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북극곰보다 못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지난 2022년, 녹색연합 활동가와 석탄발전 노동자가 만나는 자리에서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했던 말이다. 그는 국민 삶에 필수적인 전기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평생 몸 바쳤던 일터는 ‘미세먼지의 주범’, ‘기후 악당’이라는 비난을 받게 됐다. 시민의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기에 석탄발전소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버릴 처지가 됐다. 발전소 건설과 가동이 나라의 결정으로 시작된 것처럼, 문을 닫는 것도 정부 정책의 결과다. 하지만 대화와 대책이 전무한 정부와 회사, 그리고 먼 나라 북극곰은 걱정하면서도 가까운 노동자의 삶에는 무관심해 보이는 환경단체를 향한 서운함과 답답함에서 나온 말이었다.
2036년까지 전국의 석탄발전소 28기가 폐쇄될 예정이다. 이미 6기가 문을 닫았다. 수천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며, 특히 비정규직이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빙하 위 북극곰 만큼이나 발전소의 노동자는 위태롭다.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발전원인 석탄은 전 세계적으로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지구 온도 1.5도 제한 목표에 비춰볼 때 한국의 탈석탄 계획이 충분하진 않지만, 석탄발전소를 빨리 줄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탈석탄은 당장 발전소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탈석탄의 과정과 결과 모두 정의롭게 이뤄져야 한다. 기후운동과 노동자들이 함께 ‘정의로운 전환’을 말하는 이유다.
놀랍게도 한국의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중 74%가 석탄발전소의 폐쇄에 동의하고 있다. ‘고용이 보장된다면’이라는 단서가 있지만, 이런 선택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단지 일자리 문제만은 아니다. 정의로운 전환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으로의 전환이다. 노동자와 기후, 환경을 모두 살릴 수 있는 생산이어야 한다. 지금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을 위해 기꺼이 일하겠다고 말한다. 현재 발전 공기업들이 운영하는 석탄발전이나 가스발전은 기후위기 시대 점차 축소될 수밖에 없다. 전체 재생에너지 설비 중 공기업 비중이 10%도 채 되지 않는 현실은, 국가와 공공이 책임과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는 증거다. 발전 공기업은 이제 재생에너지 생산의 주체로 전환해야 한다. 그럴 때, 석탄발전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다. 최근 ‘공공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라는 요구가 등장한 배경이다.
당장 내년부터 충남 태안의 발전소가 문을 닫는다. 오는 3월30일 전국의 발전 노동자와 시민사회단체가 태안을 향한다. 1천여명의 행진이 예정돼 있다. 이들은 ‘기후재난으로부터 모두의 존엄과 안전’,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지역 주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한다. ‘석탄발전소가 폐쇄되더라도 노동자와 주민의 삶이 폐쇄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거 시기다. 정당과 후보자들이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관건 선거운동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전국을 다니며 민생토론회를 열고 있다. 재개발 규제 완화, 철도 지하화, 그린벨트 해제 등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개발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실효성 있는 기후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민생’ 안에 조만간 문 닫는 석탄발전소의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삶은 없다. 선거는 기후위기 너머 어떤 세상으로 나갈지를 논의하고 토론하는 장이 돼야 한다. 북극곰도 발전 노동자도 존엄한 삶을 살아가는 세상, 기후위기를 넘어선 세상은 그런 곳이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말을 쏟아내기 전에 먼저 귀를 열고 들어야 한다. 3월30일 태안에서 들려올 ‘발전소의 북극곰, 빙하 위 노동자’의 목소리를.
*위 글은 한겨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글: 황인철 (기후에너지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