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신 16 – 녹색으로 도전하라. 독일에서 일고 있는 그린스포츠 바람

2015.04.27 | 가리왕산

독일에서 스포츠가 갖는 위상은 꽤 높다.
아비투어라고 하는 대입시험 (=인문계고등학교 졸업시험)에서 스포츠를 국.영.수 같은 주요 과목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호젓하고 너른 잔디밭에서 공을 차며 뛰는 사람들을 보면, 초등학교 운동장밖에 갖고 있지 못한 우리와의 승부는 이미 정해진 것 같다. 도심이나 숲길, 공원에서 조깅하는 남녀를 만나는 일도 어렵지 않고, 각 도시마다 열리는 마라톤 대회는 지역주민 모두가 질주하는 듯 참가자 수가 많다. 수영은 초등학교에서부터 교과목으로 섭렵하는데, 수영법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깊은 물속에서 편안히 떠있거나 수백 미터 이상 먼 거리를 오래 헤엄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한다. 때문에 절벽에서 발이 닿지 않는 바다로 다이빙하거나 깊은 호수 한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 꼬맹이들에게도 겁나는 일이 아니다. 주기적으로 자전거 하이킹을 떠나고,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는 암벽대를 오르며 근성과 담력을 키운다. 물론 분데스 리그가 개최되면, 맥주병을 들고 얼굴이 불그레해진 축구팬 떼거리들과의 만남은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동호회 경기에서부터 마라톤, 분데스 리그, 세계선수권대회까지 매년 독일에는 수 천 가지의 크고 작은 스포츠행사가 개최된다. 계절별로, 산악경기나 수상경기로, 야외운동장 또는 실내경기장에서, 큰 도시에서 혹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직업선수로서 또는 아마추어선수가 되어, 그도 아니면 관객이 되어 함께 땀 흘리는 스포츠. 그러나 스포츠가 건강에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스포츠가 규모를 가진 행사로 개최될 때 자연,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일찍이 건강을 위한 스포츠가 환경을 파괴하여 결국 건강을 해치게 되는 모순적인 순환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각성이 일었다. 스포츠 행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행사개최자가 계획에서부터 진행과 사후조처를 어떻게 기획하고 진행하느냐에 따라 다른 양상과 결과를 낳는다. 개최자의 철학에 따라 지속가능한 행사로서 공적 이미지를 향상시킬 수 있고, 비용 절감 효과까지도 얻을 수 있지만, 아쉽게도 그 반대인 경우가 꽤 많았고 독일에서는 해당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행사를 치르지 못했던 경험도 있었다. 경기가 잘 안 풀림에도 애초의 작전을 고수하는 감독은 감독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작전을 다시 짜야 한다. 이른바 녹색스포츠 전략. 독일에서 일고 있는 녹색스포츠 바람을 소개해본다.

녹색챔피언 캠페인 2.0

독일 올림픽스포츠연맹은 연방환경부, 생태연구소와 공동으로 녹색챔피언 캠페인 2.0을 진행하고 있다. 녹색챔피언 캠페인은 지속 가능한 스포츠행사를 위해 계획에서부터 시설·설비, 진행, 사후 조처를 위한 정보와 선례들을 소개하고, 확인해야 할 구체적인 사항들을 지침으로 만들어 제공한다.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우선 경기장을 새로 건설하거나 리모델링할 때, 운영할 때 생태적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자원의 재활용과 적절성을 고려해야 하며, 설계할 때 엄격한 수요조사를 진행해서 경제성과 생태성의 균형 있는 구상을 핵심으로 한다.
에너지절약과 기후보호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스포츠 행사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에너지 절약과 효율성 향상을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
폐기물 발생에 대처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폐기물을 줄이는 것과 분류수거시스템을 통해서 재활용 가능한 자원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지속 가능한 물 관리 역시 빠져선 안 된다.
물 소비를 줄이고 빗물과 지표수이용을 최대화한다. 행사장 음식과 음료는 지역먹거리, 친환경적이고 적정한 방식으로 생산된 것을 공급하도록 한다.
행사용품들 역시 유해물질이 들어있지 않고 환경 및 사회적 기준을 충족한 것을 권장한다.
자연과 경관보호를 위해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적절한 시기에 인식하고, 대체지 가능성 여부, 보호대책 등을 수립한다. 행사 개최 전 후 전 과정에서 동식물상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한다.
관람객들과 선수들의 경기장으로의 이동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부하를 고려한다. 친환경 대중교통수단을 통해 교통량을 줄인다. 이는 소음을 현격히 감소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지속 가능한 관리운영이 중요하다. 분명한 지표와 구체적인 수단을 명시화하여 행사의 경제성, 사회성, 환경성 증대 방안을 꾀한다. 이는 투명성을 높이고 목표의 질적 최대치 달성에 필수적이다.
대화와 참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모든 당사자들이 빨리 연결되어 동기와 목적, 대책을 둘러싼 열린 대화를 이끌어내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이 가능해진다. 스포츠행사에 대한 주민들의 동의를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녹색스포츠 행사를 위한 다양한 사례들

– 두 번의 고배를 마셨던 독일 뮌헨의 동계올림픽

독일 뮌헨의 동계올림픽 유치 시도는 2018년 동계올림픽은 개최지가 평창으로 확정되면서 탈락했고, 2022년 개최는 주민투표 부결로 유치신청조차 못하게 되었지만, 행사 주최측의 컨셉은 눈여겨볼 만 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림픽위원회는 스포츠행사로 인한 환경부하를 줄이고 개최지에 긍정적인 녹색유산을 남길 수 있는 행사 방안을 요구한 바 있다. 독일 뮌헨은, 이것을 단지 지켜야 하는 부담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유치를 위한 핵심적 사항으로 담아냈다. 모든 개최지의 자연환경데이터를 구축하고, 이미 존재하거나 계획된 교통시설들을 분석, 동계올림픽 기후중립을 위한 기본 설계를 진행했다. 에너지 효율성에 우선을 두어 동계올림픽을 통해서 34,000톤의 이산화탄소를 절감할 수 있도록 구상했는데, 자원과 에너지 소비뿐만 아니라 판촉상품과 음식, 지역발전까지 포함하여, 환경과 지속가능성 개념을 행사 주요영역에 맞게 도입했다. 환경보호와 지속가능성을 바탕으로 한 행사 컨셉은 향후 타 지역 개최유치를 위한 척도와 모델을 제공했다고 평가 받고 있다. 물론 평창에게 모범이 되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 기후 정의를 위한 그린 골을 득점하라! 2006 독일 월드컵

spo12006 독일 월드컵은 기후정의에 입각한 스포츠 행사를 기본 전제로 삼았다. 온실가스는 에너지 효율이나 절약방안을 동원해서 배출을 최소화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양이 있기 마련이다. 2006 월드컵은 피할 수 없는 온실가스 발생을 다른 지역의 기후보호를 위한 프로젝트에 지원해서 차감한 첫 스포츠행사이다. 인도와 남아프리카에 바이오가스 시설을 설치하는 기후보호 프로젝트는 지역주민들의 건강과 환경을 향상시켰고 이산화탄소 10만 톤을 절감했다. 이는 전체 독일 2006 월드컵 행사과정에서 발생한 96,000톤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상쇄하고도 남는 양이다. 때문에 국제행사에 참여하기 위한 선수 및 관계자들의 비행 이동과정에서 발생하게 된 5,100톤까지도 커버할 수 있었다. 인도와 남아프리카 기후보호 프로젝트에 투여된 약 1백20만유로는 10만 톤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금액으로 환산한 액수와 비슷하다. 일부 금액은 2004년 쓰나미로 인한 피해 주택을 복구하는데도 지원되었다. (사진출처: https://www.dbu.de/123artikel33140_3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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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FI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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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com)

 

– 빗물 활용! 2006 독일월드컵 베를린 경기장

2006년 월드컵 경기가 펼쳐진 여러 곳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은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이다. 경기가 이루어지는 동안 특히 물 관리에 중점을 두었는데, 지하에 매설된 빗물 통은 1,400㎦ 용량으로 경기장에 10회의 물을 줄 수 있는 양을 담을 수 있다. 21미터 폭에 11미터 깊이의 이 통은 유럽 축구경기장에서 보유하고 있는 빗물 통 중 가장 큰 용량이다. 42,000㎢의 경기장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의 절반가량이 이 빗물 통에 저장된다. 나머지 절반은 도랑으로 스며들어 자연스러운 물 순환시스템으로 흐르도록 설계되어있다. 시간당 9만 리터를 끌어 올리는 세 개의 펌프로 저장된 물을 걸러서 활용했다. 년간 15,000㎥의 담수와 상수요금을 절약할 수 있다.

– 멸종위기새를 배려한 세계스키선수권대회 2011

성공적 환경기획을 위해서는 전문가에 의한 계획, 명확한 업무관할과 책임, 충분한 재정지원이 필수적이다. 이 세 가지 전제는 2011 가르미슈(독일 뮌헨 인근) 스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잘 발휘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최측은 조직 안에 자원환경분과와 교통분과를 신설해 재정을 지원했다. 담당자들은 친환경적인 스키대회 전략을 마련했다. 독일 바이에른 주와 오스트리아 티롤간 교통사업자들은 관객들을 위한 무료 버스와 열차 운행에 협력했다. 애초에 지역의 조류보호단체는 행사 시설 등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한 바 있지만, 생물종 보호와 대체지 마련 과정에 함께 협력하게 되었다. 멸종위기보호종을 위해 미디어와 스폰서를 위한 헬기 운행을 제한하거나 레이져 쇼 등을 금지했다.

– FSV마인츠 05 구단 (1.FSV Mainz 05)

스포츠 경기에서 기후대차대조표는 관객의 경기장으로 이동과정에 크게 좌우된다. 독일 프로축구 리그에서 역시 다르지 않다. FSV마인츠 05는 축구팬들의 친환경적 이동수단을 위해 대중교통과 입장료가 결합된 콤비티켓을 판매하거나, 자전거 주차를 용이하게 하는 등, 친환경적 교통수단의 접근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고심해왔다. 타 지역에서 경기를 치를 경우 추가로 팬 버스나 팬 기차를 마련, 자가용을 타지 않고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이동을 적극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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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mainz05.de/mainz05/engagement/mission-klimaverteidiger.html

– 유기농 소시지 빵과 함께 하는 2011프랑크푸르트 세계 여자축구 선수권 대회.

좋은 먹거리와 좋은 경기의 상관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생산에서, 가공, 이동, 포장, 폐기되기까지 많은 에너지와 원료를 소비해야 하는 먹거리. 유기농법은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쓰지 않는다. 화학물질로 인한 지하수와 토양 오염을 막을 수 있고, 화학비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에너지 역시 절약할 수 있다. 2011세계여자축구선수권 경기가 이루어지는 경기장에서는 최소 하나의 식단은 유기농으로 제공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독일에서는 어떤 종류의 행사가 열리든 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먹거리가 있는데, 그릴로 구운 두툼하고 기다란 소시지가 먹음직하게 끼워진 빵이다. 프랑크푸르트 경기장에서는 유기농 소시지 빵을 제공했고 24,000개나 판매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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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기농 면으로 만든 기념품을 선보였던 비일 체조경기

스위스 베른주에 위치한 비일 체조경기에서는 팬 상품과 기념품들을 유기농면 소재로 만들었다. 한번 쓰고 바로 버리게 되는 값싼 기념품이 아닌, 농약을 사용 하지 않고 재배한 유기농 면소재로 만든 모자 15,000개를 제작했다. 또한 관객들은 100퍼센트 재생 폴리에스테르 섬유로 제작된 티셔츠를 구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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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achhaltigkeitsbericht, Eidgen?ssisches Turnfest 2013 Biel

– LED 전구와 함께 테니스를!

VfL Sindelfingen 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150년 전통의 아마추어스포츠클럽이다. 축구, 테니스, 핸드볼, 수영, 태권도 등 30개 스포츠 종목에서 8,000명 이상의 회원들로 운영되고 있다. 이 클럽은 두 개의 테니스 경기장 내 전열기구를 LED로 교체했고, 그 결과 년간 전력소비량을 208,400kw에서 57,800kw로 감소시킬 수 있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 10만킬로그램을 줄일 수 있었다. 전기료는 기존에 비해 25%에 불과했고, 3만유로가 절약되었다. LED교체를 위해 투자한 8만유로는 3년이 채 못되어 회수되었으므로, 이제 절약된 전기료를 모아 의미 있게 쓰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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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ecobility

– 새의 부화시기 이후로 공사장 리모델링을 연기한 세계 주니어 스키 선수권 대회

벌목? 서식동물에 대한 위협? 독일 흑림지역 내 힌터차르텐에서 개최된 국제스키연맹의 세계 노르딕 스키선수권대회 2010는 크로스컨트리트랙을 만들거나 사격장을 리모델링할 때, 자연 및 경관보호를 주요 사항으로 고려했다. 넓은 면적을 필요로 하는 경기장을 새로 짓는 것보다 기존 경기장을 리모델링 했다. 경기 장소가 조류보호지역 내에 위치했기 때문에 계획단계에서 실시된 조류조사를 조류학자에게 위임했다. 목도리 지바뀌, 큰 뇌조 Tetrao urogallus 보호대책도 수립했다. 이른 봄 또는 여름에는 민감한 멸종위기 새들이 교미를 위해 짝을 부르거나 알을 낳는데, 이 시기가 공사일정과 겹치는 문제가 발생했다. 주최측은 부화시기 이후로 공사일정을 늦추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사 개최 전까지 공사일정은 무리 없이 완료되었다. 자연을 기본으로 염두에 둔 추진일정 덕이다.

평창동계올림픽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이들이 환경보호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와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온실가스 제로화를 위해 탄소배출권을 기부받고 있다는 내용이 눈에 띨 뿐이다. 배출되는 온실가스량을 직접 줄일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또는 행사 과정에서 발생하게 될 배출량을 다른 노력을 통해 상쇄할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배출권을 기부받겠다? 온실가스 배출권을 기부받아서 온실가스를 더 많이 맘놓고 배출하겠다는 말인가? 배출권을 기부 받아서 온실가스를 제로로 만들겠다는 놀랍도록 왜곡된 셈법. 이런 발상은 환경성과 지역발전, 경제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천혜의 산림유전자원을 훼손하면서 경기장을 새로 짓고야 말겠다는 의지에서나 나올 수 있는 구상이 아닐까.
녹색스포츠로 도전하는 경기,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요원한 것일까.

임성희 /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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