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례나 공사가 중단·재개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 30여명이 부상당했다. 70대 어르신은 ‘자신이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 되겠다’며 분신 자결했다. 사업자와 사업자가 고용한 용역에 의해 비구니스님이 성폭행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고령의 농민들을 상대로 200여건의 업무방해·손해배상 등 고소 고발이 이어졌다.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경북 밀양에서 지난 8년간 일어난 일이다. 나열만 해도 이정도 인데 분쟁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의 상처는 어떨까. 지난 7월 3일 인권단체들은 ‘밀양 송전탑 인권침해조사 결과 보고회’를 통해 밀양 주민 10명 중 7명이 고위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걸프전 참전 미군보다 높다.
대체, 왜 반대하는 걸까. 송전탑 문제가 여전히 보상의 문제로만 맴맴 돌고 국가 에너지 정책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주요언론이 밀양 송전탑 보도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2012년 10월까지 조선일보는 단 한 차례도 밀양 송전탑 문제와 관련한 보도를 하지 않았다. 이후 밀양에 많은 시민들이 방문하고 사회적 관심을 받자 주요 언론들도 밀양의 문제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지만 대부분 보상에 초점을 맞췄다.

11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릴레이 30배 현장.
ⓒ미디어 오늘 이치열 기자 truth710@mediatoday.co.kr
지난 5월 한전이 송전탑 건설을 재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5월 22일 조선일보는 “다른 마을 주민들도 ‘국가 인프라가 국가에 꼭 필요하다는 걸 이해하고, 동네에서 살고 싶은 희망을 접고 동의해 왔다”며 “정부는 그런 주민들에게 가능하면 더 넉넉한 보상을 해줘야한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5월 15일자 사설을 통해 주민들이 요구하는 송전탑 건설 백지화나 선로를 땅에 묻는 지중화 요구가 국가적 낭비라고 일축했으며 같은 날 다른 기사를 통해 “밀양 지역 보상안에 대한 ‘떼법’ 논란도 고민거리”라고 보도했다. 두 언론사의 기사만 보면 주민들이 ‘떼’를 쓰며 더 많은 보상만을 요구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보수 언론들이 ‘보상’ 운운하는 사이, 주민과 한전의 갈등은 극에 달했고 공사 재개 과정에서 주민 20여명이 병원에 호송되었다. 지난 5월 28일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밀양 송전탑건설을 둘러싼 쟁점과 대안을 검토하기 위해 40여 일간 전문가협의체를 운영하기로 했고, 활동이 종료됐다.
결과는 안타깝다. 여당·한전 측의 전문위원들의 보고서가 독자적인 기술검토 없이 한전의 문서와 보고서를 그대로 대필·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 되었음에도, 전문가협의체 백수현 위원장 독단적으로 송전탑 건설 찬성의견을 담은 ‘우회 송전 가능 여부 등에 대한 검토 결과 최종 보고서’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제출됐다. 밀양 765kv송전탑반대대책대위는 ‘전문가협의체 보고서 무효’를 선언했다.
그동안 조선일보는 ‘국회·정부가 구성한 전문가협의체, 밀양송전탑 공사 재개해야 결론’, ‘밀양 송전탑 협의체 우회송전 어렵다…한전 측에 동의’라는 제목으로 한전과 여당 측 전문가들의 입장을 주로 다뤘을 뿐이다. 중앙일보는 정부의 갈등관리 능력이 필요하다며 밀양 송전탑 문제를 언급하기만 했을 뿐이다. 논문 표절의혹이나 전문가협의체 내의 대안을 둘러싼 쟁점은 제대로 소개되지도 않았다.
전문가협의체의 활동기간이 어쨌건 완료됐다. 양측의 입장은 두 개로 갈린다. 전문가협의체 위원장 독단으로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대해 주민과 야당 측 추천 전문위원들은 제대로 된 논쟁이 진행되지도 못한 협의체 말고 공론화 기구를 만들자며, 한전이 대신 쓰거나 한전 보고서를 베낀 협의체 보고서를 국회가 인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밀양 송전탑 피해주민들이 전쟁에 준하는 깊은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산지 8년이 지난 지금, 밀양 송전탑 문제는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과연, 대한민국의 정론지와 주요언론이 앞으로 어떤 논조의 보도를 이어갈지 걱정스럽게 주목한다.
녹색연합 배보람 정책팀장
*이 글은 미디어 오늘(www.mediatoday.co.kr)에 기고 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