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 정부, 녹색성장의 가능성과 과제 –
2008년 12월 11일, 폴란드 포즈난 제 14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인류는 기후변화와 세계경제 위기라는 두 가지 위기를 함께 풀어야 합니다. 이것은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을 통한 ‘녹색성장’을 통해 가능한 일입니다.”라고 연설했다. ‘녹색성장’이 지구의 위기를 풀어가는 화두가 되고 있다. 새로운 미대통령 오바마도 ‘녹색성장’을 추구한다. 오바마는 ‘환경’과 ‘경제’의 조화를 통해 성장을 이룩하겠다는 공약을 실현할 수 있을까? 오바마의 아버지 나라 케냐는 기후 변화로 극심한 가뭄과 사막화로 고통 받고 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인도네시아는 해수면 상승으로 2년 사이 섬 24개가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기후변화가 지구촌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대선에서 오바마가 내건 기치는 ‘변화(Change)’와 ‘화합(Union)’이다. 여기서 ‘화합’의 메시지는 미국 사회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독불장군처럼 ‘홀로’ 달렸던 부시와 달리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당선 연설문에서 “기후 변화는 흑인도, 백인도, 라틴계도, 아시안계도 아닌 우리 모두가 직면한 문제”라는 것을 강조했다. 미국이 직면한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 오바마는 지구의 ‘미래’를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국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오바마의 ‘새로운 에너지’ 비전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4월,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2025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으며, 2025년 이후부터야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해 전 세계의 비난을 받았다. 세계 인구의 4.6%인 미국은 전 세계 에너지의 25%를 소비하고, 마찬가지로 지구 온실가스의 4분의 1을 배출한다. 그동안 미국은 ‘경제 위축’을 이유로 온실가스 의무감축 노력에 동참하지 않았다.
반면 오바마는 선거기간 202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대 수준으로 안정화시키며, 2050년까지 1990년 대비 80%를 줄일 것을 제시했다. 지금까지의 미국과는 분명 다른 태도이다. 미국은 중국, 인도와 같은 개도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미국도 교토의정서에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오바마는 이제 우리도 참여할 테니 개도국도 참여하라는 식이다. 오바마는 당선직후 부시가 박차고 나온 교토의정서 체제에 복귀할 것임을 시사했다. 포츠난 회의를 앞두고 “이번 회의에는 부시 행정부가 참석하지만 내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청청 에너지에 투자하는 어떤 기업도 워싱턴의 동지가 될 것이며, 기후 변화에 대해 행동하는 어떤 국가도 미국이라는 동맹을 얻을 것이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의 공약 ‘미국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석유와 몇몇 대기업에 의존한 거대한 에너지 산업을 저탄소 에너지산업으로 전환하면서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것이다. 우선 석유 회사의 과도 수익에 대한 세금 부과를 통해 저소득층 가정에 단기 에너지 환급금을 제공한다. 일명 ‘로빈후드세’인데, 부시 정부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정책이다. 석유해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향후 10년 동안 미국이 현재 서남아시아와 베네수엘라에서 수입하는 원유량을 10% 이상 감축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에너지 효율과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에 10년간 1500억 달러(약 222조)를 투자한다. 2012년까지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력의 1/10, 2025년까지는 전력의 1/4을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500만 명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이같은 오바마의 ‘녹색성장’을 실현할 인물들은 ‘과학자’들로 구성되었다. 지난 12월 15일, 오바마는 에너지장관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스티븐 추 박사를 지명했다. 스티븐 추 박사는 재생가능에너지 기술과 산업 투자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을 주장해온 대표적인 학자이다. 재생가능에너지를 성장동력으로 삼기위해서는 기술개발과 투자가 중요하다. 그 점에서 스티븐 추 박사는 적임자라는 것이다. 이어 백악관 과학기술보좌관에 존 P 홀드런 하버드대 교수를 임명했다. 홀드런 교수 역시 기후변화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부시행정부의 기후변화정책에 오랫동안 문제제기를 해왔다. 영국정부의 기후변화 자문관 스티븐 킹 박사는 홀드런 교수의 오바마 행정부 결합에 대해 “최상의 선택”이라는 표현을 썼다. 두 사람의 임명은 오바마 정부가 에너지 문제를 단순히 정치적 비전 제시가 아닌 과학과 기술을 통해 실행력을 담보하겠다는 것이며, 기후변화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미 연방정부의 지구온난화 연구를 대부분 관장하는 국립해양대기청(NOAA) 청장에는 제인 루브첸코 오리건주립대 교수가 발탁됐다. 루브첸코 교수는 온실가스배출금지를 지지하며, 환경사안에 대한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정책을 촉구해온 인물이다.
‘신에너지정책’을 통한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미국은 과학기술 강국이다. 재생가능에너지 기술분야에서 독일과 일본이 이미 장악한 실리콘계 태양전지 시장보다 비실리콘계 태양전지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을 확대해서 이 시장을 선점한다면 재생가능에너지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다. 전세계 태양광 발전 규모는 2007년 2.8GW에서 2030년에는 280GW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시대에 미국은 태양열발전, 목질계 바이오에탄올, 탄소포집저장 분야에 대한 기술개발과 투자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미국의 풍력발전 기술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2000년에서 2007년까지 세계 풍력발전 시장은 연평균 27%의 성장했고, 앞으로 풍력발전 용량은 2020년까지 6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발전으로 인한 경제성 확보와 미국 국내 시장을 감안하면 유럽에서 이미 입증된바와 같이 재생가능에너지산업이 충분히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독일에서는 지난 7년 동안 재생가능 에너지 산업을 통해 2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다. 녹일 녹색당 한스 요셉 펠 의원은 “풍력, 태양 에너지 산업은 독일 경제 성장의 견인차가 됐다”며 “2015년을 기점으로 자동차 산업을 넘어서는 주요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전방하고 있다. 스웨덴은 세계1위 풍력기업 베스타스를 선두로 풍력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에 제시한 경기부양안은 재생가능에너지와 공공기관 에너지효율 향상을 중심으로 짜여있다. 향후 3년 안에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을 두 배로 늘리고, 재생가능에너지를 위한 ‘스마트 전력망’ 인프라 구축에 예산을 투자한다. 또 연방정부 건물의 에너지효율을 향상시키고, 에너지비용절감을 위해 2백만 가구를 대상으로 에너지효율향상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그러나 늘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은 성장하겠지만 그만큼 전통적인 에너지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보수진영은 석탄, 가스, 석유와 핵, 자동차산업 등에서 일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는 불가능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미국기업연구소 연구원 케네스 P. 그린은 “녹색성장 정책에 따라 전통적인 전력플랜트는 폐쇄되고 대규모 에너지 인프라는 해체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백만 명 이상 고용하고 있는, 석탄, 가스, 핵, 그리고 자동차산업에서 자본과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산업으로부터 빠져나온 노동자들이 사회적 안전망의 지원을 받지 않고, 고용불안으로 이어진다면 오바마의 ‘새로운 에너지’ 비전은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미국에는 노동조합, 환경단체, 지역운동, 기업이 함께하는 ‘아폴로 동맹’과 시에라클럽과 미국금속노조의 연대체인 ‘블루그린동맹’, 환경정의 운동 등을 통해 녹색일자리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기반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에 있다. 오바마는 ‘녹색 일자리 기업(Green Jobs Corp)’을 창업해 저소득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에너지 효율 부문 교육을 통해 인력을 육성하고, 저소득층 가구를 대상으로 한 에너지 효율 프로젝트(Weatherization)에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다. 에너지 복지, 환경, 일자리 세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인데, 녹색일자리가 단순저임금 일자리가 되지 않도록 정책을 잘 설계해야 한다.
석유에너지 기업의 대반격
오바마가 전통적인 에너지 산업계의 노동자를 설득한다 하더라도 당장 오바마의 기후변화 공약이 침체된 경제에 부담을 지운다고 생각하는 산업계와 의회지도자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의 주장은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플로리다, 위스콘신, 캔자스 등 주정부가 꾸준히 기후변화 대응을 준비해온 주에서는 환영을 받을 것이지만, 민주당내에서도 석유 생산이 많은 동부나 중서부 지역 출신들로 구성된 의원그룹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국에서 기후변화 정책을 선도하는 캘리포니아주의 파산 가능성이 큰 지금 ‘새로운 에너지’ 비전이 석유산업계의 거센 로비를 감당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실제 2006년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석유 회사가 채굴하는 석유와 가스에 대한 과세(석유세)를 통해 10년 동안 40억 달러를 재생가능에너지 연구와 기술개발에 투자한다는 ‘제안 87(proposition 87)’을 주민투표에 붙였다. 환경의식이 미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55:45로 이 제안을 거부했다. 처음에 통과가 확실시되던 석유세 도입이 석유대기업들의 집중적인 로비로 인해 부결된 것이다. 석유 대기업들이 ‘석유세’가 결국 가스와 에너지의 가격 상승을 가져와 주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담이 될 것처럼 선전했다. 광고비로만 9,500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결국, 미국 최대의 청정에너지 정책은 좌절되고 말았다. 지난 1997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교토의정서에는 동의한바 있지만, 비준과정에서 상원의 압도적인 반대(95-0)에 부딪힌바 있다. 게다가 경제불황에 따라 석유가격이 계속 떨어지면 재생가능에너지가 상대적으로 경제성을 담보하기 힘든 측면도 작용할 것이다.
민주당은 기후 변화 대책과 관련한 주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 법안에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 할당과 거래 제도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를 상업화하며, 차세대 바이오 연료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보급한다는 내용이 담긴다. 지난 폴란드 포즈난 회의에 미국 대표로 참석한 존 케리 의원은 이 법 또한 “경제 악화와 예산 문제로 내년 말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전까지 관련법의 상원 승인을 얻어내지는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 바 있다.
신에너지정책은 온실가스를 실제로 줄일 수 있을까?
전통적인 에너지업계의 반발도 반발이지만 기존 산업을 ‘녹색화’시키는 것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충분히 줄일 수 있을지도 따져볼 일이다. 온실가스 감축 정책수단으로 과학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방식도 문제이다. 탄소포집저장기술과 석탄액화가스화 같은 기술의 타당성도 의문이거니와 온실가스 배출의 원인이 되는 에너지 소비 체계에 대한 반성 없이 탄소를 없애는 데만 집중해서는 문제를 풀 수가 없다.
1인당 이산화탄소 발생량 21CO2톤으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미국국민들이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지 않고서는 목표를 달성할 수가 없다. 오바마 당선자가 내세운 감축목표도 2020년을 기준으로 1990년 수준을 기준으로 삼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U가 요구하는 ‘90년 대비 25~40% 저감에 비해 현격히 낮은 삭감 목표이지만 미국은 1990년에 비해 현재 배출량이 14.4%나 증가했기 때문에 현재 제시한 목표도 달성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먼 미래라고는 하지만 2050년에는 1990년 수준의 80%의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목표는 오랫동안 석유와 에너지 중독에 가까운 삶을 살아온 미국 시민들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달성할 수가 없다. 과연 미국 시민들이 그런 준비가 되어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일례로 오바마는 매년 자동차 효율 기준을 4%씩 향상시키고, 취임 1년 내 백악관 모든 차량을, 2012년까지 연방정부 조달 차량의 절반을 하이브리드카로 바꾼다. 그런데 미국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인구 1000명당 800대이다. 성인들은 한 대 이상의 차량을 갖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 중독에 걸린 사회를 치료하지 않고, 기술로 대체만 해서는 온실가스를 줄일 수 없다. 하이브리드카 투자만큼이나 교외에 주거지를 두고, 자동차가 없이는 이동할 수 없는 도시구조와 교통시스템 개혁이 중요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부시 정권이 잃어버린 국제사회의 신뢰를 ‘기후변화’를 통해 회복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개도국에 대한 감축압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크다. 세계인들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크지만 그 역시 미국시민들이 뽑은 미국 대통령일 뿐이다. 다만 미국이 지구에서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지구의 미래를 위해 그의 ‘녹색성장’ 비전이 석유업계에 포위당하지 않고, 올해 코펜하겐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서 발휘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오바마도 오바마지만 ‘만신창이’ 한국의 녹색성장은?
오바마의 녹색성장의 향방도 중요하지만, 우리 입장으로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저탄소 녹색 성장’이 더 큰 골칫거리이다. 이명박의 녹색성장은 ‘핵 발전 확대’이다. 원자력 설비 비중을 2007년 26%에서 2030년까지 41%로 늘리고 발전 비중도 59%까지 늘릴 계획이다. 정부의 계획을 실행하려면 핵 발전소를 추가로 9~13기를 건설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2030년까지 국내 핵발전소는 40여 기에 육박하게 된다. 지금의 두 배에 가까운 핵 발전소가 들어서고, 우리의 주 에너지원은 전력으로 전환된다. 원자력 발전을 대폭 늘리고, 재생 가능 에너지도 늘이고 결국 총 에너지 생산량과 소비량은 지금보다 훨씬 더 증가한다. ‘저탄소’가 아니라 ‘고탄소’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 ‘녹색 성장’ 하겠다면서 경기 부양책으로 건설 경기를 일으킨다. 경부운하 추진을 위한 4대강 정비사업, 그린벨트를 풀고,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아파트 건설을 확대한다. ‘녹색’과 어울리지 않는 ‘잿빛’의 ‘불도저 성장’이다. 녹색성장을 이끌 인물이 주요 요직에 않아있는 것도 아니다. 환경부 장관은 ‘국토개발부’ 장관처럼 행세한다. 정부관료 모두가 ‘녹색’을 이야기 하지만 ‘환경’에 대한 철학과 이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오마바 행정부가 출범하면 에너지 정책에 혁명적인 바람이 불기 시작할 것이다. 우선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에 복귀하고 의회 비준을 요구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준비가 필요하다. 의무 감축을 회피해온 미국 뒤에 숨어서 눈치만 보고 있어서 될 일이 아니다. 정부는 ‘자발적 감축’을 주장하면서 2009년 감축 목표를 설정할 계획이지만 미국의 정책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저탄소 사회’를 향한 마라톤을 해야 한다면 지금부터 신발끈을 동여매고, 달릴 준비를 해야 한다. 핵 에너지에 올인할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를 ‘저탄소 사회’에 맞게 재조직해야 한다. 석유시대 100년의 파티가 끝나가는 지금, ‘녹색인 척’만 해서는 이 위기를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유진(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 국장)
월간 ‘말’ 2월호 기고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