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미래를 도둑질하는 핵마피아들의 위험 세탁
현대사회를 살아가려면 알아야 할 것도 조심해야할 것도 많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구제역 확산, 미군기지 고엽제, 가습기 소독제 사망, 4대강 공사,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등 많은 환경재난이 발생했다. 이런 사고가 왜 일어나는가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이 과학기술을 통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만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체르노빌 이후 핵발전 사고는 없다고 장담하던 핵산업계의 맹신을 철저하게 무너뜨렸다. 인류는 고작 ‘전기’를 얻는데 열광한 나머지 엄청난 ‘위험’을 키워온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위험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지방에서 발생한 지진해일이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웠다. 무시무시한 해일이 어촌마을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는 장면이 계속되다 곧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등장했다. 후쿠시마제1원전 1~4호기에 전력공급이 끊기면서 원자로 냉각기능을 상실했다. 원자로 온도가 상승하면서 노심용해와 수소폭발로 대량의 방사성물질이 방출되었다. 체르노빌과 동급인 제7등급 원전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날 이후 일본인들의 삶은 달라졌다. 일상생활에서 방사능에 피폭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사고 이후 일본과 한국이 핵문제를 대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엄청난 재앙 앞에서도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는 ‘욕망’과 마주하게 된다.
정치인, 관료, 핵산업계 삼위일체 – “방사능 위험 세탁하기”
고이데 히로아키씨는 원자력개발에 목숨을 바치겠다고 결심하고 도호쿠대학 공학부 원자핵공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곧 도시에 세울 수 없는 핵발전의 위험성을 깨닫고는 40여 년간 반핵의 길을 걷고 있다. 세속의 출세가 아닌 자신이 믿는 진실을 따라 살았다. 그는 <원자력발전의 거짓>과 <은폐된 원자력-핵의 진실>을 통해 핵에너지에 관한 위험이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조작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핵발전소에서 우라늄을 핵분열시키면 ‘핵분열생성물’이라는 방사선핵종이 생긴다. 요오드,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등. 이들은 자연에는 없는, 핵분열을 통해서만 생성되는 ‘죽음의 재’이다. 인체를 구성하는 DNA가 원자를 결합해 분자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몇 전자볼트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 볼트의 에너지를 내는 방사선에 노출되면 DNA가 파괴되고, 변형되는 것이다. 우리는 쓰리마일섬 사고와 체르노빌, 각종 핵실험으로 방사능의 위험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생명’보다 ‘이익’을 쫓는 사람들에 의해 핵폭탄과 핵발전소는 완전히 다른 것이고, 미량의 방사선은 괜찮다는 출처불명의 생각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 위험을 세탁한 것이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방사성 물질이 검출될 때마다 “건강에 당장 영향을 미치는 양이 아닙니다”, “당장 피난할 필요는 없습니다”라며 국민을 안심시켜왔다. 이 말은 ‘당장’ 급성장애로 죽지는 않는다는 말일 뿐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2005년 미국과학아카데미 산하 전리방사선의 생물학적영향에 관한 위원회는 “피폭의 위험성은 저선량에 이르기까지 비례하며, 역치는 없다. 최소한의 피폭도 인간에게 위험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히로세 다카시는 <위험한 이야기>에서 방사능물질에 관한한 ‘안전기준’은 없다며, 노출될수록 위험하기에 ‘위험기준’이라고 용어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 관해 거짓말을 되풀이 했다. 보안원 평가로 원자력시설 외부에 대한 큰 위험이 없는 상태라던 ‘국제원자력사고등급’ 4단계 사고가 한 달 뒤 7단계로 격상되었다. 원전부지 내 오염지도는 한 달 이상이나 공개하지 않았고, ‘긴급시 신속 방사능영향 예측 네트워크시스템(SPEEDI)’의 결과는 5월에나 공개했다. 오죽 정부 발표를 신뢰할 수 없으면, 야마모토 요시타카씨가 국민들 각자가 정보를 개척해야 하고, 전력회사 직원과 핵발전소직원(특히 간부들) 가족의 동향을 주시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충고하고 있을까?
방사능 사고에도 버리지 못하는 특권, 엘리트 패닉
7월 30일 “방사능 없는 후쿠시마를 돌려 달라! 핵발전소 없는 후쿠시마를 촉구하는 현민 집회”에 참석했다. 부슬비 내리는 후쿠시마역 광장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방사성물질이 대기를 채우고 있는데, 광장에서 노래하는 청년도,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기사도, 건널목 신호 앞의 시민들도 무슨 일 있냐는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정부대책이나 도쿄전력의 책임을 촉구하는 현수막 한 장 걸려있지 않았다. 핵발전소에서 60킬로미터 떨어진 이 지역의 방사선량(시간당 최대 1.19마이크로시버트, 연간 피폭량 10.4밀리시버트)을 확인하고, 마스크를 끼면서, 딱 6시간 머물다 얼른 도쿄로 돌아가겠다는 마음먹은 것이 무색해진다. 대체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 보일까?
<아이들을 방사능에서 지키는 후쿠시마 네트워크> 대표 나카테씨는 이런 현상을 ‘엘리트 패닉’이라고 했다. 후쿠시마현 공무원은 지역 인구, 시의원은 유권자, 기업은 직원과 고객 감소를 우려해 피난보다는 오염방제 대책에 더 적극적이었다. 지역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지위와 기반을 유지하기위해 정보를 은폐하는 ‘엘리트 패닉’에 빠진 것이다. 나카테씨는 후쿠시마 아이들을 위해 소아과의사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건강상담회를 마련했는데, 후쿠시마현 의사는 한 명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나 지역 지도자들은 후쿠시마현 사람들에게 ‘고향을 지키자’라는 막연한 희망을 심어줄 것이 아니라, 정확한 오염정보를 공개하고, 앞으로 미칠 영향을 알려주고, 더 많은 이들이 안전한 곳으로 떠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후지TV에서 농민을 돕자며 후쿠시마산 농산물 시식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방송인이 ‘급성 림프성백혈병’에 걸렸다. 병이 방사능 피폭과 관련있는지 밝히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 후쿠시마에 필요한 것은 막연히 ‘힘내라’는 응원이 아니다. ‘사전예방 원칙’으로 주민들이 ‘만발성 방사능’ 장애를 겪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고이데씨는 책에 “오염된 사실을 애매하게 숨기지 말고, 명백하게 밝혀 채소든 생선이든 제대로 유통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나 임부들에게는 가능한 안전이 확인된 것을 먹이고, 오염된 것들은 방사능에 대해 둔감한 어른과 고령자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합시다”라고 쓰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지경이 되었을까? 이 말은 곧 방사성 물질로 한번 오염이 발생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험을 세탁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후쿠시마사고의 원인을 이렇게 분석한다. “현재 사태가 단순히 기술적인 결함이나 조직적인 허점 때문이고 그것을 수정한다면 해결 가능한 하자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쓰나미 규모 예측 실패나 비상전원 배치 실수, 폐로의 경제 손실을 두려워하여 바닷물 주입을 주저하는 바람에 사태를 악화시킨 것만이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본질 문제는, 정권당(자민당)의 유력정치가와 엘리트 관료가 주도권을 쥐고, 돈다발의 위력으로 현지주민 반대를 무시하고, 지역사회 공동체까지 파괴하며 죽자 사자 핵발전 건설을 추진해 온 것 자체에 있다.”
핵발전은 2차대전 패전 후 일본의 핵무장 열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수단이자, 토건세력, 관료, 유력정치가들이 이권을 얻기에 딱 맞는 에너지원이었던 것이다. 결국 일본은 핵발전소 54기와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을 건설했다. 재처리공장에서 방출될 크립톤-85, 트리튬-3, 탄소-14와 같은 핵종은 돈이 든다는 이유로 전량 방출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일본 전력회사가 영국과 프랑스에 재처리를 위탁하면서 1톤당 2억 엔이 들었는데, 1톤당 4억 엔이 드는 롯카쇼무라 재처리 공장을 고집하는 것은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확보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몬주 고속증식로도 황당한 사업이다. 고속증식로는 비핵분열성 우라늄을 플루토늄으로 변환시키는 사업이다. 1992년 가동을 시작한 몬주원자로는 시험운전을 시작하자마자 사고가 났고, 2010년 5월 8일 재가동 1시간 만에 문제가 발생해 정지했다. 일본이 무리한 고속증식로 사업을 밀어붙이는 이유도 우수한 핵무기재료가 되는 핵분열성 플루토늄을 얻기 때문이다. 고이데씨는 ‘엉터리 학자는 범죄자’라 단언한다. 그는 지금껏 1킬로와트시도 전기를 생산하지 못한 ‘몬주’에 1조 엔을 쏟도록 계획한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들과 아직도 고속증식로가 금방 된다는 학자들은 모두 형무소에 넣어야 한다고 분노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요시타카씨가 표현한 “죽자 사자” 원전을 건설하려는 자들은 한국에도 있다. 지난 11월 21일, ‘후쿠시마 사고를 도약의 기회로(어떻게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는지!)’라고 내건 제4차원자력진흥종합계획(2012~2016)을 통해 전력 중 핵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59%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신규 핵발전소 부지 2~3곳을 확보하고, 2030년까지 수명이 끝나는 12개 원전 전체의 수명을 연장한다. 건식처리 기술개발과 소듐(나트륨)냉각고속로 추진은 일본 전철을 밟아 핵재처리 시설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렇게 최첨단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정작 핵발전소에서는 황당한일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총 11건의 핵발전소 정지사고가 발생하였다. 그 중 고리핵발전소에서만 6번의 사고가 발생했고, 최근에는 중고부품을 새것으로 조작해 납품한 비리가 적발되었다. 고리1발전소 중고 부품을 마치 새것인 양 다시 2발전소로 납품한 것이다. 온 국민의 생사가 달린 핵발전소가 이렇게 엉터리로 운영되고 있고, 그나마 외부로 알려지는 사건이 극히 드물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국적으로 핵발전소가 21개나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불안하기만 하다.
한국의 핵발전소도 일본 못지않게 노후한데다 운영방식이 관료주의, 비밀주의, 기술제일주의에 찌들어, 결코 사고 위험에서 안전하지 않다. 관악산에 핵폐기장 짓자던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 원로학자가 국가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다시 그들만의 리그이다. 2030년까지 핵발전소 80개를 수출한다는 정부의 허황된 목표 또한 변함이 없다. 우리와 아이들의 미래를 윤리적이지 않고, 환경을 파괴하며, 경제성이라곤 없는 핵에너지에 걸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핵발전소 사고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허덕이는 일본을 보며 ‘후쿠시마 사고를 반성의 기회로’ 삼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제4차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만든 원자력학회는 대체 어떤 학자로 구성되었는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 고이데씨가 얘기하는 형무소에 가야할 엉터리 학자들이 온 국민을 위험으로 몰고,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건 아닌지 감시해야 한다. 핵발전소만큼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많은 이들에게 위험을 떠안기는 것이 없다. 핵발전소 추진에 직접 관련된 학자와 핵산업계가 그렇고, 이들을 비호하는 정치인들이 그렇고, 넓게 보면 핵발전소 주변 주민에게 위험을 떠넘기며 핵전기를 펑펑 쓰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더불어 미래세대에게 핵폐기물 처리라는 짐을 지우는 지금의 어른들도 해당된다. 그래서 고이데씨가 후쿠시마 사고의 책임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속은 사람에게는 속은 사람 나름의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원전을 용인해왔던 책임은 우리 어른들에게 있습니다.”라고.
2012년 3월 11일을 준비하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다룬 세권의 책을 읽으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맴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애초 저자들이 책을 쓴 목적이었을 것이다. 고이데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치, 기업, 학자, 미디어가 하나가 되어 작동하는 ‘원자력 마피아’를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나요?” 대답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가 먼저 나서서 하겠다. 나도 그 방법을 잘 몰라 초초하고 안타깝다”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의 거짓>을 집필하고, 또 40년 넘게 핵발전소 자체가 문제라고 제기해온 학자의 대답이다. 그만큼 그 구조를 깨기 어렵다는 말이다.
후쿠시마의 교훈은 핵발전소는 그 자체로 위험하며, 절대로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믿음은 허황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수명을 넘긴 핵발전소는 가동해서는 안 되고, 한곳에 밀집해 지어서도 안되며, 추가핵발전소는 위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절대로 지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핵사고를 걱정하는 이들을 ‘불순·불온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한나라당과 침묵하는 민주당을 보면서, 한국에서 핵사고가 난다 해도 더 심하면 심했지 일본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결국 시민 권력이 나서야 한다.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핵산업계가 만들어놓은 틀을 부숴야 한다. 그들은 결코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 일본원자력자료정보실 공동대표 반 히데유키씨는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핵발전소사고를 계기로 반핵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사고가 그의 인생을 바꾼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핵없는 세상 공동행동’을 통해 활동하고, 탈핵에너지교수모임도 만들어졌다. 한살림을 비롯한 생협운동에서도 탈핵운동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녹색당이 태동해 정부의 방사능문제 무대책에 대해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동화작가들이 모여 핵발전소 위험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후쿠시마사고 이후 방사능 계측기를 들고 다니던 시민들이 노원구 아스팔트 방사능오염을 밝혀냈다. 아직 갈 길 멀지만 우리사회에서 회자되지 않던 핵발전소 문제가 후쿠시마사고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 가슴에 불씨 하나를 당긴 셈이다. 이 불씨를 어떻게 모으고 키울 수 있을까가 숙제다.
2012년 3월 11일, 세계 곳곳에서 후쿠시마를 기억하기 위한 시민행동이 펼쳐진다. 이날 우리는 광장에 모여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핵발전소 진흥정책을 중단시켜야 한다. 이 땅 어디든 핵발전소가 더 생기면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공부부터 같이 하자. 다카기 진자부로, 히로세 다카시, 고이데 히로아키, 야마모토 요시타카 씨가 쓴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며, 한국 상황으로 재해석하고, 자료를 다듬고 펴내는 일을 해야겠다. 전국적으로 강연도 많이 열어야겠다. 상투적이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라는 말을 믿고 싶다. 핵에 대한 두려움 없는 미래를 위해 작은 일 하나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
이유진(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팀장)
녹색평론 2012년 1-2월호 통권 제122호 기고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