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칼럼] 멸종위기의 시민운동

2009.10.05 | 환경일반

대학로에서 연극을 봤다. 연극하는 젊은이들의 꿈과 좌절, 사랑을 담은 이야기였는데, 공연 시작하자마자 극장 여기저기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슬픈 장면도 아닌데, 시작부터 끝까지 눈물을 흘리는 걸 보니 짐작컨대 관객 중에 연극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무대가 좋아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연극 현장에 있는 이들을 보면 사람들의 꿈은 참 다양하다 싶다. 나 또한 환경운동을 업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힘들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보면 동변상련이 느껴진다.

세상 사람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삶의 방식은 참으로 다양하다. 돈이 최고의 가치인 사람도 있고, 예술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자연에 너무 폭력적이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요즘들어 우리사회가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획일화되고 있다. 정부나 기업에 대해 비판을 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루기 때문이다. “4대 강 정비계획의 실체는 운하”라고 주장했던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김이태 연구원은 정직을 당했다. 정부의 실정을 날카롭게 지적해온 진중권씨는 대학에서 강의 자리를 잃었다.

법적 소송을 당하기도 한다. 국정원이 시민단체를 압박하고 있다고 인터뷰를 한 박원순 변호사는 국정원으로부터 2억 원의 명예 훼손 소송을 당했다. 나도 며칠 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전화를 받았다. 경향신문에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에 대해 쓴 ‘노동자들의 생명의 무게’라는 칼럼 내용에 대해 한국타이어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한 것이다. 이렇게 국가와 기업을 향한 비판이 쉽게 법정으로 가게 된다면, 앞으로 개인이 쓴 소리를 할 때에는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싸움을 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시민단체들도 정부 정책 비판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정부가 시민단체를 촛불참여단체와 아닌 단체로 이분법 하면서 지자체와 기업도 이른바 촛불 시민단체와 협력하는 것을 꺼린다. 서울시는 ‘차 없는 날’ 행사를 하면서 해마다 함께 하던 녹색교통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을 쏙 빼버렸다. 기업들도 시민단체와 함께하는 사회공헌사업을 중단하고 있다. 이렇게 시민단체가 준비하던 활동이 중단되면서 남는 것은 ‘안타까움’이다. 희망제작소와 기업이 추진하던 마이크로 크레딧을 통한 소기업 후원 사업, 녹색연합이 해왔던 마을에서 에너지 대안을 찾는 ‘마을이 지구를 구한다’ 프로젝트 등이 잘 진행되었다면 어떻게든 우리사회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사회 전체로 볼 때 시민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지만 시민운동의 비판적인 시각은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고, 창의적인 대안은 우리사회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정부 정책에 호의적인 시민단체를 지원하면서 기존 시민사회를 압박하고 있다. 절대 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에 정부 뜻대로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친정부적인 친기업적인 시민단체들만 살아남는다면 우리사회가 얼마나 밋밋해지고 긴장감이 없어질까?

우리사회가 자유로운 비판과 칭찬, 감시와 격려에 열려있었으면 좋겠다. 또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대안을 추구하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예를 들면, 국책연구원들도, 공무원들도, 진보 단체 활동가들도, 예술가들도 이 나라가 자기의 꿈과 양심, 가치를 지키며 살만한 곳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추석이다. 우리 사는 세상이 보름달처럼 후덕하고, 넉넉하면서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를 빌어본다.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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