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도시는 ‘건축’이 아닌 삶의 ‘변화’로 부터(남양주시)

2009.02.08 | 환경일반

남양주시는 ‘착한도시’의 요건을 타고났다. 사람도 아닌 도시에 ‘착하다’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난데없다 싶다. 도대체 어떤 도시를 착한도시라고 부르는 것일까? 정혜진씨는 <착한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라는 책에서  “도시의 품성이 착하다는 것은 자기 도시에서의 활동이 다른 도시에, 나아가 지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고 그 도시의 몫만이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나가는 행동을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기후변화시대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은 세계 모든 도시의 의무가 되고 있다.  

남양주시가 ‘착한도시’ 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바로 팔 할이 산으로 구성된 자연에 있다. 천마산, 수락산, 축령산과 같은 명산이 한북정맥을 이루고 이 산들은 또 북한강을 만난다. 숲을 이룬 무수한 나무들이 온실가스 대표주자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기능만으로도 경기도에서 5위를 차지한다. 자연이 더없이 좋은데다 도시와 농촌이 조화를 이루고, 그 조화에는 다산 정약용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착한도시의 품성을 타고 났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품성이 발현되도록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어디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남양주시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경기도 전체의 3.07%로 11위를 차지하고 있고, 온실가스의 95%가 에너지부문에서 배출된다. 남양주시 시민들의 전력소비량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1997년보다 3배가 늘었고, 차량 수는 15만9천여 대로 1997년에 비해 2배가 증가했다. 에너지소비가 급증했지만 이 기간 동안 인구도 70%나 증가했다. 그렇다면 남양주시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부문은 어디일까? 에너지부문 중 가정 상업 비중이 45.11%로 높게 나타났다. 산업부문을 보더라도 도소매업 비중이 20.1%로 가장 높고, 숙박과 음식업 18.9%, 제조업 15.8%를 차지하고 있다. 유통과 서비스에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경기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수송부문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량도 많았다(경기도 3위). 답은 나왔다. 가정, 상업, 수송 부분에서 온실가스를 줄일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우선 상업부문 중에서 숙박과 음식업 분야에서 에너지 사용을 줄여 ‘녹색관광도시’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남양주시는 자연이 수려해 수도권 시민들의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따라서 남양주시가 숙박 음식업에 종사하는 시민들과 함께 에너지 절약과 친환경 여행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여행객들이 편히 쉬면서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도록 해보자. ‘그린호텔’과 ‘그린숙박’은 운동은 세계적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일본 도쿄의 한 호텔은 투숙객들이 매일 침대시트와 수건을 교체하지 않으면, 현금으로 돌려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세탁에 소요되는 에너지와 물 사용량을 절감하기 위해 투숙 2일 째 사용하는 침대 시트와 수건을 투숙객들이 요청할 때에 교체하거나, 물 절약 표시를 하고, 숙박시설 내에서 가능한 1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여행방식도 최근 각광받고 있는 제주 ‘올레’나 지리산 ‘숲길’과 같이 걸어서 도보로 여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보자. 음식업계에서도 ‘빈그릇’운동이나 과도한 반찬가지수를 줄여 음식물쓰레기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여나갈 수 있다.

수송부분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대중교통에 투자를 해야 한다. 카풀제도, 승용차 요일제, 카쉐어링, 자전거 이용 활성화 정책, 공공주차장 유료제 전환, 셔틀버스 운행 등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물론 시민들에게 저탄소 교통정책의 필요성을 상세히 설명하고 동의와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정부분의 노력도 중요하다. 가정부분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시민들에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잘 알려서 ‘착한도시’ 시민이 되기 위해 자발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의제21이나 지역 시민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근 남양주시는 화도읍 월산리에 600가구 규모의 생태도시 시범 단지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이 발표된 이후 지자체마다 ‘생태도시’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생태도시는 ‘건축물’을 생태적으로 짓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생태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세상 어디에도 에너지를 마음껏 쓸 수 있는 생태도시란 없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 시내에서 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50여 분을 달리면 지붕 위에 닭볏 모양의 환기구를 달고 있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베드제드에 도착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영국 1인당 평균 에너지 소비의 3분의 1만 사용한다. 약 70여 가구, 22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베드제드에서는 겨울철 난방이 거의 필요 없다. 벽 두께가 무려 30cm, 창문은 모두 삼중창이다. 단열 수준은 건축물 구조체를 고단열화하는 패시브 하우스에 가깝다. 부엌에는 똑똑한 계량기가 달려 있다. 이 계량기는 집 안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의 전력 사용 총량, 가스 사용량 등을 보여준다. 전기 사용량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경보가 울린다. 이 때문에 대형 냉장고나 대형 텔레비전은 엄두도 내기 힘들다. 경보를 막으려면 집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 수를 가급적 줄여야 한다. 만약에 남양주시에서 에너지를 마음껏 쓸 수 없는 “생태도시”를 만든다고 할 때 그 곳에 살 준비가 된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착한도시’의 시민들은 ‘착한’ 에너지소비를 해야 한다. 가장 먼저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2020년까지 베드제드와 같은 ‘에코타운’ 10개를 건설할 예정이다. 짓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정부는 앞으로 에코타운에 살게 되는 거주자들의 교통수단, 실내 난방, 음식물 쓰레기 등을 구체적으로 모니터링해 정말로 친환경적으로 살고 있는지를 관찰할 계획이다. 개인의 사생활 침해라는 ‘빅브러더’(감시·통제 권력) 논쟁을 일으키고 있지만, 재생 가능 에너지 시설 자체보다 사는 사람들의 생활습관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1월 15일, 남양주시는 ‘에너지절약형 생태도시’로 거듭날 것을 선언했다. 우선 15개 공공시설부터 ‘에너지 다이어트’에 나선다. 행정타운, 도서관 등 신축 공공시설물을 에너지 절약형으로 설계해서, 에너지소비를 지금보다 50% 이상 줄일 계획이다. 이런 남양주시의 계획은 에너지 소비나 효율화는 뒷전이고, 재생가능에너지 시설 설치에만 열을 올리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남양주시는 지역먹거리 정책을 통해서도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인구 50만의 ‘도농 복합도시’. 이런 장점을 살려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해 남양주 시민들도 먹고, 가까운 수도권 시민들에게도 공급할 수 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은 제철 유기농 지역 먹거리를 생산하고, 지역과 수도권에 공급하면, 이동거리가 짧아 푸드마일리지가 다른 지역에 비해 적게 나온다. 오는 2011년 남양주시에서 열리는 세계유기농대회를 기점으로 남양주시가 친환경저탄소 건강 먹거리를 생산하는 대표 도시가 되길 바란다.

남양주시는 ‘착한도시’의 요건을 타고났다. 이제는 이 타고난 장점을 살려 ‘착한도시’를 만들어갈 시와 시민들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한 때이다. 남양주시가 가정, 수송, 상업 부분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보다 깨끗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며, 지역먹거리 체제의 기반을 갖춰, ‘착한도시’를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유진(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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