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지방산이야”
시골에서 야채가게를 하시는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다. 내 눈에는 다 같은 감자고 호박인데, 엄마는 지방산과 아닌 것을 구분하신다. 대부분 농산물은 어느 지역에서 자랐든지 다 서울의 도매시장까지 갔다가 다시 지방으로 내려오는데 가끔 시골 할머니들이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팔러 나오는 제철 농작물이 있다. 엄마는 그걸 지방산이라고 부른다. 당연히 값도 덜 나가고, 또 엄마 말에 따르면 그 어른들은 농약도 돈이라고 여겨 거의 치지 않는다고 한다. 친환경 인증은 받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시장에서 얼굴을 익힌 분들이 기른 거라 믿을 수도 있단다. 제철에 먼 거리를 오가지 않고 밭에서 바로 가져온 농작물들은 다른 것들보다 당연히 싱싱하고 맛도 좋다. 그래서 엄마는 지방산을 으뜸으로 여긴다. 예전엔 시장에 나오는 것들이 다 인근에서 나던 것들인데, 요즘은 강원도에서도 저 멀리 제주도 감자를 먹게 되는 일이 흔하다. 그나마 국내산이면 나은데, 아예 외국에서 들여오는 것들이 훨씬 많아지고 있다.
지역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지역 안에서 소비하던 옛날 방식을 요즘 다시 주목하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바로 “로컬푸드”운동이다. 캐나다, 미국, 영국 등지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이 운동은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그 지역 안에서 소비하자는 운동이다. 과거엔 어쩔 수 없이 그랬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의 건강하고 안전한 삶과 환경을 위해서다.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먹을거리보다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가 더 신선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동하는 데 필요한 물리적, 화학적 처리도 없을 것이다. 여러 단계의 유통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농민이나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경제적 이득도 클 것이고, 소규모의 농민들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이다. 특히나 운반에 필요한 에너지를 최소화하기 때문에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큰 이득이 된다. 지역에서 난 것을 먹는 것이 바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는 방법인 셈이다. 석유위기를 내다보는 이들에겐 먹을거리를 운반하기 위한 석유가 바닥났을 때를 대비해 로컬푸드 운동을 가장 중요한 생존 방식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지역경제 측면에서도 지역의 부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가공식품보다는 신선한 먹을거리 특히 야채나 과일의 소비가 늘어나고 패스트푸드 소비가 줄어들어 지역민 전체의 건강을 지키는 효과도 있다.
로컬푸드 운동은 유기농 먹을거리에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 뉴질랜드, 호주 등지에서 재배된 수입 유기농산물이 많은 요즘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 지 고민이 될 때가 많다. 그래서 요즘, 식량이 생산자의 손을 떠나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거리를 뜻하는 ‘푸드마일’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푸드마일이 길수록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사용한다는 뜻이 된다. 나라의 크기, 작물의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푸드마일 50km 이내를 로컬푸드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외국에서 생산되어 막대한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운반해 오는 농산물은 아무리 유기농이라 하더라도 바른 먹을거리가 될 수는 없다. 로컬푸드 운동이 활발한 캐나다의 유기농산물에는 유기농산물 인증과 함께 로컬푸드 인증이 함께 붙는다고 한다. 유기농산물이면서 지역 안에서 생산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부터 유기농 협동조합인 한살림에서 ‘가까운 먹을거리’운동을 펼치고 있다. 농산물의 이동거리와 수송 중 탄소배출을 제품에 직접 표시하고 영수증에도 구매품목에 대해 이동거리와 탄소배출량, 수입산 대체 시의 삭감배출량을 합산하여 표시해 주고 있다. 한살림 모심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3인 가족의 식단을 현재 60%나 차지하는 수입 식단에서 국내산 자급식단으로 바꾸면 수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한 해 동안 300kg 정도 감축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자동차로 2,700km를 달렸을 때 발생하는 탄소량과 맞먹는다고 한다. 또 대구․경북지역의 노동조합, 농민단체,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해 주 1회씩 농민장터를 열고 사내 급식재료를 지역의 농민들과 직거래하는 방식으로 지역먹을거리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원주의 상지대에서는 학생식당에서 원주 지역의 농산물을 우선 구입하도록 하고 있다.
한미 FTA 협상으로 점차 농산물 시장의 완전개방이 현실화되고 있는 요즘, 로컬푸드 운동은 이를 반대하는 이들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장 개방이 가져다주는 것이 에너지 낭비와 소규모 자립농의 퇴출, 지역공동체의 붕괴, 안전하지도 건강하지도 않은 먹을거리, 나아가 식량주권의 포기라면 이 운동은 몸부림이 아니라 시장개방 시대와 먹을거리 오염이 극심한 이 시대의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른다.
* 가까운 먹을거리를 고르는 5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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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명희 (녹색연합 정책실)
일러스트 : 엄정애 (녹색연합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