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장 건설 반대를 위한 국민행동 출범식에서

2003.02.10 | 미분류

조용했던 대학로가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울진이나 영광에서 올라오신 지역주민들의 울분에 찬 얼굴과 원불교 교무님들의 상기된 표정에서 오늘 집회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1,0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을 가득 메웠고 우리의 구호가 하늘에 퍼졌다. 적절한 조사와 연구, 지역주민에 대한 배려 없는 무책임한 정부의 발표에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핵폐기장 건설 반대를 외치는 우리들에게 지나가는 시민들이 툭툭 한마디씩 던진다. ‘우리가 사용해서 생산된 핵폐기물은 우리가 처리하는 것이 당연하며, 어느 한 지역이 희생할 수밖에 없으며, 자기 지역만은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님비가 아니냐’고. ‘2008년이면 핵폐기물 처리 공간이 한계에 달한다고 하던데, 그간 생산된 핵폐기물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또 ‘청정에너지라 여겨지고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원자력을 대신할 대안에너지가 현재 존재 하냐’고.

쏟아지는 그들의 질문에 우리는 “대안은 늘 있어왔다” 라고 말하고 싶다.

날로 증가하는 각 국가의 환경규제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기후협약의 대책으로 정부의 산자부와 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는 원자력 산업을 들고 있다. 눈에 보이는 배기가스나 연기를 내뿜지 않으면 과연 청정에너지인가라는 점에 의구심이 든다. 그들의 주장하는 데로 원자력이 청정에너지라면 왜 세계적으로 탈핵 열풍이 일어나는지, 체르노빌과 같은 사태로 인해 발생되는, 생태계에 미치는 직간접 영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또 원자력 산업의 기반인 우라늄은 향후 20 ~ 30년 이내에 그 매장량의 한계를 보일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 이후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대안이 과연 우리 정부에게 있는가 의문이다. 타국처럼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없는 상황에서 단기적인 해결책에만 몰두하고 오히려 사양산업인 핵산업을 증가시키는 정부와 한수원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정말 묻고 싶다.

현재 울진과 영광 등의 핵발전소에서 발생되는 핵폐기물은 임시보관소에 있다. 핵폐기물은 수 만년 동안 방사능을 내뿜는 플루토늄이며 이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또 임시보관소는 압축작업으로 인해 현재 발생되는 핵폐기물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한 돈을 들여 핵폐기장을 만든다는 것은 또 다른 핵발전소의 건설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제환경경제연구원에서 핵발전소 부지와 관련된 후보지 조사에서 영광은 불리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영광의 연안해역 수심이 낮기 때문에 500톤 이상의 배가 해안으로 접근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영광의 핵폐기물은 나갈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 이러한 적절치 못한 부지 선정은 정부가 그 동안 핵발전소 부지 선정 기준을 지역의 적합성보다는 주민들 수용성에 맞추었기 때문이며 이는 복지부동한 정부의 졸속행정의 대표적 사례라 사료된다. 또 울진은 과거에 이미 핵폐기장을 건설하지 않겠다는 약속(1994년)을 하였고 공문까지 보낸 상태(2000년)이나 이번 핵폐기장 후보지에 또 다시 포함되는 불운이 생겼다. 정부의 도덕성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한편 영광과 고창, 울진과 영덕은 거리적 측면에서 가깝기 때문에 정부는 ‘3000억 지원’이라는 달콤한 미끼로 두지역의 주민들을 이간질시키면서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3000억이라는 지원금은 보상금의 형태로 지역주민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민 복지 시설 지원’이라는 명목 하에 골프장 건설, 관광지 개발 등의 부유층 배불리기 형태로 제공될 것이며(산업자원부에서 제공한 보도자료에 명시되어 있음), 또 다른 환경 파괴적인 개발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4개 지역의 핵폐기장 건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장은 핵과 같은 위험한 물질을 우리나라 어느 곳에도 둘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피해를 줄뿐 아니라 그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핵폐기장 부지를 결정하는 중대사안을 주민들의 의견수렴과 정확한 데이터에 대한 조사없이 밀실에서 결정하는 정부의 졸속정책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위해 생업을 접고 그 먼 거리를 달려 이 자리에 모인 지역주민들에게 과연 누가 님비라는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우리 모두가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쓰고 있는 원죄인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문의 : 녹색연합 대안사회국 (02-747-8500), 이버들 간사(011-9402-4528)

[출범선언문] 핵폐기장 백지화 핵발전 추방 반핵국민행동 출범식과 전국 규탄대회

오늘 우리는 정부와 (주)한국수력원자력에 의해 비민주적이고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결정된 핵폐기장 후보지 선정을 백지화하고 핵발전 중심의 위험하고 시대착오적인 에너지 정책을 바로잡고자 이 자리에 모였다.



정부는 지난 십 수년간의 핵폐기장 건설 시도가 왜 번번이 실패했는지 아직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역대 주무부처들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이 막연히 안전하다는 주장만 내세우면서, 공개적인 토론보다는 검은 돈으로 주민을 회유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이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주민들은 고향을 팔아 넘기라는 유혹을 단호히 거부했고, 핵폐기장 사업은 최소한의 신뢰와 정당성마저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번 선정 과정에서도 정부와 한수원은 지역에 유치위원회를 조직하여 배후 조정하고 금품을 살포하다가 주요 언론에 폭로되었고, 국민적 합의와 주민 설득, 과학적 조사는 아예 뒷전으로 미룬 채 졸속으로 후보지를 발표하는 데 급급하였다. 우리는 최소 300년에서 길게는 수십만 년 간 생태계에서 격리시켜야 하는 지구 상 최악의 맹독성 물질인 핵폐기물을 이렇게 무모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더욱이 이번 핵폐기장 후보지 발표는 핵발전소의 대량 추가 건설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온 국민과 자연환경을 위태롭게 하는 위험천만한 정책이다. 우리 정부는 현재 가동되고 있는 18기의 핵발전소에 더해 2030년까지 또 18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핵발전소의 위험성과 비경제성을 뒤늦게 깨닫고 핵발전을 포기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1979년 미국 드리마일 핵사고와 1986년 옛 소련 체르노빌 핵사고 이후 미국에서는 단 한 건의 핵발전소도 추가로 건설되지 않았으며, 유럽연합 15개 나라 중 14개 나라들이 핵발전소 건설을 포기하거나 단계적으로 포기하고 있다. 대신 이들은 태양광, 풍력 등 대안 에너지와 에너지 효율화라는 친환경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현실로 만들고 있으며 핵 산업은 천덕꾸러기 사양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세계의 바람직한 추세를 쫓아 에너지 정책을 전환한다면 우리도 핵폐기장 건설을 서둘 이유가 전혀 없다. 중저준위 핵폐기물은 부피를 줄이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대규모 시설을 시급히 건설할 필요가 없어졌고 현재의 저장시설을 활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정부는 현재의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어쩌란 말이냐며 국민과 주민을 협박하고 있지만, 사실은 누구의 동의도 얻을 수 없는 핵발전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어떻게든 핵폐기장을 먼저 건설하겠다는 조급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번에 핵폐기장 후보지로 선정된 지역의 주민들은 이미 수도권 등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핵발전 시설로 큰 고통을 당해왔다. 이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올바르지 않다. 더구나 정부는 이번에 선정하는 부지에 고준위 핵폐기물도 저장하겠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소를 만드는 데 성공한 나라는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 어떤 과학기술에 의해서도 수만년 동안 방사능을 내뿜는 플루토늄을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시설은 주민들만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마저 위협하게 될 것이다.

정부의 핵폐기물 부지 선정 정책은, 도덕성과 합리성, 과학적 근거를 잃어버렸으며 세계적인 추세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자 오늘 <반핵국민행동>을 출범시킨다. <반핵국민행동>은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아 핵폐기장 건설을 백지화시킬 것이다. 나아가 세계적인 사양산업인 핵발전에 아까운 국가의 역량을 낭비하지 않고 미래지향적인고 친환경적인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도록 국민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2003년 2월 6일

핵폐기장 백지화 핵발전 추방 반핵국민행동

참가단체 /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광주환경사제모임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노동건강연대 녹색연합 녹색평화당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불교환경연대 사회당 서생면생존권수호위원회 성남시민모임 에너지대안센터 영덕핵폐기장반대투쟁위원회 울진원전반대범군민대책위원회 원불교천지보은회 월성원전반대범국민대책위원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젊은생태주의자 참된의료실현을위한청년한의사회 천주교부산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광주대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환경연대 청년환경센터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사)푸른평화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한국불교환경교육원 학술단체협의회 한국노총 한국여성단체연합 호남지역핵폐기장반대대책위 환경과공해연구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시민연대 핵폐기장반대를위한고창군민대책위 (2003년2월5일 현재)

공동대표 / 이선종 교무, 김영락 목사,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최병모(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표), 최열(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박원순(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박경조(녹색연합 공동대표), 전민용(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대표), 정현백(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이범석(영덕핵폐기장반대투쟁위원회 위원장), 이상복(핵폐기장반대를위한고창군민대책위원회 위원장), 편봉식(핵폐기장반대영광군민대책위원회 상임의장), 황성섭(울진원전반대범군민대책위원회 위원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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