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은 ‘환상의 섬’이다. 나타났다 사라지고 없어졌다 다시 보이는 신비로운 섬이다. 그 섬은 인천에서 뱃길로 한시간정도의 거리에 있는 서해 저편. 옹진군 인근 해역의 모래섬 ‘풀등’이다. ‘풀등’은 썰물 때 드러나고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기는 거대한 모래 섬이다. ‘풀치’라고도 불리는 ‘풀등’은 은빛 모래알이 눈부신, 하얀 모래섬이 바다에서 떠오르는 것으로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은 약 6시간정도 그것은 마치 이어도의 전설처럼 바다 깊은 곳에서 태고의 신비를 품고 솟아오른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와 남해 일원에는 현대판 ‘모세의 기적’을 이루는 현장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잇는 바닷길이 드러나는 정도일 뿐, 바다 밑에 숨어 있던 광활한 모래밭이 솟아올라 지도에도 없는 또 하나의 섬을 이루는 장관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이작도의 남부해안과 사승봉도 주변 해안 지역으로 썰물 때 동서 2.5㎞, 남북 1㎞ 규모의 모래톱이 드러나는 ‘풀등’을 중심으로 해서 자월도와 덕적도 지역은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는 모래해안과 펄갯벌이 섬 주변에 나타나고 있다. 천연적인 방파제 역할을 하기도 하는 풀등주변지역은 대이작도 남쪽 앞바다는 희귀성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생태적으로도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꽃게와 새우, 넙치 등 해양생물의 서식 및 산란지로 유명하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5월 풀등 주변을 대상으로 용역조사를 통해 광어와 꼬마보라맛조개 등 대형저서동물이 185종이 출현하고, m²당 밀도도 923개체나 된다고 발표했다. 해양수산부는 이 조사에서 ‘새만금 갯벌’을 능가하는 생태계의 보고라는 결론을 얻었다. 정부도 이 지역의 생태학적 가치를 인정하여 올해부터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 고시했다.정부의 생태계보전지역 지정 움직임에 해당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에서는 ‘풀등’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때문에 환영의 입장을 밝힌바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문제의 핵심은 생태계보전지역내에 바다모래채취지역의 포함여부이다. 바다모래채취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을 생태계보전지역으로 포함시킬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지정의 의미가 살리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의 생태계보전지역지정계획은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청회 당시까지만 소이작도 인근 동백도와 벌안도, 사승봉도, 상공경도, 하공경도, 금도 등 무인도와 소·대이작도, 승봉도 등 유인도를 포함해 풀등 주변지역으로 74.6㎢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현재 해사채취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3년 12월 31일 지정, 고시된 생태계보전지역안은 면적이 55.7㎢로 현재 해사채취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 19㎢를 제외한 채 축소 발표하였다. 이로 인해 ‘풀등’ 하부 안쪽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바다모래를 채취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으며, 결과적으로 ‘풀등’을 비롯한 해양생태계, 자연경관 그 어느 것도 보전할 수 없는 결과로 생태계보전이라는 생색만 내고 만 꼴이 되었다. 생태학적 가치를 인정하여 보전하려는 ‘생태계보전지구’지정이 결과적으로 아무런 실효성이 없게 된 셈이다.
지역주민들은 해양수산부의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으로 ‘풀등’ 주변지역에서의 바닷모래 채취가 금지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모래채취지역만 빼고 생태계보전지역으로 묶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라며 이로 인해 사실상 ‘풀등’보전은 물 건너갔다고 했다. 현재 대이작도를 중심으로 자월도 남단해안과 사승봉도 주변 해안에 펼쳐진 풀등의 규모는 50만평 규모였으나 최근 10여년간 계속된 모래채취허가로 모래가 급격히 쓸려나가면서 대이작도 주변에만 30만평의 풀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초부터 20여년간 풀등지역을 포함해 인천앞바다에서 퍼올려진 모래가 2억㎥가 넘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 지역이 국내최대의 바다모래 공급지였다. 이러다 보니 어민들은 꽃게와 새우, 넙치 등의 서식 및 산란지로 유명한 이곳이 바다모래 채취로 어족자원의 씨가 마르고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해수욕장을 생활터전으로 삼고 있는 인근의 크고 작은 해수욕장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모래채취로 인하여 옹진군의 승봉도 이일레해수욕장과 대이작도의 큰풀안과 작은풀안 해수욕장 등도 모래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모래사장 군데군데가 자갈밭이 되고, 곳곳에 갯바위가 드러나는 흉흉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어 지역주민들은 모래유실로 자갈이 드러나자 해수욕장에 다시 모래를 쏟아 부어야 할 판이라고 한다. 해양생태계 파괴와 어족자원 고갈, 자연경관 훼손으로 옛 모습을 잃어 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미 하천모래가 바닥이 나 바다모래를 채취하고 있지만 모래가 도깨비방망이처럼 무한정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건축이 계속되는 한 국내 바닷속을 다 헤집어도 필요한 양을 다 충당할 수 없을 것이다. 브레이크없이 달려가는 전차처럼 바다모래를 무작정 퍼내면 어떤 파국을 맞게 될 것인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천연방파제를 스스로 허물어 뜨리는 꼴이니 말이다. 정부는 옹진군내의 바다모래 채취량은 올해 2천300만㎥로 우리나라 바다모래량(3천9백40만㎥)의 58.4%와 수도권 전체 모래수요량의 50%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옹진군의 모래채취허가를 내리게 되면 웅진군 일대 앞바다를 포함한 서해안의 어장피해와 생태계 및 환경파괴를 부채질 할 것으로 보인다. 바다 모래채취로 ‘풀등’ 역시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모래채취를 금지하지 않는다면 환상의 섬 ‘풀등’는 영원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부당국의 대책을 촉구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