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케이블카 규정을 완화하는 자연공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직후인 5월 4일부터 지리산 천왕봉에서 1인 시위가 시작됐습니다. ‘어머니 지리산에 철탑을 꽂지 말라’라는 펼침막을 들고 시작된 시위의 첫 주자는 올해 82세인 전 피아골 산장기지 함태식 선생님. 평생 산을 지켜온 ‘지리산 호랑이’가 산이 훼손될 위기에 처하자 스스럼없이 나선 것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원로 산악인이자 지리산 작가인 성락건 선생님, 종걸 스님(전 화엄사 주지), 연관 스님(전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 민병태 치밭목 대피소장과 얼마 전까지 연하천을 지켰던 김병관씨가 붙박이로 지리산에 머무르며 1인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김병관씨는 케이블카 때문에 기꺼이 실업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2006년부터 연하천 대피소를 관리했던 그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연하천을 직영화하면서 2008년 계약직 직원이 됐고, 지난 4월 30일 재계약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2년만 잘 견디면 정규직이 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지리산에 케이블카 위기가 닥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재계약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환경부 공무원 신분으로는 아무래도 케이블카 반대운동을 하기에 부담이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리산이 좋아서 지리산에 들어와 살았고 환갑 때까지 살고 싶었는데…. 사람들을 만나고 환자도 치료하고 사람들과 시낭송도 하면 지킴이 노릇을 하고 싶었어요. 이제는 모두 추억이 돼버렸죠.”라며 회상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지리산이 망가지게 되었는데 신선놀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라면서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천왕봉 1인 시위를 마치고 지난 6월 초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6월 5일 환경의 날을 앞두고 환경단체들과 함께 ‘환경부 간판을 내려라’라면서 환경보존과 관리 책임을 져버린 환경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바로 과천청사 앞에서 1인 시위에 돌입했습니다. 하지만 가끔 환경부 직원들이 나와서 사진만 찍고 갈뿐 환경부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출근 시간에 청사 앞 1인 시위를 마치면 낮에는 시내로 나와 동대문운동장에서, 종로에서 게릴라식으로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지리산에는 아무래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95%가 케이블카 건설 반대해요. 서울에서도 시민들 반응이 좋기는 하지만 아주 가깝게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하지만 늘 격려해주는 시민들 덕에 더 힘을 낼 수 있었고 주말에는 북한산에서 등산객들을 상대로 서명운동도 펼쳤습니다. 그 덕에 지리산권에서 시작된 ‘케이블카 없는 지리산 1만인 서명 운동’이 지난 21일 드디어 1만인을 넘어섰습니다.
“7월에 케이블카 규정 완화를 골자로 한 자연공원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이제 현장싸움입니다. 지자체에서 곧 바로 시작하지는 못하겠지만 현장싸움을 준비해야죠.” 라면서 앞으로 활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그. 일정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지리산 둘레길을 돌면서 지역 주민들의 케이블카 반대 여론을 모아낼 계획이라고 합니다. “케이블카는 어느 한 곳만 허용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하나만 설치되면 잇따라 다른 곳에 설치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특히 지리산 같은 경우는 케이블카가 주렁주렁 매달리게 됩니다. 국립공원이 아닌 유원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떻게 하든 반드시 막아야만 합니다. 막을 때까지 계속 싸워나갈 작정입니다.”
그는 좋은 세상이 오면 다시 지리산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가 다시 편하게 지리산에 둥지를 트게 될 날이 올까요. 그는 “서울에서도 열심히 해 달라”면서 언제 꼭 피아골 근처에 있는 그의 보금자리에 찾아와달라는 따뜻한 초청도 잊지 않았습니다.
글 : 고이지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