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칼럼]노동자들 생명의 무게

2009.03.04 | 환경일반

타이어 없는 자동차, 무용지물이다. 자동차 타이어는 인간의 몸으로 치면 다리 역할을 하는데, 색깔이 거의 검은색이다.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첨가하는 ‘카본블랙’이 검기 때문이다. 석유정제 찌꺼기를 연소시켜 만드는 ‘카본블랙’은 타이어가 빨리 마모되지 않고, 오래가도록 한다. 카본블랙은 타이어의 품질은 좋게 하지만 인체에는 유해하다. 타이어 공장에서는 천연고무와 합성고무에 다양한 화학첨가물을 투입하기 때문에 유기용제와 화학제품을 많이 사용하게 된다.

지난달 한국타이어 노동자가 또 숨졌다. 한국타이어 문제는 2007년 8월, 노동자들의 집단사망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2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 중 15명이 2006년 5월부터 2007년 9월에 집중됐다.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12명으로 가장 많고, 폐암이 4명으로 뒤를 이었다. 안전사고 3명, 자살 2명, 유기용제 중독에 의한 백혈병, 뇌수막종양, 간세포암, 식도암에 의한 사망이 각 1명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어느 평범한 사업장에서 이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 나간단 말인가.

그럼에도 한국산업안전공단이 제시한 정밀 역학조사는 사측의 거부로 진행되지 못했다. 유해물질을 다룬다고 바로 노동자들이 몸져눕지는 않는다. 문제는 사전예방에 있다. 노동현장에서 유해물질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열악한 근무조건에 놓이면 노동자들의 건강은 위협받는다. 사전예방을 제대로 하지 못해 노동자가 생명을 잃었다면, 소중한 생명의 무게에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에 대한 정밀 역학조사,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한국타이어 경영자는 지난해 국감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추가 역학조사를 정부의 정책이라고 판단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정부나 기관의 명령이나 법적·행정적 조치가 아닌, 협조요청에 거부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법적·행정적 조치를 내릴 정부나 기관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한국타이어도, 노동부도 노동자들 생명의 가치를 너무 값없이 대하고 있다. 노동자 몇 명의 희생쯤은 대수롭지 않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생명의 무게는 다 똑같다.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몸’과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건강권과 존엄성을 지켜줘야 한다. 국감 이후 지역단체들의 지속적인 압박으로 현재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유기용제 피해를 제외한 조직문화, 고무흄, 미세분진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한국타이어와 노동부가 노동자들의 생명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가 나서서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를 보여줘야 한다. 한국타이어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45%, 우리가 타는 자동차의 절반이 노동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생산된 타이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타이어를 부착한 승용차를 볼 때, 텔레비전에 한국타이어 광고가 나올 때, 자동차 타이어를 교환할 시점에, 아 저기가 ‘노동자들의 무덤, 한국타이어구나’라고 기억하는 것이다. 특정 상품에 대해 각인된 기억은 연관된 행동을 낳는다.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장>

경향신문 3월 4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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