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 서식지 관통하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울타리 철거
시급하다
차단울타리, 폭설, 36번 국도, 산불 4중고로 위태로운
산양의 세계적 최남단 집단 서식지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 산양이 폭설, 산불, 신규 도로 개발 및 기존 도로 미복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울타리로 인한 서식지 파편화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22년 역대 최장 시간, 최대 피해 면적인 울진·삼척 산불이 발생해 산양의 서식지가 교란되었고, 2024년에는 폭설로 인해 산양 폐사율이 높아졌다. 주요한 산양 서식지는 신규 36번 국도와 기존 36번 국도로 인해 이중 단절되어 있다. 이에 더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을 위해 2019년부터 울진 지역을 포함하여 강원, 경기, 경북, 충북을 중심으로 전국에 3,000km가 넘는 길이로 설치된 ASF 차단울타리가 이미 좁아진 산양의 서식지를 또다시 단절시키고 있다.
‘긴꼬리 산양(Long-tailed goral)’은 한반도, 중국 북동과 러시아 극동 아무르 지역에 서식하고 있어 ‘아무르 산양(Amur goral)’이라고도 불리며, IUCN Red list ‘취약(VU)’ 등급이다. 경상북도 울진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산양의 전 세계 최남단 집단 서식지이자 남방한계선이다. 울진 일대 밑으로는 산양이 집단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리적, 학문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그러나 울진·삼척에 서식하는 산양은 또 다른 집단 서식지인 설악산 일대와 같이 개체수가 많지 않아 2024년 폭설로 인한 산양의 떼죽음 당시에도 주목받지 못했으며, 관리·보전의 측면에서도 미흡한 실정이다.

야생동물 눈앞을 가로막은 울타리
2024년 3월부터 2025년 2월 현재까지 기존 36번 국도 일대에 무인센서카메라를 설치하여 ASF 차단울타리 인근의 산양 서식을 관찰한 결과, 설치한 6대의 무인센서카메라에서 2~30차례 산양이 확인되었다. 산양 이외에도 고라니, 너구리, 오소리 등의 야생동물 서식도 확인되었다. 고라니와 너구리의 경우 여러 차례 ASF 차단울타리를 따라 오가거나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다른 개체와 소통하는 듯한 모습도 촬영되었다. ASF차단울타리가 야생동물의 이동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멧돼지의 이동을 막기 위해 설치된 ASF 차단울타리는 본래의 역할을 다하고 있을까. 2024년 12월 경상북도 울진군 기존 36번 국도를 따라 놓인 25km가량의 ASF 차단울타리 조사를 통해 총 18곳에서 울타리가 끊기거나 훼손되고, 문이 열려있는 것을 확인했다. 울타리는 마을 입구와 기존 36번 국도가 만나는 지점, 하천이 위치한 곳에서 어김없이 모두 뚫려있었다. 울타리가 끊긴 지점 9곳, 훼손된 지점 6곳, 문이 열린 채 방치된 지점이 3곳에 달했다.
ASF 차단울타리가 멧돼지의 이동을 제대로 막고 있는지 실효성이 의심되는 가운데, 오히려 야생동물 서식지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단절하는 상황에 놓였다. 울타리 설치 당시 해당 지역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과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보호되는 지역이며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산양의 전 세계 최남단 집단 서식지인 것을 고려하여, 산양을 비롯한 멸종위기종과 야생동물이 받게 될 영향을 엄밀히 검토했어야 한다.


폭설에 취약한 산양
겨울철 폭설로 인해 산양의 이동에 제약이 생기고, 초봄까지 이어지는 먹이 부족으로 인하여 아사 및 탈진으로 폐사하는 산양이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특히나 2024년에는 기후위기로 인해 높아진 해수면 온도의 영향으로 11월부터 폭설이 내렸다. 울진 또한 많은 눈이 내려 금강소나무 수백 그루가 뿌리째 뽑히는 피해와 더불어, 2010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많은 산양이 폐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녹색연합이 3월 한 달간 울진·삼척에서 진행한 모니터링에서만 14개체의 폐사를 확인했으며, 2024년 울진·삼척에서 폐사한 산양은 총 74개체였다. 산양의 폐사율이 급증한 것에는 2024년의 폭설과 ASF 차단울타리라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후위기로 인해 해를 거듭할수록 폭설이 잦아지고 있어 앞으로의 겨울이 더욱 불안한 상황이다.


산양 서식지를 두 번 베어버린 36번 국도
2017년 울진읍과 봉화군 사이 36번 국도의 직선화 도로 추가 착공이 이루어져 2020년 완공·개통되었다. 이에 따라서 기존의 36번 국도(금강송면-근남면)를 전면 생태복원 할 것을 협의하였지만 실행되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울진·삼척의 산양은 미복원된 기존의 36번 국도와 직선으로 신규 설치된 36번 국도로 인하여 두 차례 서식지 단절을 겪고 있다. 이에 더해 ASF 차단울타리까지 설치되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과 생태경관보전지역 두 서식지 간의 이동에는 더욱 어려움이 생겼다.
기존 36번 국도는 북쪽으로는 37.05km²에 달하는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남쪽으로는 102.84km²에 달하는 왕피천 유역 생태경관보전지역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두 보호지역은 산양의 주요한 서식지이다. 과거 약속한 것과 같이 복원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야 했을 서식지가 기존 36번 국도와 신규 36번 국도, ASF 차단울타리로 인해 이어지기는커녕 더욱 극심한 서식지 파편화를 겪고 있다.

불타버린 서식지, 밀려나고 갇힌 산양
2022년 3월과 5월, 울진·삼척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대형 산불이 산림 약 16,280ha(산림청. ‘연간 산불통계’. 2022.)를 훼손했다. 이 중 4,353ha(축구장 6,200개 면적)(백두대간수목원. ‘울진 산불 피해지 복원 계획 수립 간담회’ 발표 자료. 2022.)는 산양 서식지이다. 산양에게는 3~4월이 보릿고개이다. 겨울 동안 부족해진 영양을 보충해야 하는 시기에 산불로 초목까지 불타면서 먹이를 찾기 더욱 어려워졌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이 많아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기존의 36번 국도와 신규 36번 국도, 그리고 21년도 말 설치된 5단계 광역울타리로 인해 울진·삼척 산양 서식지가 3중으로 가로막혔다. 이에 따라 산불 이후 산양의 서식 밀도는 높아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이미 차단울타리를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한 상태이다. 발생 초기 ASF 차단울타리가 야생멧돼지 이동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몰라도 바이러스가 울타리 너머까지 전국적으로 확산한 지금, 울타리는 더 이상 효과적인 방역 수단이 아니다. 국토를 가로지르는 방식의 차단울타리는 ASF의 완벽한 차단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설치된 울타리는 관리 또한 쉽지 않고 유지관리 예산만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실효성 없이 야생동물과 멸종위기종의 서식지를 훼손하고 단절시키는 방식을 재검토하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울타리에 과도하게 집중된 현재의 방역 방식을 철회해야 한다.

울진·삼척 산양 서식지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두 축이 되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과 생태경관보전지역은 탐방로를 통해 탐방객이 드나드는 국립공원과 달리, 허가를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하다. 탐방과 개발 제한의 측면에 있어 국립공원보다 더 엄격히 관리되어 온 두 보호구역은 야생동물이 서식하기에 충분한 자연생태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생태적 가치가 우수한 울진·삼척 산양 서식지를 훼손하여 야생동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개선하고, 긴꼬리 산양의 세계적 최남단 집단 서식지 울진·삼척 지역의 생물다양성 보전과 증진을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사진4.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감염 발생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