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람사르정신을 회복하고 습지 파괴를 중단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28일부터 11월 4일까지 경남 창원시에서 람사르협약 제10차 당사국총회가 개최된 지 1년이 지났다. 당시 총회는 사상 최대 규모로 열렸으며 ‘인류복지와 습지에 관한 창원선언문(람사르총회 결의문 X.3)’ 등 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에 관한 32건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람사르총회가 개최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람사르총회에서 있었던 수많은 결의와 약속들은 지켜지지 않은 채 우리나라의 습지가 오히려 더 큰 파괴의 위협에 처해있는 상황에 우리는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람사르총회 개막식에 참석한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람사르총회를 계기로 습지보호구역과 람사르협약 등록 습지를 지속적으로 늘려 나갈 것이며, 람사르협약의 모범국가가 되겠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람사르총회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국제적으로 중요한 보전 가치를 지닌 우리나라의 습지 60여 곳 가운데 어느 하나도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지 않았다. 지난 10월 1일에 습지보호지역 두 곳이 새로 지정되었으나 이 가운데 한 곳은 지난해에 이미 람사르습지로 등록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보호지역으로 추가된 습지는 0.126㎢ 면적의 제주도 ‘1100고지 습지’ 하나뿐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제안하였으며 총회에서 채택된 창원선언문은 당사국이 “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을 세계의 정책결정권자에게 촉구하며, 습지의 파괴와 손실을 중단하고 습지의 자연스런 생태적 특성을 보전해야” 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렇지만 우리 정부는 람사르총회가 끝나자마자 4대강 사업 계획을 내놓아 4대강 일대의 주요한 하천습지와 자연 생태계 보전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지난 람사르총회에서 채택된 ‘습지와 하천 유역 관리: 통합적 과학기술 기침에 대한 결의문 X.19’는 협약가입 당사국이 “하천 유역 관리에 습지 보전과 현명한 이용을 통합”시키도록 촉구하였으며, ‘기후변화와 습지에 관한 결의문 X.24’에서도 “국가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 정책에서 습지의 생태적 특성을 유지”할 것을 촉구하였으나, 한국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비하겠다며 습지의 생태적 특성을 크게 훼손하는 4대강 사업을 추진하여 하천습지 보전을 위협하고 있다. 4대강 사업 추진으로 정부가 작성한 국가습지목록에 있는 130여개의 습지가 소실될 위기에 처해있다.
또한, ‘물새 비행경로 보전을 위한 국제협력 증진에 대한 결의문 X.22’에서는 “황해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갯벌 매립과 오염 등으로 도요물떼새들이 위협에 처해 있으므로 이를 보전하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며, 보호지역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결의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람사르총회가 있은 지 네 달 후인 2009년 3월에 인천 송도갯벌을 포함해 11건 총 8.1㎢ 면적의 연안 매립 계획을 승인하였으며, 세계 최대 규모로 갯벌을 파괴하는 새만금 간척사업은 농지 조성이라는 원래 목적을 잃어버린 채 계속 진행 중이다.
습지보호지역인 장봉도 갯벌과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강화도 갯벌과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의 번식지는 각각 인천만조력발전사업과 강화조력발전사업으로 크게 훼손될 위기에 처해있다. 또한 우리나라 갯벌 가운데 가장 보전상태가 양호한 가로림만 갯벌은 멸종위기야생동․식물 II급인 물범의 서식지이지만 이곳 역시 가로림만조력발전사업에 의해 훼손될 위기에 처해있다.
한국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습지보호지역이자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되어 있는 낙동강하구는 문화재보호구역을 절반으로 축소하려는 계획뿐만 아니라 겨울철새의 핵심 채식지를 양분하는 엄궁대교 건설과 국제신공항 건설 계획으로 철새도래지로서의 기반이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국제적으로 중요한 람사르습지 현황에 관한 결의문 X.13’은 우리나라 정부가 우리나라의 “습지보호지역과 습지인 생태계경관보전지역의 중요한 생태적 특성 변화에 대해 람사르사무국에 보고”하도록 했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습지 훼손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크다. 그렇지만, 경인운하와 서울시의 한강르네상스, 경기도의 한강잇기 6대사업과 연계하여 신곡수중보를 약 14km 하류로 옮기고 한강 하류 일대에서 대형 선박을 운행하려는 계획은 한강하구 습지보호지역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강정마을 연안은 희귀한 연산호 군락이 발달한 곳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 인접한 곳이지만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매립이 추진 중이다.
지난 람사르총회에서 우리나라 정부는 일본 정부와 공동으로 ‘습지시스템으로서 논의 생물다양성 증진에 관한 결의문 X.31’을 발의하여 “논의 동식물상과 생태적 기능, 습지 시스템으로서 논의 생태적 가치를 유지해온 벼농사 지역 공동체의 문화에 관한 조사를 활성화하도록 장려”하는 등의 내용이 결의문으로 채택되었으나, 이러한 내용을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람사르총회가 있은 지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습지는 보호받기는 커녕 각종 개발사업으로 전국 곳곳의 중요한 습지가 파괴되거나 훼손될 위기에 처해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국가 기본 발전전략으로 저탄소녹색성장을 채택하였지만, 녹색성장이라는 이름은 간데없고 각종 개발사업으로 오히려 습지를 파괴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이라는 람사르협약의 기본 정신을 되살려 대규모 습지 파괴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람사르협약의 모범국가가 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약속을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한국습지NGO네트워크 준비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