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칼럼]‘공룡’들만 사는 나라

2009.08.26 | 환경일반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중한 화학식은 ‘광합성’이다. 태양에너지를 받은 초록 잎은 ‘생명의 상징’이다. 풀이 ‘광합성’을 통해 최초의 먹이가 되듯, 우리는 나라의 근간인 ‘백성’을 질긴 생명력을 가진 풀에 비유해 민초(民草)라고 부른다. 우리사회에서 민초들은 노동의 생산자이자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자로 살아간다. 그들로 인해 경제가 돌아가고 순환한다. 그런데 ‘돈’과 ‘경제’ 자체가 사회의 ‘주인’이 되면서, 민초들은 가시밭길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 동네에도 기업형슈퍼마켓(SSM)이 들어섰다. 목 좋은 곳에 대형할인매장 체인이 들어서면서 과일가게 할아버지, 슈퍼마켓 아줌마, 정육점 아저씨, 빵집 청년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골목까지 비집고 파고든 대기업 자본의 힘에 자영업 서민들은 추풍낙엽이다.

도시 재개발 바람도 거세다. 아파트와 빌딩은 하늘 높이 올라만 가는데, 그 터에 살던 사람들은 쫓겨나고 있다. 추운 겨울날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 5명은 차가운 주검이 되어 가족들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이 여름이 다 가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철거민들의 눈물과 죽음에 아랑곳없이 대기업 건설 회사들은 막대한 개발이익을 취한다.

4대강 사업 예산은 발표된 것만 30조원 규모이고, 계속 늘고 있다. 반면 내년 보건복지가족부 예산은 4392억원이나 삭감된다고 한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하루도 빠짐없이 ‘서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서도, 정작 연약한 민초들을 위한 복지 예산은 대폭 삭감하고 있다. 대신 4대강 유역에 땅을 사 둔 사람들과 대형 건설회사들은 주판알 튕기기에 바쁘다.

대한민국이 공룡들의 나라로 변하고 있다. 정부가 4대강 사업과 같은 큰 판을 벌이고, 예산을 몰아주면 대형 건설회사와 대기업, 지역 토호세력이 고스란히 따먹는다. 경제가 돌아가려면 골고루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 동네 슈퍼마켓 아줌마도 돈을 벌어야 대기업의 물건이라도 살 수 있다. 전 국민의 25%가 자영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나라에서 대기업은 자영업의 생계기반을 흔들고 있고, 정부가 방관한다면 우리 경제는 골목에서부터 무너진다.

지도자는 민초들이 디디고 설 땅이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용산참사는 훗날 이 정부가 민초들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기록하고 평가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용산 철거민들의 다친 마음을 위로하고, 그들의 터전을 돌려주자. 생명과 자연을 파괴하는 4대강 사업 대신 민초들을 위해 돈을 쓰자. 대기업은 다같이 살기 위해 SSM 사업 확장을 중단하자.

역사는 발전한다. 민초들은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오늘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평가할 것이다. 공룡들은 비대해진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해 멸종의 길을 걸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는 거대한 공룡들이 판을 치는 ‘잔인한 세상’이 아니라 풀과 관목과 아름드리나무가 조화를 이룬 숲과 같은 사회다. 다시금 민초들이 디디고 설 땅이 되어주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유진 |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장>

경향신문 8월 26일자에 실린 생태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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