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자병산

2009.11.02 | 백두대간

“나는 지옥을 보고 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재개를 앞두고 있던 지난 2006년, KBS 이강택 PD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공장형 농장을 보고온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해에도 잊고 있던 이 말이 자병산 석회석 광산 안으로 깊숙이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떠올랐다.

자병산에 가기 전에는 고향(필자의 고향은 강원도 영월이다.)을 오가며 많이 보아왔던 시멘트공장의 석회석 광산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백두대간에 위치한 석회석 광산이라 환경단체의 많은 관심을 받는다고만 알았지 내 삶과의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 심각성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마 어마 어마 어마 어마 어마 어마 어마한 석회석 광산을 직접 보고나서는 생각이 많이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해발 870미터 높이의 산이, 하나의 봉우리가 아닌 큰 산줄기가 완전히 파헤쳐져 일부는 이미 팔려나갔고, 지금도 허연 석회암 덩어리가 끊임없이 컨베이어 벨트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었다. 집체만한 덤프트럭과 중장비들은 백두대간의 살점 같은 돌을 끊임없이 실어 나르고 있다. 지옥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인간의 필요와 편리를 위해 풀, 나무, 꽃, 벌레와 같은 뭇 생명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곳이 바로 지옥의 모습이었다.

평소 산을 즐겨 찾고 있지만,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하지 않고 서서, 온갖 풀과 나무, 동물, 벌레까지도 감싸 안아주는 존재, 무수한 생명을 품고 있는 존재로만 생각했다. 그 자체로 생명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자병산이 입은 거대한 상처를 보고나서야 아무리 말이 없는 돌덩어리 산이라도 참 많이 아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해 전 녹색연합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활동하는 환경운동가들이 모여 ‘자병산아 미안해’라는 퍼포먼스를 했던 그 마음을 이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손톱만한 작은 찰과상에도 아파하는 게 우리 사람인데, 지금도 계속되는 발파로 속살이 더 파헤쳐지고, 그 상처를 수많은 중장비들이 끊임없이 긁어대고 있는데 어찌 아파하지 않겠는가?

돌이켜보면, 이명박 정부의 삽질경제가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민주적이었다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에도 국토를 파헤치는 토목건설 산업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었다. 그 토건자본주의에 의존하는 경제를 삽질경제라고 쉽게 얘기할 수 있지만, 실제 삽의 판매량이 는 것도 아니고, 삽의 활용도가 그리 높은 경제도 아니니, 그 실상은 삽질경제라기 보다는 시멘트경제, 혹은 콘크리트 경제라 하겠다.

우리 삶의 공간은 아파트, 도로, 댐과 같이 시멘트 콘크리트로 뒤덮이고 있다. 시멘트가 없으면 유지될 수 없는 경제, 그 시멘트를 위해 백두대간 핵심지역마저 파헤쳐야만 하는 게 바로 우리 경제의 참모습이다. 건설족의 경제, 토목자본주의의 경제에서 생태경제, 녹색경제로의 산업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백두대간 자병산을 토막 낸 토건자본은 또 다른 산을 기어이 잡아먹고야 말 것이다.



이제는 온 국민이 그 상처를 보듬어 줄 때
자병산에 다녀와서 내 삶터 곳곳을 온통 콘크리트로 뒤덮어 버린 공사판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나도 모르는 새 깊숙이 침투한, 더 많이 파헤치고 파괴해야만 잘 살게 된다는 콘크리트 경제 성장의 망령들 때문에 마음이 더 이상 편치 않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자병산의 상처를 직접 본다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병산의 상처를 본 많은 국민들이 노력하여 백두대간 보호법을 만들었듯이, 이제는 그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어 줄 복원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관심이 다시 필요하다. 나무를 한그루 한그루 기부받아 숲으로 복원하는데 이용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온 국민이 백두대간으로 다시 되돌린 자랑스러운 자병산으로 우뚝 서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글 : 엄준용(녹색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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