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표절하라 – “우리의 삶, 그 자체가 대안이다”
<그린칼라 이코노미>가 녹색국가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다면, <혁명을 표절하라>는 개개인의 삶에서 ‘녹색’을 실현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트래피즈 컬렉티브’라는 이름으로 모인 저자 세 사람. 영어를 가르치는 앨리스, 기후변화에 관심 많은 킴, <사빠띠스타>와 연대하는 폴이 책을 엮었다. 트래피즈 컬렉티브는 2005년 “G8 정상회담”반대 운동을 준비하면서 대안적 삶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은 자율관리 센터, 사파티스타와의 연대, 도로에 반대하는 직접행동, 반전운동, 기후변화 캠페인, 독립 언론기획, 공동체 텃밭과 다양한 주제를 서로 토론하게 실행에 옮겼다. 그래서 이 책에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일하는 운동가들의 살아있는 경험이 담겨있다.
전기를 자급하는 법,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 방식, 스스로 건강을 돌보는 법, 학습을 통한 변화, 공동체 정원 만들기, 문화행동주의,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센터 만들기, 텔레비전을 넘어 소통하는 법, 직접행동을 위해 캠페인을 조직하는 법 등. 이 책의 국내에 소개한 기획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신나는 혁명을 마음껏 표절하라고!”
앤디 골드링은 책의 제 1장에서 전체론적 해법으로 ‘퍼머컬쳐’를 제시한다. 단순히 유기농업인 것처럼 보이는 ‘퍼머컬쳐’ 가 사실은 혁명의 대안이라는 것이다.
“퍼머컬쳐는 자연 생태계의 다양성과 안정성, 복원력, 높은 농업 생산성을 의식적으로 기획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먹을거리와 에너지, 쉴 곳, 그 밖에 유무형의 욕구들을 충족시키며 경관과 조화롭게 통합된다. -빌 모리슨 –
퍼머켤처의 특징은 지역화, 자립, 에너지와 자원의 외부 투입 줄이기, 재생가능에너지, 참여를 원칙으로 한다. 실제로 퍼머컬쳐의 원칙에 따라 실천에 옮겨진 성공사례가 많다. 조지 마살은 영국 옥스퍼드에 있는 자신의 집을 단열을 개선하고 스스로 수리하면서 가스와 전기, 물 소비를 60% 가까이 줄였다.
카트리나로 정부의 손길이 뻗지 않았던 곳에 운동의 손길은 스스로 찾아갔다. 커먼 그라운드라는 조직이 이웃 단위의 보호조직을 만들고, 쓰레기를 줍고, 구호물자를 보급하고, 무료 진료소를 세웠다.
특히 자립과 자치에 대한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2003년 브라질 세계사회포럼에서 아룬다티 로이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우리가 그들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그들이 우리를 더 필요로 한다.” 나는 그녀의 연설과 무더위에 체육관을 가득채운 운동가들의 열광을 기억한다. 기업들은 끊임없는 소비자로서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우리는 그들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거대 석유회사나 부도덕한 자동차회사와 무관한 삶을 살면, 그들이 이윤을 내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그들을 ‘우아하게’ 무시하며 사는 것이다.
“<카길>과 <네슬레>는 창틀 화분에 씨 뿌려 키운 상추에서 이윤을 뽑아낼 수 없다. 전기와 식품, 섬유, 바이오매스,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일상적인 생활용품들을 지역에서 만들어 내는 것은 곧 건전한 공동체를 발전시키고, 앞으로 있을 변화 속에 살아남을 수 있는, 제대로 자리 잡은 지역 경제를 향상시키는 길이다” -혁명을 표절하라. 62쪽-
역시 해답은 지역과 공동체에 있다. 퍼머컬쳐와 마찬가지로 적정기술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하다. 적정기술은 사람들의 생활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술의 형태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리산 산청에 있는 대안기술센터가 적정기술을 보급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동근 소장님은 적정기술은 공동체가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먹을 것과 쉴 곳을 제공해 주며, 물을 덥히고 난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대안기술센터를 찾아서 패시브 하우스, 스트로베일 하우스, 태양열 조리기, 풍력발전기, 자전거 발전기 만들기 기술을 배우며 익히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책에서 제시하는 대안적 삶의 방식이 우리나라에서도 빠짐없이 모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들레공동체는 아주 적은 전력만으로 집안에서 전기를 자급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곳곳의 생태마을에서는 생태뒷간이나 자연정화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자신이 일하고 있는 사업체를 공동으로 매입해서 경영하는 노동자들, 작은 토지에서 함께 야채를 키우는 텃밭 집단들, 문화 분야에서도 독립영화, 공동체상영, 마포 동네 라디오 방송국 등 다양한 실험들이 우리 동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원주의 의료협동조합, 의료 민영화에 맞서는 보건의료단체연합, 로컬푸드 운동, 생협운동과 한살림, 대안학교, 민중들의 극장 등. <혁명을 표절하라> 한국판을 만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생명을 품은 ‘녹색’, 힘내라!
비가 온 뒤의 5월의 산은 청량하다. “그래 바로 저런 연둣빛과 녹색이야. 생명이 깃든 저 빛깔을 아무리 녹색페인트로 칠한다 한들 똑같이 흉내 낼 수 있을까?” 5월의 산을 마주하면서 답이 나왔다. 그래 우리사회가 적어도 생명을 품은 ‘녹색’과 끝 간 데 없는 욕망을 품은 ‘녹색’을 구분해낼 수 있지 않을까?
두 가지 서로 다른 녹색이 빗어낸 결과는 천지차이다. ‘녹색’에는 가장 기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존중, 정의를 향한 치열하고도 따뜻한 배려가 담겨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먹는 것을 재배하고 가공할 때도 생명에 독이 되는 것을 넣지 않을 것이고, 인도의 작은 마을에 자리 잡은 다국적 제약회사처럼 사람을 치유하는 약을 만들면서 마을을 온통 독성물질로 오염시키지 않을 것이다. “녹색성장 한다면서 왜 전국의 불도저가 다 강과 하천에 들어가 있냐?”는 기자의 통탄처럼 강변과 강물 속에 살고 있을 초록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제방공사를 하지 못한다.
그래 이명박 정부가 이야기하는 ‘녹색’에 너무 안달복달하지 말자. 좀 더 여유 있고, 우아하게 무시하는 전략도 괜찮을 것 같다. 한편으로 “그거 녹색 아니야”라고 훈수 두면서 제대로 된 녹색을 직접행동으로 일궈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원하는 삶이 있다면, 바로 그 삶을 살면 된다.
욕망을 품은 ‘녹색’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나는 운동가로서 나의 정신건강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더 자연에 자주 들면서 대안을 일구는 운동에 빠져들려고 한다. ‘소통’을 잃은 정부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다. 그래서 내가 찾은 주제는 “동네에너지”이다. 에너지 문제를 ‘퍼머컬쳐’와 ‘중간기술’을 통해 풀어보고 싶다.
다만 지역적 대안을 찾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가 녹색과 함께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깊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린칼라 이코노미>의 긍정적이고 희망찬 메시지도 좋지만 반 존스가 이야기하는 ’지속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면서 소비하는 재화의 양을 늘리지는 않는 성장‘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여전이 의문이다. 5월의 끝에서 지금은 절판된 <거대한 변형>이라는 책이 출판되길 기다리고 있다. 공존·돌봄·협력·소통의 경제 패러다임을 제창한 칼 폴라니가 쓴 이 책은 시장도 국가도 아닌 다른 경제체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 책이 나오면 아주 비관적인 <녹색성장의 유혹>을 읽고 생긴 우울함을 좀 더 희망적인 것으로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생명의 품은 ’녹색‘ 힘내라! 바위틈에서 풀이 자라듯이 녹색은 또 ’끈질김‘의 상징 아니던가!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