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모둠 – 선우예인

점심식사 장소를 찾고 있던 도중 30미터 전방에 어린 산양이 뛰어가고 있었다. 사실 나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산양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너무나 가파른 언덕을 껑충껑충 뛰어 급하게 도망친 걸 보면 산양임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기도한 바람이 이루어 진 셈이었다. 우리가 걸었던 산길이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이 위태롭고 조금만 미끄러져도 금새 저 밑으로 떨어질 듯 매우 가파른 곳으로 산양이 많이 찾는 곳이었지만, 실제로 산양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우리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오래도록 풀어낼 수 없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것이었다.
밥에서 꿀맛이 난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산에서 먹는 주먹밥에선 정말로 꿀맛이 났다. 게다가 우리가 점심을 먹은 곳 주변에는 산양의 흔적까지 있어서 마치 산양과 함께 밥을 먹는 듯한 환상에 들게 했다.
질서의 진리
다시 백담사로 돌아가는 길,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짐승의 흔적을 발견했다. 널 부러져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새의 깃털과 핏자국이었다. 주변에 발자국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새의 소행이었다. 서로가 자신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쳤을 그 흔적을 보며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인간에 의해 죽는 것이 아닌 생태적 먹이가 되어가는 것이 진실로 우리가 아름답게 여겨야 할 자연의 질서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정리

백담사로 돌아와 우리 모둠은 퐁당이 준비해온 주제인 ‘관계’에 대해 자신이 고민해 온 것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에게 실타래를 던져가며 실로써 얽힌 우리 모두는 관계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 달랐지만, 관계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또 하나의 관계가 아닐까.
그렇게 관계 맺은 우리 수달 모둠은 저녁공양을 마치고 하루 동안 보고 배우고 느낀 것을 발표할 준비를 했다. 우리 모둠뿐 아니라 모두들 느낀 것이 많았는지, 준비를 하는 내내 분주했다. 조별로 발표를 끝낸 후에는 작은 뿔 선생님께서 도감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주셨다. 각 나라별 도감의 특징과 현재 우리나라의 도감 출판의 실정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세밀화 도감이 만들어 지기도 전에 산양이 멸종되어 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세밀화로 남겨질 수조차 없는 산양의 운명은 너무도 끔찍했다.
마지막으로 조별 정리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캠프가 끝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듯 했다. 산은 어둠이 빨리 찾아 왔고, 하늘에는 성긴 별이 밝혀 있었다. 야생동물들도 잠든 밤의 산은 너무도 고요했고, 바위를 타고 흘러가는 물만이 소리를 내는 전부였다. 그렇게 야생동물학교의 마지막 밤은 깊어갔고, 새벽녘에는 예불을 드렸다.
헤어짐
아침 밝아오고, 내 두 눈꺼풀은 어느 때 보다도 무거워져 있었다. 시린 눈을 간신히 뜨고 쳐진 몸을 겨우겨우 일으켜 세워 백담사에서의 마지막 공양을 했다. 짐을 꾸리는 모습이 산행을 준비하는 모습과는 달랐다. 헤어짐이 다가오고 있는 탓이었다. 강당에 모여 야생동물학교 학생 모두가 함께 이야기하고 어우러져 노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키워온 우정을 다지고 미래를 약속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쉬움이 남는 짧고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만해 선생님께서 스님이 되신 백담사 주변을 둘러보고는, 곧바로 백담계곡을 따라 하산 길에 올랐다. 잠시라도 조금이라도 더 설악에 남아있고 싶은 마음에 모두의 발걸음은 더뎌졌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 옆에 있는 친구 민정과 스무고개 놀이를 했다. 그가 준 힌트는 동물이라는 것이었다. 순간 내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내 두 눈으로 직접 보았던 그것, “산양”이었다. 혹시 산양이 아니냐는 나의 말에 그는 그렇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 모두가 산양에 푹 빠져 있었다는 증거였다.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스무고개를 하게 된다면 그때 역시 산양이 답이 될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산양은 이미 너무도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탓일까, 항상 멀게만 여겼던 설악이 너무도 가깝게 느껴져 출발한지 서너 시간 만에 녹색연합 사무실에 도착했다. 모두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헤어짐을 맞이했다.
저장
집으로 돌아와서 배낭을 풀다가 보온병에 물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백담사의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물이었다. 나는 그 물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두 음미했다. 설악의 향기가 전해져 왔다. 눈을 감자 3일 동안 설악에서 있었던 일들이 영화필름처럼 스쳐갔다. 산양이 내게 던지고 간 수수께끼를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곰곰이 생각해 볼 것을 다짐하며 그 영화필름을 내 마음속에 저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