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미군 한강 독극물 무단방류 사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어두컴컴한 미8군 영안실에서 군무원이 시체방부 처리에 쓰이는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싱크대에 붓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화면은 천천히 영안실에서 한강으로 바뀌면서 ‘괴물’의 등장을 암시한다. 영화 속 미군기지 한강독극물 방류사건은 2000년 2월 9일, 미8군 영안실에서 발생해 그 해 여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사건이다. ‘한강’과 ‘괴물’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하던 봉준호 감독은 뉴스를 보고 이 사건을 괴물 탄생의 배경으로 삼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은 그날 있었던 사건과 그 후의 일들에 대해 집요하리만큼 많은 질문을 했다.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2000년 7월 12일, 마른바람도 불지 않는 더운 여름날 오후, 연차를 내고 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미군기지 환경오염관련 제보가 있으니 당장 용산으로 달려가라는 것이었다. 처음 받은 활동비로 구입한 카메라를 들고 용산으로 갔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의 활동가들과 제보자를 만났다. 제보자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제 막 환경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내가 판단하기에도 심상치 않은 내용들이었다. 2000년 2월 9일, 미8군 영안실에서 부소장 맥팔랜드의 지시로 포름알데히드 20상자를 영안실 싱크대에서 방류했다는 것이다. 포름알데히드는 미군병사들이 예기치 않은 사고로 한국에서 사망했을 때, 본국까지 송환하기 위해 시체에 주입을 해서 썩지 않도록 하는 데 쓰는 용액으로 독성이 강한 발암물질이다.
이렇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항의를 했지만 심한 모욕만 당했다고 한다. 결국 제보자는 475㎖들이 480병을 아무런 정화처리 없이 다 쏟아 버릴 수밖에 없었고, 두통과 메스꺼움 때문에 3주 동안 병가를 냈다. 이 사실을 다시 미8군 사령부에 보고했지만 우리를 만나기 이틀 전에 “강물에 희석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고심 끝에 이 일이 그냥 묻혀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고,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해 온 운동본부에 이 사실을 알렸고, 운동본부는 환경 사안이라 녹색연합에 연락을 한 것이다.
현장 사진을 확보하고 증거가 될 만한 서류와 자료를 수집했다. 기자회견은 바로 다음날로 잡았다. 사무실에서 밤을 새 보도 자료를 작성했다. 포름알데히드 성분과 이것이 인체에 미치는 피해에 관한 정보를 뒤졌고, 새벽에 전화해 의사의 자문을 얻었다. 다음날 녹색연합과 운동본부는 “미8군 독극물 한강 다량 방출”에 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언론의 반응이 뜨거웠다. 주요 일간지 1면 톱기사로 다뤄졌고, 거의 모든 방송이 비중 있게 보도했다.
다음날 7월 14일 녹색연합, 운동본부, 한국노총은 ‘주한미군 독극물 방출 규탄 및 SOFA 전면개정 촉구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나는 한미 SOFA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날의 시위가 가졌던 중요한 의미는 부끄럽게도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의미라 함은, 포름알데히드 방류 사건은 미군기지에서 일어난 단순오염 사고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런데 한미 SOFA 문제를 거론하면서, SOFA에 ‘환경’ 규정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을 지적한 것이었다. 녹색연합은 바로 토머스 슈워츠 주한미군 사령관과 맥팔랜드를 유해화학물질관리법과 폐기물관리법, 수질환경보전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환경단체가 미군 환경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주한미군 사령관을 형사고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민단체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미군은 2000년 7월 24일 다니엘 페트로스키 미8군 사령관(Lt. Gen. Danial J. Petrosky) 명의로 독극물 무단방류에 대해 공식사과를 한다. 미8군 사령관이 주한미군의 잘못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한 것은 미군이 한국에 주둔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같은 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는 회의를 열어 한미 SOFA의 전면개정을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로부터 3일 뒤, 환경부도 SOFA 개정 협상에서 환경관련 규정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줄 것을 요구했다. 대한민국의 언론, 국회, 행정부가 주한미군과 관련한 사안에서 이렇게 한목소리를 내는 건 실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침내 미군의 환경오염 사고는 한미 SOFA 개정 협상의 주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결과적으로 2001년 한미 SOFA 개정 시 환경관련 조항을 신설하게 되었다.
그해 여름 내내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을 시작으로 원주 캠프 이글과 파주 캠프 에드워드, 인천 문학산 기름오염 사고 현장을 쫓아다녔다. 미군기지 오염현장을 조사하고, 발표하고, 시위하고, 언론에서 떠들고, 그렇게 2000년 내내 미군을 못살게 굴었다. 어느새 나도 녹색연합에서 ‘야생동물’ 담당자가 아니라 ‘미군기지 환경감시’ 담당자가 되어 있었다. 중심업무는 뒷전이고, 우연히 맡게 된 사건 때문에 미군기지와 관련한 일을 집중해서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약 3년을 미군기지 환경문제를 담당하면서 뛰어다녔다.
2006년 영화 ‘괴물’은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나는 독극물방류 사건과 관련 있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궁금해졌다. 처음 떠오른 사람은 ‘괴물’을 탄생시킨 맥팔랜드였다. 괴물이 흥행가도를 달릴 때 그는 여전히 영안실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야. 너 바보야? (Do what the fuck I tell you, are you stupid?)” 맥팔랜드는 무단방류를 거부하는 한국인 군무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하수구에 버릴 것을 명령했다. 그날 이후 그의 인생은 참으로 피곤해졌다. 환경단체가 그를 ‘수질환경보전법’ 위반으로 고발했고, 그는 인터뷰를 하려는 기자들을 피해 다녀야 했으며, 그의 집 앞에서는 1인 시위가 벌어졌다. 잠시 미국으로 피했다가 잠잠해진 줄 알고 입국하던 날 기자들에게 사진이 찍혀 본의 아니게 신문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1년이 넘도록 한국 검찰이 기소결정을 미뤄 다행이다 싶었다. 언론이 부담스러웠던 검찰이 500만원에 약식기소를 결정했을 때, 그래도 귀찮은 일이 끝나는가 싶었다. 문제는 재판부였다. 재판부가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한 것이다. 사회적인 관심이 큰 사안인데 검찰이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고 약식 기소한 것도 문제고 피의자 심문이 한 번도 제대로 진행된 적이 없다면서 정식 재판 절차를 거칠 것을 결정했다. 재판부의 결정은 우리에겐 반가운 소식이었고, 검찰과 맥팔랜드에겐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래도 맥팔랜드는 꿋꿋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3년 내내 법원 출두를 거부했다. 그는 ‘한국 법원에 재판권이 없다’고 생각했다. 미국시민이며, 치외법권 지역이나 다름없는 미군기지에서 일을 하는 자신이 한국법에 따라 재판을 받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여긴 것이었다. 결국 법원은 맥팔랜드 없이 재판을 진행해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다시 1년 뒤인 2005년 1월 19일에는 2심에서도 징역 6개월의 실형을 확정된 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재판이 끝나고 이제 다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엔 영화가 만들어지고, 다시 신문지면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조금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미8군은 자신에게 30일 정도 감봉 처분만 했고, 마음 고생했다고 영안실 소장으로 승진까지 시켜줬으니 말이다. 사실 지금도 그가 영안실 안에서 다시 포름알데히드를 씽크대에 쏟아 붓는다고 한들 감시를 하거나 문제를 삼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괴물’이라는 영화는 잠시 심기를 불편하게 할 뿐, 흥행을 하건 말건 그는 개의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송강호가 ‘괴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면 제보자는 ‘괴물’의 탄생을 막기 위해 직접 행동했다. 맥팔랜드의 지시에 “이 용액을 하수구에 그냥 버리는 것은 서울의 주요 식수원인 한강에 암과 출산장애를 유발하는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그대로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우리의 식수원이 오염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명령을 거부했다. 결국 강압적인 명령에 굴복 포름알데히드를 하수구에 버렸고 그 후 두통과 메스꺼움으로 3주간 병가를 냈다. 제보자는 미군의 한국의 환경에 대한 배려 없음과 맥팔랜드의 인격적 모독에 분노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공론화해야 한다는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최악의 경우 일자리를 잃을 생각까지도 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 제보자를 통해 이 사건은 발생한 지 5개월 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예상한 대로 제보자는 재계약에서 탈락,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사건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대목이다. 제보자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분은 영화 ‘괴물’을 봤을까. 만약에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알 길이 없다. 확실한 것은 영화 속 괴물에 맞서 싸운 것이 평범한 가족이었듯이 미군기지 환경오염에 맞서 싸운 것은 정부가 아니라 한 시민의 행동하는 ‘양심’이었다는 것이다.
감독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영화가 개봉된 시점이 절묘했다. 당시 한국정부는 반환 예정인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을 어떻게 정화할 것인가를 두고 미군과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정화책임을 다하겠다던 미군이 15개 기지를 정화하지 않고, 한국정부에 넘기는 일이 발생했다. 협상에서 밀린 정부는 앞으로 반환받을 미군기지에 대한 정화처리 비용을 대부분 한국이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오염자 부담 원칙’을 강조하며 미국 측이 대부분 부담할 것이라던 정부의 장담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후에 밝혀졌지만 반환예정인 미군기지의 토양 오염과 지하수 오염은 기준치를 갖다 들이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높았다. 반환된 미군기지는 아이들이 공부하며 뛰어놀 놀이터가 될 수도 있고, 시민들을 위한 공원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공간이 오염물질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미국의 압력에 국방부가 굴복하고, 국방부가 환경부에 압력을 넣어 발생한 결과였다. 때맞춰 개봉한 ‘괴물’이 흥행가도를 달리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은 시사회에 참석해 ‘한국영화의 힘’을 보여주는 ‘괴물’과 같은 작품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발언을 했고, 반면 환경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은 영화 괴물의 흥행에 난감해 했다고 한다.
영화 ‘괴물’은 힘으로 국민들을 억압하면서, 스스로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 권력기관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속 모습과 실제 모습이 어찌 그리 닮았을까? 언제 한번이라도 정부가 먼저 나서서 미군기지에서 벌어지는 환경과 인권 문제를 조사하고, 불평등한 SOFA를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던가? 미군기지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과 피해자들에 대해 분노하고 제도를 만들며 바꿔 온 것은 늘 국민들이었다.
영화 ‘괴물’은 맥팔랜드와 주한미군들에게, 반환 미군기지 협상을 담당했던 국방부와 환경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에게 불편하고도 씁쓸한 영화였으리라고 생각된다. ‘괴물’을 본 1,000만 관객 중에서 2000년 사건을 기억하거나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사회에서 미군이나 미군기지가 더 이상 범접하지 못할 대단한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군이 범죄를 일으켜도 다 풀려나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녹색연합이 맥팔랜드 사건을 조사하고 발표했을 때만 하더라도 반미단체로 불렸다. 그러나 매향리 오폭사건, 맥팔랜드의 독극물 방류사건, 캠프롱 기름 유출, 녹사평역 지하수 오염 등 미군 환경오염 사고가 잇따르던 2000년과 2001년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미군 환경오염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미군이라 하더라도 한국의 환경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오염자 부담 원칙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미군기지 환경문제를 같이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군이 일으킨 범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1996년, 녹색연합의 한 활동가가 한겨레21과 함께 전국의 미군기지에 대한 환경오염 조사를 한다고 했을 때, 사무처장과 다른 활동가들의 반응은 “왜 하필 미군기지냐?”라는 것이었다. 그 선배는 이미 전국에 100여개에 가까운 미군기지가 산재해 있고, 오염문제도 심각한데, 미군기지에 관한 것이라면 누구도 건드릴 생각조차 못한다고 했다. 군기지 환경문제는 미군이든 한국군이든 인간의 삶터와 자연을 파괴하는데, 기지문제를 다루는 것은 결국 평화운동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나 역시 ‘환경’과 ‘평화’를 연결해 이해하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다만 미군기지 환경문제를 다루면서 나는 환경문제가 단순히 ‘오염’과 ‘치유’, 야생의 ‘보전’에 관한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환경은 삶의 조건과 삶터 자체에 대한 문제였다. 우리 삶의 조건과 삶터를 황폐하게 하는 군사기지는 그 자체로도 문제가 된다. 매향리 사격장의 존재가 그랬고, 평화롭던 논과 밭이 미군기지로 바뀔 운명에 놓여 있는 평택 대추리만 봐도 알 수 있다. 정의로움이 힘을 얻어 촛불의 물결을 이루기까지 누군가는 계속해서 싸울 수밖에 없다. 문정현 신부님처럼, 운동본부처럼.
필리핀 클라크 미군기지에서 장애로 태어난 까만 눈동자의 아이들. 미군이 남기고 간 오염물질은 독이 되어 엄마 뱃속에 있던 아이들의 몸에 쌓인다. 우리가 지구상에 있는 군사기지의 수를 조금이라도 줄이지 않으면, 어디에선가 또 다른 괴물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도 괴물은 만들어지고 있다. 전쟁이 없는 상태만이 평화가 아니다. 군대와 군사 활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일상적인 환경오염과 소음, 폭력. 그것에 맞서는 것도 평화를 위한 길이다. 환경이라는 주제가 평화를 위한 도구가 된다면 어디서든 기쁘게 쓰일 것이다. 녹색연합도 예산이나 인력으로 힘들더라도 미군기지와 군 기지에 대한 환경감시 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나갔으면 한다. 환경의 관점에서 평화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소중한 현장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유진 (회원, 녹색연합 활동가)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15년 기념 출판집에 실린 글입니다. 벌써 9년전의 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