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24 야생동물탐사단 14기: 공존을 엿보았던 시간

2024.11.07 | 산양, 야생동물, 활동

바닷가에서 태어나 살다 보니, 산보다는 바다에 대한 추억이 많다. 새벽, 해 질 녘에 그을린 바다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고, 그 속에 헤엄치는 물고기나 날아가는 새를 볼 때 행복했다. 대학에 오면서 바다를 볼 기회는 줄어들었지만, 빈 마음을 새로 채웠다. 조그만 녀석들이 각각 개성이 있고, 활발하고 예뻤다. 자세히 바라볼수록 즐거워졌다.

또 다른 세상을 알아보고 싶어 야생동물탐사단에 참가하게 되었다. 산도 바다만큼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어느 산에서 내려다본 모습

5시간 정도 달려 경북 울진군 금강소나무숲길에 도착했다. 불그스름한 곧고 굵은 금강송들이, 빽빽이 자라있었다. 사람들과 인사하고, 간단한 준비운동을 한 후, 산을 올랐다. 완만한 길 덕분에 힘들지 않았고, 같이 가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참 재미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똥을 좋아한다. 똥으로 이야기하고, 장난치는 것을 재밌어한다. 야생동물탐사단에는 조금 나이든 아이들이 많았다. 긴 똥, 촉촉한 똥, 동그란 똥, 가리지 않고 뒤집어 보고, 만지고, 관찰했다. 똥이 더럽고, 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즐거운 대상이 되었다. 모두의 눈이 어린아이처럼 빛났다. 어릴 때로 회귀한 것 같았다.

어린아이 같다고 해서 배움이 얕은 시간은 아니었다.

똥에서 발견한 뼈, 변을 본 위치를 통해 삵의 똥임을 추측했다. 최상위 포식자인 삵은 당당히 길 가운데다가 똥을 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이와 달리 겁많은 산양은 앞과 뒤가 절벽으로 된 지점에만 똥을 눈다고 한다. 지나가는 벌레는, 뱀은, 나무는, 그리고 뼈는 어떤 동물인지 참여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여러 가지 지식이 모여 대답이 나왔다. 굉장히 유익했다. 숲속의 다양한 생물을 관찰하는 재미뿐 아니라, 이런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이 굉장히 즐거웠다.

산에서 내려오고, 근처 마을에서 식사를 제공받았다. 향긋한 나물로 이루어진, 든든한 밥상이었다. 어르신들 집에 초대받아서, 방바닥에 둘러앉자 정겹게 시간을 보냈다. 족제비, 산양, 고라니, 노루, 그리고 걸레가 떠내려가는 줄 알았다던 수달까지, 어르신들의 추억 속 남아있는 다양한 야생동물의 모습을 들을 수 있었다. 금강송에 많은 상처가 있듯이, 어르신의 이야기 전부가 행복한 추억은 아니었다. 2022년의 울진-삼척 산불. 마을 전체를 불꽃이 휘감았을 때의 경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본 마을을 둘러싼 하얗게 바랜 고목들이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본 2022년 울진-삼척 산불로 불에 타 죽은 금강소나무

첫날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는 시간이었고, 둘째 날은 자연의 상처를 보는 시간이었다. 마을 곳곳에 보이는 쓰러진, 또는 회색빛으로 죽은 나물들을 볼 수 있었다.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에서 취하여 하고 싶은 대로 부수고, 이용하는 것이, 틀린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이기에, 꼭 주위를 부수고, 이용하기만 할 필요는 없다. 우리 주위를 가꾸고 보호하자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울진의 산이 다른 가치에 밀려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근래에 저와 가장 가까운 친구 같은 존재는 매주 주말마다 만나는 피아노 선생님인데, 다음 주엔 산양을 보러 가야 해서 레슨을 미뤄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선생님께서 화들짝 놀라며 하신 대답은 “우리나라에 산양이 있어요?”,“산양은 염소인가요?“,”산양을 왜 보러 가시죠?”라는 답이었습니다. 아마 이 세 가지 물음이 산양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질문이며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들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양은 염소가 아니며, 서식지 최남단인 울진에 있는 산양을 보고 싶었습니다. 산양은 멸종위기 1급, IUCN VU(vulnerable,취약)종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 이후 산양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많은 관심이 필요한 종이라는 설명을 해봤자 선생님 귀에는 딱히 들려오지 않았지만요. 모르죠, 선생님 모차르트가 살고 있던 시대에는 산양이 흔했을지도 모른다고요!

생태계를 연구하면서 의외로 가장 많이 부딪히게 되는 문제도 이러한 종류의 것들입니다. 결국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보호하기 위해서도, 구조하기 위해서도, 생태계 조사를 하기 위해서도 모든 과정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관심을 요구로 합니다. 가장 큰 건 결국 지역 주민과 그들의 노력을 이해하고 가치를 알아주는 국민들이고요. 모든 생물은 동등한 생존권이 있다고 자주들 말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주변의 생물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사람 위주의 생활을 하다 보니 우리의 더 다은 생활을 위해 서식지 파괴 또한 빈번히 무차별적으로 행해지곤 합니다. 생존권은커녕 그들의 집부터 없애는 것이지요. 이렇듯 공존이란 여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가을이 물든 울진의 고요한 숲 안에서 산양에 대해 알기 위해 모인 사람들도,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활동가 선생님들도, 산양과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도 한 명 한 명 너무나 소중합니다.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의 마음도 소중합니다. 우리는 소중합니다. 그러니 같이 살아가는 생물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더 열심히 노력하며 연구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모쪼록 감기 조심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올겨울은 너무 춥지도 따듯하지도 않고 겨울답게 지나가면 좋겠습니다. 산양을 위해서도 그리고 인간을 위해서도요.

동물을 머리뼈를 관찰하는 모습. 알아본 결과 산양의 머리뼈로 밝혀져!
무인센서카메라를 설치한 곳 앞에 산양 똥이 수북한 똥자리를 관찰하는 모습
두천리 부녀회장님이 정성드려 차려주신 엄청난 밥상. 덕분에 든든했던 1박 2일!

야생동물탐사단 둘째날 아침. 두천리 일대를 걸으며 2022년 울진-삼척 산불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안전하게 하산한 야생동물탐사단!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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