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총선, ‘지지자’와 ‘소비자’가 아닌 연대하고 행동하는 ‘시민’으로

2024.03.07 | 탈핵

작년 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22개국이 ‘2050년까지 핵발전 3배 확대’ 서약에 참여했다. 과연 현실성 있는 이야기일까? <세계 핵산업 동향 보고서>의 저자 마이클 슈나이더의 인터뷰(탈핵신문 2024.1.17. 참고)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년 동안 전 세계에서 103기의 핵발전소가 새로 가동된 반면 같은 시기 110기가 가동 중단되었다. 이 가운데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20년 동안 57개의 핵발전소가 줄어든 셈이다. 핵산업은 이미 내리막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향후 폐쇄될 핵발전 숫자를 고려할 때, 3배 확대를 위해서는 지난 20년간 평균 원자로 건설률의 6배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이클 슈나이더는 핵발전 3배 확대 서약은 완전히 비현실적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은 어떤가? 윤석열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전국을 돌며 핵발전 진흥책을 내놓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원전 없으면 반도체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창원에서는 ‘원전’ 관련 3조 3천억 원의 일감과 1조 원의 특별금융 지원을 약속하면서 핵발전 특별법 제정 추진 의사를 밝혔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담길 신규 핵발전소 규모가 3~10기에 달한다는 보도도 흘러나온다. 우리는 세계적 흐름과 현실에 눈감은 채 막무가내로 폭주하는 정부와 대통령을 마주하고 있다.

정치의 문제다. 과연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얼마 전 1만 6천 명 대상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력 생산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묻는 질문에, ‘원전 확대’(23.7%)보다 ‘재생에너지 확대’(59.1%)가 두 배 이상 높게 나왔다. 한편 이 조사는 ‘기후 의제에 대해 알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후 의제를 중심으로 투표할 의사’가 있는 ‘기후유권자’ 규모를 추산했다. 기후유권자는 응답자의 33.5%였고 남성과 고연령층이 다소 높았다. 이 분석 결과에 대해 주변에서 의외라는 반응들이 있었다. “이렇게나 많다고?”라는 질문이 많았다. 필자가 기후나 환경 관련 행사에서 주로 만났던 참가자의 성별과 연령층과도 차이가 있었다. 그러다 (머리로) 알고, (가슴으로) 반응하고, (마음속에) 투표 의사를 가진 것과, (손과 발로) 행동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람들과 만나 함께 고민을 나누고 행동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 필자가 만난 이들은 기후유권자 중에서도 그런 시민들이었을 것 같다.

우리는 아직 현실에서 ‘기후유권자’와 ‘탈핵 유권자’를 만나지 못했을 수 있다. 무작정 낙관해서도 안 되겠지만, 마냥 비관할 필요도 없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개인’이 아니라, 조직된 ‘시민’의 힘이 정치를 바꿀 수 있다. 특정 후보의 ‘지지자’나 ‘팬덤’, 특정 상품의 ‘소비자’가 아니라,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연대하고 행동하는 ‘시민’들이 기후를 살리고 탈핵을 이루는 씨앗이다. 밭을 탓해서도 안 되고 날씨를 탓할 수도 없다. 이제 씨앗을 심을 때다.

  • 이 글은 탈핵신문 2024년 3월(119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 글: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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