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백두대간에서 다시 만날 세계

2025.04.08 | 백두대간, 생태계보전

지리산의 풍경

현장조사를 다녀오는 날에는 마음이 무겁다. 산속 깊이 들어가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파괴의 현장이 내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백두대간을 담당하게 되었다. 백두대간 보호지역이 보호지역답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조사하고 현장에서, 제도에서 보이는 문제점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내 일이다.

남한의 최북단 향로봉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직선거리 700Km의 산줄기는 단일 보호구역으로는 최대 규모이자, 한반도의 남북 생태계를 연결하는 생태축이다. 2005년부터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백두대간은 엄격하게 개발이 제한되고 법적으로 보호받게 되었다. 그러나 법정 보호구역임에도 불구하고 백두대간 곳곳에는 법의 사각지대 속에서 훼손된 채 방치된 현장, 법의 보호를 받으며 진행되고 있는 개발 현장이 여전히 존재한다.

노천 석회석 채광으로 훼손된 강릉시 자병산 석회광산

자병산은 백두대간 파괴의 대표적인 사례다. 오대산과 태백산 사이, 강릉시 옥계면에 위치한 자병산 노천 석회광산은 1978년부터 석회석을 채굴했다. 카카오맵에서 자병산을 검색한 뒤 위성지도를 확인하면 노천 석회광산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국유림을 대부하여 진행된 석회광산 개발은 2030년이 되어서야 끝이 날 예정이다. 부서지고 잘려나간 자병산의 암반은 시멘트의 원료가 되어 전국의 건설현장으로 퍼져 나갔다. 그 사이 자병산의 해발고도는 100m가 낮아졌다. 폭파 방식으로 절개되는 광산의 절개면은 원래의 지형으로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광산 개발이 끝난 뒤에는 마치 폭격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폐허가 남아있을 것이다. 2000년대가 되어서 정부와 사업자는 복원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일부 채굴이 끝난 곳을 복구하였지만 흉터는 여전히 남아있다.

태백산에는 공군폭격장이 있다. 1981년에 공군과 미군이 공동으로 조성한 이곳은 2005년 화성시에 있던 매향리 폭격장이 폐쇄되면서 대체 사격장으로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지금도 태백산 정상을 향하는 길에서 폭격, 사격 훈련을 하기 위해 급강하하는 미군기와 공군기를 볼 수 있다. 화성시에 있던 매향리 폭격장 폐쇄 후 매향리의 토양오염도를 조사한 보고서에는 중금속인 납의 경우 전국 평균의 923배가 카드뮴은 전국 평균의 23배가 높게 검출되었다. 태백산 필승사격장의 토양 오염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일지 알려진 바가 없다. 소음공해와 토양오염에 시달리는 주민들은 수차례 사격장 폐쇄를 요구했지만 군사안보 필수 시설이라는 이유로 주민의 요구는 묵살되었다. 뉴스 검색어에 태백 필승사격장을 입력하면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한 미국의 전략폭격기들이 태백 필승사격장에 폭탄을 투하했다는 기사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설악산, 주흘산, 지리산에서는 케이블카 사업과 골프장 개발이 지자체의 협력 속에서 추진 중이다. 동해안의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를 수도권과 산업단지에 공급하기 위한 초고압 송전선로 사업도 백두대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육십령, 추풍령에는 수십 년 동안 돌을 캐낸 뒤 부실하게 복구된 채석장 복구지가 있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리고 그 모든 현장이 우리의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

자병산의 속살은 어느 아파트가 되었다. 해결되지 않은 남북한의 냉전 문제는 지역주민의 고통과 생태계 파괴 속에서 한미 연합 공군기의 대규모 폭격 훈련으로 이어진다. 추풍령의 채석장에서 캐낸 돌은 고속철도 건설을 위해 레일에 깔렸고, 육십령의 돌들은 어느 건물 현관의 반듯한 대리석이 되었다. 땅투기꾼으로 전락한 지자체장들은 주민 복지에 사용해야 할 예산으로 백두대간에 골프장을, 케이블카를, 유흥지구를 추진한다. 저 먼 곳, 백두대간 산골짜기의 현실이 우리의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상상을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백두대간 보호법을 넘어서, 식목일 행사를 넘어서, 다시 만난 세계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채석으로 산 가운데가 사라진 함양군 육십령 채석장

지난겨울의 계엄 사태 이후 때로는 광장에서 때로는 일상에서 다시 만날 세계를 상상하곤 한다. 우리가 걷게 될 미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백두대간의 수난이 회복되고 뭇 생명과의 공존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이 가능하려면, 오늘의 나는 무엇을 심어야 할까. 이 글을 쓰는 지금 식목일이 다가오고 있다. 여기저기서 나무를 심는 행사가 열리고, 정부는 국토녹화사업을 자랑하기에 바쁘다. 지난 50년, 어쩌면 우리는 그저 나무만 심었다. 나무와 숲이 만들어내는 생명력과 다양성, 공존의 힘에서 우리는 아무런 영감도 받지 못했다. 나무를 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갈림길 속에서 우리가 지금 심는 그 무엇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 서로뿐만 아니라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다가오는 봄 앞에서 다시 떠올려 본다.

글: 김원호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이 글은 빅이슈 코리아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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