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의 유혹> (스탠 콕스, 난장이)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는 자기를 가둔 사람의 전화 목소리를 향해 “누구냐, 넌?” 이라고 묻는다. 15년 동안 갇혀 있으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한 절실한 물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요즘 유행하는 ‘녹색성장’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오대수가 된 것처럼 촉각을 곤두세워 반응한다. “녹색성장, 누구냐, 넌?”
겉으로 보기엔 온통 ‘녹색’인 세상이 왔다. 며칠 전 기후변화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녹색성장위원회 관계자는 한국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세계 언론이 앞 다투어 취재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녹색이 무엇이냐?”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원자력과 4대강 토목산업이 녹색의 가치일 수 없다고 말했다. 분명 요즘 유행하는 ‘녹색’은 환경운동을 통해 내가 만들려고 했던 세상과는 다른 ‘녹색’이다. 녹색과 성장에 대한 서로 다른 지향과 해석,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가야 할까?
녹색성장의 유혹 – “자본주의 사회에서 녹색성장은 불가능하다”
‘녹색’에 대한 혼란은 일차적으로 정부에 책임이 있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저탄소 녹색성장’이 ‘녹색’을 가장한 개발논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녹색 포장만 예쁘게 씌웠을 뿐이다. 스탠 콕스가 쓴 <녹색성장의 유혹>을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녹색’이라는 단어를 뒤에서 받쳐주는 ‘성장’ 자체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보여준다. 스탠 콕스는 보건, 의약품, 식품 분야에서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기업 활동이 얼마나 잔인하며, 지역사회와 지구를 파괴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특히 이익 추구를 위해 멀쩡한 사람을 아픈 사람으로 둔갑시키는 의료산업과 공장식 농업에 기반을 둔 식품산업이 보여주는 추악한 사례들을 읽다보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이 거북한 사례들을 한 데 꿰어내는 주장은 하나이다. 지구의 경제시스템이 인간이 생존을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파괴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과 불량식품 파동은 연례행사가 되지 않았던가. 스탠 콕스는 녹색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대신할 체제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너무 큰 화두를 던지는 것 같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현실적인 사례를 접하다 보면 수긍이 간다.
1992년 윌리엄 레인과 린다 코멕은 ‘상어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고 선전하기 시작했다. 전세계적으로 상어연골캡슐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나 역시 어버이날 선물로 부모님께 상어연골캡슐을 선물한 적이 있다. 고백컨대 그때에는 상어연골에 대한 선호가 상어 개체 수에 미칠 영향에 대해 크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족의 건강에 관한한 판단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책에서 소개하는 식품과 약품에 대해 만들어진 마케팅 ‘신화’에 한번쯤 혹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병원과 제약회사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질환들에 대해 조바심하며, 먹을거리든 의료서비스든 더 많이 소비하도록 만드는 경제체제 속에서 살고 있다.
최근 지구촌에 불어 닥친 돼지독감바이러스 사태에 대해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마크 데이비스 교수는 면역체계가 약해진 가축 수만 마리가 좁은 초대형 우리에 갇혀 지내면서, 우리는 초대형 배설물 지옥으로 변하고, 그곳에서 가축들은 열과 비료에 노출되면서 가축들 사이에 병원균이 빠른 속도로 교환된 결과라고 전한다. 이제 목장을 상상할 때 더 이상 너른 풀밭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가축들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확산될수록 제약 산업은 호황을 맞이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산업들은 대표적으로 ‘녹색’ 이미지를 잘 활용해온 산업들이다. 다니엘 에스티와 앤드류 윈스턴이 2006년에 쓴 <녹색에서 황금으로>라는 책은 녹색자본가가 되는 방법을 이렇게 소개한다.
“가장 성공적인 녹색 마케팅은 가격, 품질, 서비스 같은 전통적인 판매기법에서 시작하되, 환경 관련 특성에 대한 언급을 덧붙이기만 하면 됩니다. 녹색 자체를 가장 먼저 강조하면 안 된다는 점을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생태라는 딱지는 생태 친화적 제품을 원하는 대중에게 적절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고, 한편으로는 아직 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경쟁기업에게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유용합니다.” -녹색성장의 유혹, 260쪽–
<녹색에서 황금으로>의 지침을 가장 잘 따른 기업으로 BP가 꼽혔다. 브리티쉬 페트롤리엄(British Petroleum)의 홈페이지는 온통 노랑색과 녹색으로 꾸며져 있으며, ‘석유를 넘어(Beyond Petroleum)’라는 언어유희만으로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광고 효과를 얻었다. BP는 마치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을 선도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매출의 대부분은 화석연료에서 나오고, 이산화탄소배출 상한제를 저지하기 위해 온갖 로비를 벌였다. BP 외에도 ‘녹색가면’을 쓰고 녹색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스탠 콕스는 자본주의 대안체제를 모색하면서 세 명의 학자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막스는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성장은 탐욕스러운 기업을 등장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장 없는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으며, 심화된 경쟁은 수많은 소규모 자본가를 몰락시키고 성장은 한곳에 집중된다. 막스의 주장은 딱 들어맞는다. 유통업만 하더라도 대형할인마트가 재래시장을 잠식했고, 이제는 소형체인점(express) 형태로 동네 슈퍼마켓을 잡아먹고 있다(우리 동네에도 벌써 두 개나 들어섰다!).
제오르제스쿠-뢰겐은 대자연의 투입물은 경제과정에 투입되고 나면 필연적으로 쇠퇴하며 돌이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성장을 통해 파이가 계속 커가는 것이 아니라 성장은 곧,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쇠퇴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막스와 제오르제스쿠-뢰겐이 이야기하는 몰락을 앉아서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
허먼 댈리는 1977년 <안정된 경제>라는 책에서 인간이 지구상에서 지속적으로 생활하려면 3가지 권한을 지닌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한다. 첫 번째 권한은 인구성장을 멈추거나 반전시킬 수 있도록 재생산율을 제한하는 권한이다. 두 번째 권한은 자원을 소비해 폐기물로 만드는 총 ‘처리량’을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유지할 권한이다. 세 번째 권한은 개인이나 가구의 부와 소득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설정할 권한이다.
생태경제학자로서의 허먼 댈리의 고민과 열정이 드러나는 대안이지만 과연 ‘누가 어떻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 것인가?’가 의문이다. 스탠 콕스도 이렇게 표현한다. “성장하지 않는 자본주의 경제를 유지하려는 것은 중력이 없는 태양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과 같을 것이다”라고.
상황은 더 암울하다. 생태사회주의자들은 “자칭 녹색 자본주의는 이목을 끌어 상품을 판매하려는 목적으로 ‘녹색’의 이름을 파는 행위에 불과하다.”라고 간단하게 정리한다. 지금 체제를 전복시키지 않는 한 ‘녹색’ 가치의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이 책은 ‘녹색성장’에 대한 분석은 치열한 반면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인색하다. 스탠 콕스는 “생물권을 파국에서 구하려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경제 외부와 자본주의 이해관계에 봉사하는 정부의 외부에서 등장해야 하며, 지구 전역에서 노동자 소유, 환경세, 기업규제, 반독점법, 부의 분배를 촉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친환경보건의료센터, 서민의 식료품점, 아난타프르 지역 공동체와 같은 운동이 모든 대륙에서 일어나야 하며, 소수 소유계급의 지배를 거부하고, 현존 경제 질서를 뛰어넘어야 한다.”라고 책의 마지막 두 페이지에서 숨 가쁘게 정리한다. 현존하는 경제 질서를 뒤집는 일, 엄두가 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에서는 물꼬를 터야하고, 그 시도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녹색성장에 대한 서평은 ② <그린칼라 이코노미> (반 존스, 페이퍼로드) 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