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기후재난에 대비한 마을 단위 진화장치 절실

2025.04.02 | 기후위기대응

비상소화장치 설치 현황 점검과 대책 마련 시급


국가적 재난인 경북 산불로 인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심각하다. 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30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고, 주택 3천700채가 전소되는 대규모 재난으로 번졌다. 지역별 피해는 영덕 1천356채, 안동 1천230채, 청송 770채, 의성 300채, 영양 110채로 확인되고 있다. 소중한 목숨이 희생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산불 대피체계에 대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 인명 피해와 함께 주택 피해가 뼈아프다. 행정안전부와 경북도가 미리 대비를 했다면 3천700채 중 상당 부분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다.

산불은 일회성 재해가 아니다. 2015년 이후 대형 산불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산림 인접 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도시 지역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에 소방 설비가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지만, 산불에 직접 노출되는 산림 인접 마을은 소방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행안부와 경북도를 비롯한 관계 기관들은 사전 경보와 장비 설치, 주민 교육 등 구체적인 준비를 하지 않았고, 그 결과가 이번 경북 산불의 참사로 드러났다.

반면 강원 영동 지역은 반복되는 산불을 겪으면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 왔다. 고성,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 등지에는 2024년 말 기준 총 1,623기의 ‘산림 인접 산불 비상소화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이 장비는 옥외소화전과 호스를 연결해 산불 발생 시 주택과 인접한 야산에 신속히 물을 뿌릴 수 있도록 구성된 일체형 소방 설비로, 초기 대응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특히 건조주의보나 강풍경보가 발효된 시점부터 선제적으로 물을 살포할 수 있어, 화재 확산을 막는 데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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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강원 영동 산림인접마을 산불비상소화장치(2024. 12. 31 기준)

이러한 장비는 지역 주민과 소방 당국의 협업으로 지속적으로 설치되어 왔으며, 2019년 고성·속초 산불 당시 고성군 토성면 홍와솔 마을에서 그 효과가 입증되었다. 산불 발생 19일 전 마을 주민인 소방전문가의 제안으로 주민들이 자체 경비를 들여 비상소화장치를 설치했다. 2019년 고성·속초 산불이 휩쓸고 간 많은 마을이 극심한 재산 피해를 입었던 것에 비해 홍와솔 마을은 상당수 가구를 지켰다. 홍와솔 마을의 사례가 강원 영동지역에 알려지면서 2019년부터 산림 인접 마을과 주택에 산불 비상소화장치 설치가 강원 영동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비상소화장치는 이후에도 꾸준히 효과를 입증해왔다. 2021년 강릉시 주문진읍 교향리에서 산불이 발생했으나, 주민들과 노인복지센터 관계자들이 발빠르게 마을 입구에 설치된 비상소화장치를 사용했고, 불은 산림 30㎡를 태운 후 5분만에 꺼졌다. 2022년 3월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바람을 타고 동해시까지 옮겨 붙었을 때도 주민들이 산불 비상소화장치 6개소를 사용하여 산불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동해시 망상동 괴란마을은 주택 5채가 불에 탔지만 나머지는 피해 없이 산불로부터 마을을 지켰다.

2022년 4월 양구 산불에서 양구군 청우리 전원마을 사람들도 비상소화장치를 이용해 마을을 지켜냈다. 마을에 있는 5대의 비상소화장치로 주택 등 건물에 먼저 물을 뿌린 뒤 산에 붙은 불길을 향해 물줄기를 쐈다. 주민들은 마을에 출동한 소방대원과 힘을 합쳐 진화 작업을 이어갔고, 청우리 31개 가구는 산불 피해가 없었다. 2022년 울진에서 발생한 불이 산을 타고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까지 번졌다. 2000년 동해안 산불 때 주택 9채가 불탔던 마을이다. 그러나 2022년은 달랐다. 좁은 골목에 소방차가 들어오지 못했음에도 주민들이 모두 나와 비상소화장치를 열고 주택과 인접한 야산에 물을 뿌려 방어선을 구축했다. 초기에 진압한 덕에 인근 10여가구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2023년 강릉 산불 당시 강릉시 저동 황토민박의 일흔이 넘는 주인이 직접 비상소화장치를 사용해 자신의 민박집을 지켰고, 해당 건물을 피해 주민의 임시 거주시설로 제공하기도 했다. 

경북 북부 산불 피해지역을 비롯하여 경북 전지역은 아직 산림인접 산불비상소화장치의 설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영덕(96개)을 제외한 경북 북부 지역은 설치 장비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안동 2기, 의성 5기, 청송 10기, 영양 1기뿐이다. 경남 산청도 1개뿐이고 울산 울주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 이번 산불로 큰 피해를 당한 경북과 경남을 비롯하여 전남과 전북, 충남과 충북도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구분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산청울주
개소521019110
표2] 2025년 산불 피해 시군 산불피해소화장치(2024. 12. 31 기준)

산림인접마을의 산불비상소화장치의 설치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산불로부터 지키는 직접적인 대책이다. 이제는 산림 인접 산불 비상소화장치 설치를 법적 의무로 규정하고,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설치가 필요하다. 경북과 경남을 비롯하여 전국의 소나무림과 인접 마을의 이격거리를 전수 조사하여 산불 비상소화장치를 설치해야 할 것이다. 이번 경북 북부 산불에서 확인한 것처럼 소나무숲은 산불 위험과 피해를 높인다. 이를 고려한 방어선 구축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더 이상 대형 산불이 발생한 뒤 뒷수습에만 나설 것이 아니라, 사전 예방 중심의 정책 전환에 나서야 한다.

장비 설치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사용법 교육과 훈련도 병행되어야 한다. 강원도 속초시 홍와솔 마을 주민들은 “소방당국과 시군에서 산불비상소화장치를 설치하는 것과 함께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의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홍와솔 마을 내 주민들은 1년에 두 번 자체적으로 비상소화장치 사용법 교육∙소방훈련을 실시한다. 마을 자체적으로 교육이 어려운 곳은 산불 비상대책기간 이전에 소방서와 시청이나 군청에서 비상소화장치 사용 교육을 지원해야 한다.

기후위기로 산불은 국지적으로 대형화하는 추세다. 산불 자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피해를 줄이는 일은 제도와 정책, 그리고 준비에 달려 있다.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실질적인 대책으로서 비상소화장치의 법제화와 전국적 설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정부는 이번 경북 산불을 계기로 실질적이고 예방 중심의 산불 대응 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반복되는 재난 앞에 무력한 대응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산불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문의: 자연생태팀 서재철 전문위원 (010-8478-3607, kioygh@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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