배의 날
– 5월 21일 : 원불교인 삼보일배의 날 (과천 정부종합 청사), 환경단체 집중의 날
– 5월 22일 : 서울진입
– 5월 23일 : 문화예술계 집중의 날
– 5월 25일 : 새만금 갯벌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범 종교인 기도회 및 3보1배 행렬맞이 대회 / 여의도
– 5월 26~28 : 국회의사당 삼보일배
– 5월 30일 : 삼보일배 800리길 상징 800인 삼보일배의 날 / 서울역에서 명동성당
– 5월 31일 : 노무현 대통령의 새만금 사업 중단 결정 촉구대회 및 3보1배 행렬 맞이 대회 / 광화문
<일정은 날씨를 비롯한 여러 사정에 의해 바뀔 수 있습니다>

생명과 조화의 땅 새만금갯벌을 파괴하는 방조제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
새만금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삼보일배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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