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재봉화백
사람 뜻처럼 안 되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아침마다 지각 시각은 매번 신기록을 경신하고, 늘어가는 옆구리 살은 어느새 두툼한 손잡이로 변해버렸다. 모처럼 지적 수준을 높이겠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무리하게 구입한 교양서적과 영어원서에는 먼지만 수북하다.
이것뿐이랴.
지난 1일, 특별자치도 제주에는 손님 많은 토요일에 대규모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 오전 10시 36분부터 2시간 30분가량 정전이 발생하자, 제주 일대는 큰 혼란에 사로잡혔다. 아파트 주민이 엘리베이터에 갇히는가 하면 회사는 컴퓨터와 전화 불통으로 업무가 마비됐다. 교통신호기가 작동을 멈춰 극심한 교통 혼잡이 벌어졌으며, 제주도 내 지하상가는 암흑으로 변해버렸다. 새삼 전기쓰임이 이렇게 다양했나하고 반문하게 된다.
이번 사고를 통해 일반에 알려지게 되었지만, 제주도에는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발전소가 있다. 그것도 3개씩이나. 하지만 특별한 자치도답게 전기수요가 많기 때문에 자체 발전으로는 제주도 전력수요량의 절반가량만 공급할 수 있다.
나머지 전기는 전남 영광 원자력발전소에서 해남으로, 해남에서 바닷길을 뚫어 들어오는 101Km의 해저송전케이블을 통해 공급받는다. 이번 사고는 해저송전케이블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장이 발생해 절반의 전력이 끊어졌고, 전력이 부족해지자 과부하가 발생해서 나머지 발전소들도 가동되지 않으면서 발생했다.
사고가 발생하자, 많은 언론들은 호떡집에 불난 듯, 인재라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물론 1997년 이후 해저케이블 관련 정전이 26차례나 발생했음에도 관리에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전력 과부하가 발생할 경우 자동으로 전력수요를 차단하도록 설계된 제어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갑자기 공급량이 폭주해버려 발전소 가동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번 정전사고를 통해 되짚어볼 문제는 ‘중앙집중식 전력시스템’이란 본질적인 사안이다. 그동안 정부는 전력시장 내에서 자유로운 독재자로 군림하면서, 무한정 공급이라는 모토 하에 대규모 발전소에 의지한 전력정책을 펼쳐왔다. 산업경기를 위해 기업 입맛에 맞춘 값싼 에너지가 필요했고, 혹시 모를 핵무기 개발을 위해 원자력 사용이 필요했으며, 군사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을 돌리기 위한 복지수단으로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삼박자가 고루 맞아 정부는 우후죽순으로 대형발전소 건설을 주도했고, 현재까지도 중앙집중식 전력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이 같은 정부독점의 중앙집중식 전력정책은 몇몇 지역의 대형발전소에 전국 전력사용을 의지하게 만들어 버린다.
또한 중앙집중식 전력시스템은 재생가능에너지의 싹을 잘라버린다. 이미 오랜 기간동안 기반을 다져온 대형발전소와 이제 개발과 보급을 시작하고 있는 재생가능에너지는 현 시장시스템에서 경쟁하기 어려우며, 진입장벽 또한 높다. 따라서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한 기반 투자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부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나, 정부는 말뿐인 지원대책만을 내놓을 뿐이다. 대형발전원인 원자력과 화력, 송·변전 시설에 투자되는 일부분이라도 재생가능에너지에 투자했다면 재생가능에너지 소비 1%는 예전에 훌쩍 넘었을 것이다.
제주도는 분산형전원인 열병합발전소 건설을 10차례에 걸쳐 정부에 건의했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은 여전히 송전선로를 늘려 전력을 외부에서 수급하는 중앙집중식만 고집하고 있다. 비용절감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는 정부의 변명이 고리타분하게 들리는 것은 비단 나 뿐 만일까. 모르쇠만 일관하는 정부가 황사먼지처럼 답답하게 느껴진다.
위 글은 시민의신문에서 ‘에너지’를 주제로, 기획연재 되고 있는 ‘이버들의 에너지, 에코 리듬 타다’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