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탐사단 4기가 무사히 마무리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OT, 사전 교육, 그리고 9박 10일간 현장 일정까지…
엄청난 일정들을 소화했는데요,
산양 서식 흔적 조사, 금강소나무 조사 등 많은 활동들을 했답니다.
이번 야생동물 탐사단을 통해 참가자들은 도시에서 떠나나 자연으로 들어오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고 합니다. (고생도 엄청나게 했지요)
활동가인 제가 백날 얘기해봤자.. 어떤 상황, 느낌이었는지 감이 안오시겠죠?
마치 군대에 와있는 것 같았다던 권재민,
3기때는 참가자로, 4기때는 스탭으로 참가한 장준영,
공생과 진짜 현실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던 하바라,
예상했던 것 보다 고생하고, 기대했던 것 보다 많은 것을 얻었다는 이현주,
고3이지만 참가를 후회하지 않는다는 박지은,
참가자들의 후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글이 많지만.. 재밌게 읽어주세요! ㅎㅎㅎ
야생동물 탐사단 4기 후기
야생동물 탐사단 4기 : 권재민
야탐단 활동을 끝낸 지도 어느새 꽤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 아침에 눈을 뜨면 산을 올라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다른 야탐단 활동을 함께 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자기 전에 오늘 올랐던 산에 대해 알아보고 내일 올라야 할 산 경로를 체크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각자가 산을 오를 준비를 했던 모습들이 마치 군대 와있는 듯 하지만 너무 설레는 시간들 이었다. 이렇게 준비를 마치고 정말 너무너무 힘든 산을 오르기 시작할 때는 희한하게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힘든 시간 중에도 함께 오르던 사람들과 서로 파이팅을 외쳐주고 서로에 대해 이야기 하며 산을 올라 힘든 것보다 즐거운 점이 더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산을 올라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은 정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카메라를 꺼내 이 장면을 담고 싶은데 찍고 나서 보면 한없이 부족하고 말로 표현 하고 싶은데 한마디로 딱 설명이 되질 않는다. 산 정상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하늘을 나는 새가 정말 부럽게 느껴지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먹는 조촐한 행동식과 간단한 점심은 먹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맛이 끝내 준다. 하지만 여기서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이 우리는 야생동물 조사와 금강소나무 대경목 조사를 하러 산을 올랐다는 점이다. 야생동물에 배설물을 발견하고 무인 카메라에 찍힌 동물들에 모습을 보기도 하고 둘레가 2m 가 넘는 금강소나무 조사를 하며 야장을 작성하는 행위는 훗날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을 알고 하면 그리 뿌듯할 수가 없었다. 야탐단을 하며 했던 우리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어떤 평소에는 생각하기 힘들고 잘 알지 못했던 일들이 힘없는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야탐단 4기로 했던 9박 10일이 너무 행복하고 뿌듯하며 보람찬 기간 이었다. 야탐단 파이팅!
야생동물 탐사단 4기 : 장준영
야생동물 탐사단 4기에 자원봉사자로 지원하게 된 이유는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올해 겨울 9박10일 야생동물 모니터링단에 참가했던 저는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얻고 느꼈습니다. 깨달은 것, 결심한 것, 계획한 것들은 반년이 흐르자 온데 간데 사라져버렸고 저는 다시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반년동안 변한 것 하나 없는데도 불구하고 참가자였을 때와 자원봉사자로서 사전준비에 약간이나마 참여해본 이번 경우의 활동 마음가짐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저는 몇 가지 목표를 새웠습니다. 틈이 날 때마다 일지를 작성할 것. 독도법을 진지하게 배워볼 것. 산을 최대한 쉽고 편하게 타는 요령을 습득할 것. 산을 제대로 이해하고 느낄 것.
불편한 잠자리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설렘을 안고 누웠으나 다음날 새벽 5시에 눈을 뜨면서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왜 이 일을 다시 한다고 했을까…….” 겨울과 여름산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 느낀 건 아침 7시인데도 하늘이 밝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을 추스르고…….묵묵히 일정을 소화해나갔습니다. 한번 겪어봤다는 경험 덕분일까요? 분명 위험하고 힘든 산행이었지만 여유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틈나는 대로 일지를 작성하고 지도를 펴 내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미끄러지거나 휘청거릴 때면 나의 발걸음 중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 알아내려 애썼습니다. 산행 내내 주변 식물들을 관찰하며 특징들을 머릿속으로 외워보기도 하였고 땅을 살펴보며 어떤 생물들이 사는지 호기심 있게 관찰하려 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운 좋게 흙 사이에서 노루의 양쪽 뿔을 찾아내는 신기한 경험도 맛보았습니다.
여름산은 겨울산과 무척이나 달랐습니다. 겨울엔 특유의 고요함과 고독함이 산을 휘감고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눈 덮인 땅에 서게 되면 사람이 감상에 젖고 약간 뜬구름 잡는 듯 한 철학적인 생각에 빠집니다. 여름산은 말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수많은 나무, 꽃, 버섯, 각종 벌레, 흔적, 썩은 가지, 낙엽 때문에 고요함이 없습니다. 벌레와 새는 끊임없이 울고 무엇을 밟느냐에 따라 귀에 들리는 소리도 달라집니다. 가만히 앉아 땅을 바라보면 수십, 수백 마리의 개미와 파리, 벌레들이 움직이며 흡사 흙이 꿈틀거리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덕분에 여름산은 좀 더 생동감이 넘칩니다.
이번 9박10일을 지내며 야생동물에 대한 것 말고도 몇 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아침 점심 저녁 건강한 식단으로 꼬박꼬박 먹으며 군것질을 하지 않고 tv나 컴퓨터에 시간을 빼앗기지 말고 매일매일 운동을 한다면 육체뿐 아니라 정신과 마음마저 상당히 진정되고 건강해집니다.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실천하기 참 어려운 것.
만에 하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생활습관을 익힌다면 비단 멸종위기동물 뿐 아니라 전반적인 환경문제에 대해 이렇게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해봅니다.
야생동물 탐사단 4기 : 하바라
야생 동물 탐사단은 나에게 있어서 학문적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를 준 활동이었다. 10일동안 도시를 떠나 울진이라는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에어컨, 따뜻한 물, 스마트폰과 떨어져 지내면서 현실과 동떨어졌지만 또 다른 현실을 깨닫는 경험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간이외의 다른 생물들의 존재를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지만 막상 그들과의 거리를 실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심하게 산다. 조금더 편하게 살기위해 그들의 서식지를 빼앗고, 우리가 하는 행동에 대한 결과를 방관하면서 외면하려 한다. 화장실을 쓰면서 휴지를 마음껏 쓰고 그저 변기통에 흘려보내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조금 더우면 에어컨을 틀지만 에어컨을 돌리기 위한 전기가 어떤 희생을 감수하면서 제공되는 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번 야생동물 탐사를 하면서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고 사소한 행동에도 잠깐 멈춰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긴것 같아 기쁘다. 산에 올라가 다른 생물들이 남긴 흔적들을 보며 그 검소한 흔적에 조금은 겸손해질 수 있었고, 미안해 할 수 있었다. 산양의 서식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것은 그저 인간사회에서 아파트 몇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피폭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살아갈 곳이 점점 없어진다는것은 생각보다 너무 무서운 일이었고 슬픈 일이었다. 그렇게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산양의 서식지를 조사하면서 그들의 생존을 돕는다는 생각에 정말 힘든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보람찼던것 같다. 국가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데이타베이스 구축을 조금이나마 도와 앞으로 더 나은 환경과 자연을 위해 활동했던것은 정말 내게 있어서 큰 행운이었던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이 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대학교 들어오고 나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정을 나눌 수 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자아를 찾을 수 있었다. 십일동안 몸은 좀 힘들었어도 마음만은 그 어느때보다 편안했다. 야생동물 탐사단은 지루하고 똑같은 경쟁사회에 지친 우리에게 공생이 무엇인지, 진짜 현실은 무엇인지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는 것만이 우리에게도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해준다는 것을 야생동물 탐사단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야생동물 탐사단 4기 : 이현주
벌써 야탐단에서 돌아 온지 한 주가 지났습니다. 7월 어느 새벽 감성과 의지가 충만 할 때, 우연히 야생동물 모니터링 탐사단 모집 공고를 보고 얼마나 설렜는지 모릅니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자기소개서를 처음 써봐 반 나절 동안 어색한 타이핑을 하고 또 선발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들떠 자랑하느라 바빴었지요. 내게 생각만이 아닌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 감사 했고, 우리가 조사 할 모습을 상상하면 모험과 로망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 OT와 세 번의 교육을 받고 울진으로 떠났습니다.
울진에서 첫 번째 조사를 하던 날, 제가 어디에 온 것인지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차를 타고 잘 포장되어 있지 않은 임도를 가다가 내려서는, 도저히 길 같지 않은 곳을 가리키시며 한만형 선생님은 “자~ 이 쪽 이예요~”. 풀과 관목들을 헤치며 처음엔 속으로 ‘와! 진짜 모험이야! 산에서 길이 아닌 곳으로 가고 있어! 로망이다!’했었습니다. 조금씩 사면을 두 발이 아닌 네 발로 오르기 시작하면서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
그렇게 저는 소울리스(soulless: 야탐단원들이 영혼이 없어져감을 표현하기 위해 9박 10일 동안 자주 사용한 말)가 되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산에서 내 몸을 건사하는 것도 힘이 들어 야생동물의 흔적이나 금강소나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자 산에서 조금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산양의 흔적을 발견 할 때는 정말 뿌듯했습니다. 특히 무인카메라의 SD카드를 수거 할 때, 생생하게 담겨 있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의미 있는 고생을 하고 있구나’해 힘도 났습니다. 우리의 작은 땀방울이 모이고 모여서 산양을 보호 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될 테니까요.
같이 고생하는 야탐단원들은 저의 에너지가 되어줬습니다. 태권도 4단답게 산에서 여유가 있고 I got a boy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던, 우리들의 부엌 리더 하바라! 쿨해도 너무 쿨한 바라야 난 너의 등산패션을 잊지 못할 거야. 남녀노소 다 좋아 할 수 밖에 없는 쾌남 재민이 오빠! 내가 오빠가 빌린 침낭 커버를 잃어버렸는데, 오빠가 집에서 손수 바느질로 커버를 만들었지(미안해). 이제 저랑 이불 같이 안털었던거 용서할게요. 고3 같지 않은 고3, 막내 지은이! 산에서 힘들다면서도 결국 다 따라오고 10일 동안 3년치 설거지를 다 한 타칭 나의 소울메이트! 산에서 항상 묵묵히 우리의 뒤를 지켜주고, 벌이 좋아하는 남자 준영씨! 솔선수범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열정적인 서재철 국장님! 말 수는 없는데 할 말 다하시고 축구 할 때 제일 열정적인 아름이 언니! 매일 우리보다 일찍 일어나 밥해주시고 편안하게 해주시지만 포스있는 멋진 수지언니! 24시간 발랄한 매의 눈 나리언니! 준영씨랑은 다른 의미로 우리들의 뒤를 지켜 주셨던, 사기 동안 전택씨! 금강소나무 조사하느라 2주 넘게 산 오르시고 또 고생한 소두 성현이 언니! 마지막으로 우리가 잘 때도 내일 일정으로 못 주무시고, 산 갈 때 올 때 우리가 잘 때 운전하느라 못 주무시고 제일 고생하시고 제일 감사한 한만형 선생님! 제가 폐 끼쳐도 따듯하게 웃어주시던 여러분 잊지 못 할 거예요.
예상했던 것 보다 고생 하고, 기대했던 것 보다 많은 것을 얻은 야탐단!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모두 해피해피초해피 하세요!
야생동물 탐사단 4기 : 박지은
처음에는 그저 산양이라는 단어에 끌려서 지원을 했다. 그냥 힘든 것 등산할 것 하나도 생각 안하고, 포스터에 대문짝만하게 있던 산양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 지원 한 것 같다. 지금까지 본 야생동물과는 크기부터가 다를 산양을 생각하니 그저 두근거렸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생각도 없고, 준비도 없고, 무모했다. 솔직히 만약 그때 모든걸 다 알았더라면 지원 안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몰랐던 게 참 다행이다. 야탐단을 하면서 자연의 위대함도 느꼈고, 멋있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 서 정말 후회는 전혀 없다.
처음에 북한산으로 예비 비박 체험을 갔다. 준비를 하면서 생각보다 등산은 위험한 것이고, 준비 수칙도 많다는 것을 느꼈다. 가벼운 것을 밑에 그리고 무거운 것을 위에, 랜턴 챙기기, 예비 옷 챙기기 등 지금까지 내가 생각도 못했던 준비물도 많았고 지켜야 할 안전 사항도 많았다. 올라갈 때 솔직히 죽는 줄 알았다. 내 몸만 올라가도 힘들 텐데 그런 곳을 가방을 메고 올라가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울진에 가서는 더 힘들 것이라는 얘기가 그렇게 소름 돋을 수가 없었다. 가방이 가슴을 내리 누르는 것 같았고, 어깨가 아파왔다. 가방이 가슴을 누르니까 숨도 더 빨리 가빠오고 더 빨리 지쳤다. 진짜 저기까지만 가면 끝일 것 같았는데 가보면 끝이 아니고 더 가야 되고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도착하고나니 그곳에서 해 먹는 밥은 정말 맛있었다. 약수터에서 물을 떠다가 쌀을 씻고, 그렇게 물을 떠서 해 먹는 김치찌개는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잘 때가 돼서, 비 때문에 쳐 놓은 비닐 밑에 누웠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왼쪽으로 돌아 누우니 바로 옆은 땅이었다. 정말 어떤 벌레든지 마음만 먹으면 바로 내 얼굴 위로 뛰어 들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리고 간간히 빗물이 얼굴에 튀어 들어왔다. 조금 소름 돋기도 했지만, 정말 비가 비닐에 떨어지는 소리는 듣기 좋았고, 비닐에 비치는 빗물도 참 예뻤다. 옆 사람들이 코 고는 소리도 화음을 이루었다. 늦게까지 잠은 못 들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경험이었다.
신기하게도 다음날 아침 5시 반쯤에 눈이 떠졌다. 더 신기한 건 근육통이 딱히 없었다. 그렇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또 등산을 시작했다. 사실 밖에서 자서 그런지 몸이 가볍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날보다 뭔가 산을 타기는 더 수월했던 것 같다.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데 안개가 낀 산도 너무 멋있었고, 그렇게 높은 곳에 그렇게 오래 머물렀다는 것도 신기했다. 산을 다 내려오고 나니 다들 기진맥진 해 있었고, 그렇게 해산했다.
드디어 울진으로 가는 날이 되었고, 가는 데만 5시간이 걸렸다. 도착한 다음 날 5시 기상, 준비를 하고, 처음으로 등산을 가는데,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는데 기분이 묘했다. 정말 이번 체험이 끝나면 이 구역에 다시는 못 들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깐 마구 두근거렸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고 잠깐 걸어가니, 선생님께서 계곡 옆, 길이 아닌 곳에 서시더니, 올라가자고 하셨다. 그때 충격은 아마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정말 처음에 농담인줄 알았고, 농담 이길 바랬다. 체감 경사 70도였다. 근데 진짜 네발로 기어 올라갔다. 정말 길이란 건 눈 씻고 찾아봐도 안보였고, 내가 매일 차 타고 지나갈 때 보던 산 부분이 이렇게 가파르고 미끄러운지 처음 알았다. 정말 등산로가 얼마나 사람을 배려한 길인지 느꼈다. 진짜 계속 미끄러지고 숨이 차 죽을 것 같았다.
그래도 끌려 올라가서 결국 무인카메라가 있는 곳까지 갔다. 절벽 같았는데, 정말 경치가 좋았다. 등산로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광경이었다. 앞은 탁 트여있고, 날씨는 좋고, 앉아있는 바위는 멋있고 정말 못 잊을 꺼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무인카메라에 찍힌 산양을 보았는데, 내가 앉아있는 자리에 산양도 앉아서 경치를 구경하고, 똥을 쌌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정말 새로웠다. 처음으로 산양의 존재가 뭔가 실감이 갔다. 그 전에는 그냥 이론만으로 산양을 알고 있었다면, 이제 뭔가 산양이 진짜 내 주변에서도 살고 있다는 걸 느꼈다. 평소에는 우리나라 산에는 사는 동물도 없고 죽은 산 같다고만 생각했는데, 산양이 있던 자리에서 산양이 찍힌 동영상을 보니, 우리나라 산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그 좋은 경치를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부터가 하루의 시작이었다. 또 그 절벽 같은 곳을 계속 기어 올라갔다. 정말 저기까지만 가면 평지겠거니 하고 도착하면 조금 앞에 또 오르막이 있고 오르막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능선에 도착 했고 산양 똥 자리도 많이 보았다. 아직까지는 내가 지나가는 길을 산양이나 다른 동물들도 많이 돌아다닌다는 사실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신나게 싸온 도시락도 먹고 무인카메라도 설치하고 돌아다니니 다리에 힘이 남질 않았다.
내려갈 때 그 절벽 같은 곳을 내려오는데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선생님들은 두발로 잘만 가시는데 나는 후들후들 떨리는 네 다리로 기어서 내려갔다. 정말 산에서 굴렀던 첫날이었다. 야생동물들은 이런 곳에서 하루 종일 생활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이렇게 힘들었지만, 끝은 정말 좋았다. 물이 완전 깨끗해서 내려와서 마주친 계곡 물을 그냥 마시고, 세수도 하고, 정말 도시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경험을 했다. 계곡물은 뭔가 맛도 더 좋고 달랐다.
첫날은 다 같이 산에 갔지만, 그 다음날은 두 조로 나뉘어서 산에 갔다. 전날 밤 준영 쌤이 어제 간 곳은 그냥 서울 동네 산 정도고 오늘 가는 데가 진짜 울진 산이라 그래서 밤새 절망했었다. 평소 장난도 안치시고 표정변화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씀하셔서 정말 믿음이 갔다.
일단 계곡 길을 산책하듯 즐겁게 걸어갔다. 남자들하고만 제일 험한 곳으로 떠난 바라언니 걱정도 막 하고, 8kg이라는 노트북 들고 그 험한 산을 간 재민이 오빠 걱정을 할 정도로 여유를 즐겼다. 그런데 갑자기 또 왼쪽에 길 같은 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어제보다 더 가파른 경사가 나왔다. 정말 속으론 이미 울고 있었다. 남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마치 짐승이 된 기분으로 나무를 부여 잡고 기어 올라갔다. 올라가다 맞은 편을 보니 내가 있는 산과 똑 같은 나무가 무성한, 차 타고 가다 주로 보던 산이 있었다. 내가 저 한 가운데 있다 생각하니 정말 웃음밖에 안 나왔다. 이런 경험을 해 보는 게 좋기도 했지만, 나는 눈물 나게 힘들었다. 그래도 현주 언니가 진짜 옆에서 계속 힘내라고 해줘서 힘이 났다!!
그렇게 산 위로 올라가 능선을 타니 태어나서 한번도 못 본 경치를 봤다. 북한산은 정말 비교도 안됐다. 누가 산 정상이 진짜로 뾰족한걸 보겠는가? 내 좌 우로 정말 경사지게 내리막이고 내가 서있는 아주 작은 면적만 돌로 되어 있고, 서 있을 수 있었다. 구름도 멋지게 있었고, 정말 주변은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그런 경치였다. 어릴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산은 뾰족한 삼각형으로 그렸지만, 진짜 내가 갔던 산은 삼각형이었다. 관악산, 청계산 등 사람을 위해 등산로가 만들어진 산은 자주 가봤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 받아봤다. 특히 서 있는 곳이 바위로 되어 있고, 간간히 멋진 소나무도 자라 있어서 그런지 신선들의 세계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 멋있었다!!!
그렇게 또 룰루랄라 능선을 타다 보니 절망적인 오르막이 나왔다. 또 그렇게 오르고 내리다가 막 낙엽 때문에 미끄러지는 절벽 같은 곳도 지나갔다. 남들은 다 잘 지나가는데 또 이상하게 나만 계속 몸이 내려갔다. 내가 막 절망 하고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고 있으니까 준영 쌤이 힘내라는 듯이 앞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앞에 길 보이죠? 저게 동물들이 다니는 길이에요.” 인정하기 싫었다. 이런데 길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뭔가 저걸 길로 인정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인정하면 문명의 세계에 영영 못 돌아갈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정말 길이 있었다. 잘 다듬어진 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작고 소박하면서 예쁜 길이었다. 동물들이 이 길로 왔다 갔다 한다니 정말 신기했다. 첫날은 대체 선생님이 날 어디로 데려 가는 건지, 어떻게 길을 찾아 가는 건지 전혀 모르고 정신 나간 상태로 따라가기만 했는데 이젠 정말 길이 보였다! 나름 엄청난 발전이라고 혼자 뿌듯했다.
이틀밖에 안되었지만, 문득 점심 먹으며 느낀 게, 자연과 하나가 되어간다는 느낌이었다. 이제 벌레가 몸을 타고 올라오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았고,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쳐냈다. 바닥에 뭐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냥 앉았다. 밥에 벌레가 들어가려 하면 그냥 쳐내면 그만인 것이었다.
시간 문제상 나랑 현주 언니는 점심 먹은 장소에서 대기하고 선생님 두 분 이서 남은 무인카메라를 확인하러 가셨다. 이때 우리가 갖고 있던 GPS도 배터리가 다 돼서 꺼지고, 내 핸드폰도 배터리가 한 칸 밖에 없고, 언니는 핸드폰이 고장 나고, 선생님들은 안 오시고 정말 언니랑 둘이서 조난당하면 어떻게 할 지 진심으로 고민했었다. 당연히 선생님들은 오셨고, 내려오다 생각하니 조난 고민도 해 보았다는 게 신기했다. 또 나만 굴러 내려갔다. 이젠 굴러도 안 다칠 것 같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는 것을 많이 잡고 올라간다. 사실 힘들어서 그렇다. 아무튼 그렇게 자꾸 나뭇가지나 꼬리진달래를 잡다 보니 줄기가 튕겨서 내 뒤에 오던 언니랑 준영쌤께서 참 많이 얼굴에 맞으신 날이었다. 그래도 언니는 얼굴이 탱탱해져서 좋다며 웃었고, 준영쌤은 괜찮으니까 편하게 가라고 하셨다. 정말 두 분께 너무 죄송했다.
나중에 확인하니, 선생님들께선 우리가 하루 종일 갔던 거리보다 더 긴 거리를 우리가 들인 시간의 반 동안 왕복하셨었다. 진짜 대단했다. 하루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 혼자 갔던 바라 언니랑도 그냥 이야기를 했지만, 역시 바라언니는 걱정이 필요 없는 멋진 여자였다.
다음에 산에 갈 때 우리는 국장님과 인턴 언니들의 합류로 인해 거대무리가 되어 있었다. 산을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입구가 진짜 풀숲이 우거져 있었다. 솔직히 첫날이면 기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냥 풀이 있으면 뚫으면 되고 나무가 있으면 치우면 되고, 그러다 보면 길이 나온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참 큰 변화다. 진짜 어린 소나무 숲을 온 몸으로 뚫고 올라가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참 특이한 일이었다. 원래는 말수 좀 줄여보려고 말을 안 했는데 진짜 힘들어서 말이 안 나왔다. 이번 조사는 금강 소나무 조사였는데, 정말 금강 소나무들을 보니 멋있었다. 붉은 소나무가 가지도 없이 쭉쭉 뻗어있는 모습이 진짜 위풍당당 그 자체였다. 그런 소나무들을 조사하면서, 그래도 굵고 멋진 소나무가 우리 나라에 많다는 것이 다행이고 기뻤다.
산에 가서 느낀 건데 정말 매일 1리터씩 물을 떠가도 항상 물이 부족했다. 정말 물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집에서는 하루에 물 1리터를 마시는 일도 없고, 나는 물은 별로 맛이 없다고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는 체질이다. 그런데 정말 산에만 가면 물이 꿀맛이고, 그렇게 아껴 마실 수가 없다. 물의 감사함을 새삼 매번 느꼈다. 정말 소중한 건 옆에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비박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가방이 평소보다 배로 무거웠다. 진짜 폐가 눌려서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가벼웠지 현주언니는 들어가는 모든 것 그냥 가방에 꾸역꾸역 쑤셔 넣었고, 바라언니는 2리터짜리 물을 넣고 남자들만큼 무거운 가방 들고 갔고, 재민이 오빠는 2리터짜리 페트병이 몇 개씩 있었고, 준영쌤은 8리터짜리 수낭을 들었고, 만형쌤하고 국장님은 냄비, 요리 재료 등등 제일 큰 가방 안에 엄청난 양의 짐을 들고 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무슨 이사하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금강 소나무 조사를 하고, 비박 할 장소에 도착을 하니 옆에 계곡이 있었다. 바로 바라언니 가방에서 2리터짜리 물을 꺼내서 다 나눠 마셨다. 물은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거다. 그런데 문득 바라 언니랑 준영 쌤이랑 재민이 오빠가 안쓰러웠다. 물론 돌발 상황에 대비해 물은 중요한 것이고, 그 물들 결국 다 사용 했지만, 힘겹게 페트병을 꺼내는 바라 언니랑, 수낭을 꺼내 놓고 기절한 준영 쌤을 보고 있자니 참 슬펐다. 바로 옆에 계곡 이 있으니까 그 물들이 뭔가 고생한 만큼 귀하게 쓰이지 못한 것이 가슴 아팠다. 솔직히 나보다는 본인들이 더 슬펐을 것이다.
그렇게 저녁을 준비하는데 또 정말 새로웠다. 계곡물에 쌀 씻고, 감자 씻고, 양파 씻고, 손도 씻고 세수도 하고… 또 신기한 게 국장님 가방 속에는 온갖 주방용품이 정말 다 있었다. 저 무거운걸 어떻게 메고 오셨나 참 신기했다. 그렇게 바닥에서 밥 하고, 계곡물 떠오고 하다 보니 진짜 자연인이 된 기분이었다. 설거지도 먼저 썩은 낙엽으로 닦은 다음에 물에 헹구고, 정말 자연을 생각하면서 했다. 진짜 즐거웠다!!
먹고 밤에 누웠는데, 정말 기분이 또 색달랐다. 매트 깔고 그냥 침낭에 들어가서 하늘을 보고 누웠는데, 이번엔 날씨도 좋아서 비닐도 안쳤다. 누우니 바로 하늘이 보였는데 정말 별이 많았다. 하늘에 빽빽하게 별이 있는데 정말 그렇게 신기하고 예쁠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산중이다 보니 우리가 불을 끄면 주변에 정말 빛 한 점 없이 깜깜했다. 서울에서는 절대 못 볼 하늘이었고, 못해볼 경험이었다. 세상 어떤 곳에서 여자가 길바닥에서 침낭 안에 들어가서 거칠게 말하면 ‘노숙’을 할 수 있겠는가? 정말 울진이니까 안전하고 편하고 걱정 없이 길바닥에 누워서 잘 수 있었다. 남들은 돈 주고도 못해볼 경험을 나는 해봐서 뿌듯했다. 솔직히 바닥에서 자면 피로가 다 풀리지는 않지만, 그 나름대로 침낭 속에서 푸근함이 있고, 좋은 공기 마시면서 자는 즐거움이 있다. 정말 이날은 나 나름 너무 힘들어서 거의 눕자마자 잠든 것 같다. 비박을 한 것은 정말 멋지고, 평생 못 잊을 것이다.
하루는 오전에 비가 와서 처음으로 인간들이 다니는 길로 산에 갔다. 일종의 문화 탐방이었는데, 국장님께서 화전민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나는 동물과 자연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역사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가장 신기했던 건 GPS였다. 정말 그 동안은 잘 다룰 줄 몰라서 그냥 무거운 귀찮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까 신기하기도 엄청 신기하고, 이것만 있으면 세상 어디를 가도 살아남을 자신이 생겼다. 생각보다 똑똑하고 정말 정확했다. GPS랑 지도랑 맞춰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지도만 보면 정말 주변을 보면서 가기 힘들지만, GPS가 있으면 지도를 계속 확인 안 해도 되어서 주변 자연을 보면서 걸을 수 있었다. 정말 세상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많이 발전했다.
마지막 산행을 가는 날에는 수지언니랑 재민이 오빠랑 함께 갔다. 이제 뭐 그냥 아무리 거칠어도 내가 가는 길이 길이다 란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즐겁게 임도를 걸어가니 GPS가 내가 가야 할 길이 절벽이라 그랬다. 아무리 적응 했다지만, 그리고 사실 절벽이 진짜 절벽도 아니지만, 초보인 나는 속으론 또 울었다. 그래도 뭐 그냥 이제 담담하게 올라가는데 정말 지금까지 간 곳 중에 가장 올라가기 힘든 것도 아니고 그냥 못 올라갔다. 다리가 너무 짧아서 힘들었다. 정말 옴짝달싹 못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했다. 올라갔는데, 중간에 움직이면 진짜 바로 떨어질 것 같았던 상황이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렇게 짧은 절벽(?)아닌 절벽을 기어 올라가니, 정말 좋은 금강 소나무가 많았다!! 우리나라 숲이 건강한 사실도 좋았지만, 그만큼 많이 쉬어 갈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정말 처음으로 경치도 많이 즐기고 행복한 등산이었다!! 좋은 금강 소나무도 많았고, 배우기도 정말 많이 배운 하루였다. 수지 언니가 나무 주변에 있는 식물들 이름도 많이 알려주셨는데, 주로 교목은 신갈나무 밖에 없고, 그 외에는 진달래, 꼬리진달래, 철쭉, 참싸리, 쇠물푸레, 생강 정도가 전부였다. 생각보다 우리나라 산 식생이 단조롭다는 느낌을 받았고, 내가 나무 주변에 있는 웬만한 식물들 이름은 다 알게 된다는 게 뿌듯했다!! 처음으로 진달래와 철쭉을 구분하는 법을 깨달은 것도 기뻤다.
이제 슬슬 산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었다. 정말 산이 한쪽은 소나무밖에 없는데 다른 반대편은 신갈나무 밖에 없고 신기한 구조를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런 경쟁구도를 깨달으니 산이 많이 잔인해 보이기도 하고, 결구 이 숲이 어떻게 될 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산에 대해 배우고 식물에 대해 배우면서 그날 마지막 등산을 마쳤다. 마지막 등산이라 생각하니 많이 아쉽고 또 서운했다.
이제야 길이 잘 보이고 GPS도 볼 줄 알게 됐는데 끝나버렸다. 이런 경험을 다시는 못할 것이라 생각하니까 진짜 서운했고 다시 고3 인생을 살아야 한다 생각하니까 눈물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앞으로 힘들 때 마다 이번에 본 자연, 그리고 산양 흔적들을 마음에 담아뒀다 꺼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래도 위안이 됐다.
야탐단을 하면서 자연을 보고 느낀 것 외에 또 좋았던 점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인간적으로 야탐단은 정말 사서 고생하는 짓이다. 고생도 그냥 고생이 아니고 어마어마한 고생길이다. 진짜 말로 표현이 안될 정도로 힘들고 산에만 올라가면 후회된다!! 그런데 이런 일을 자원해서 오는 분들이 나쁜 분들 일 리 없다. 정말 사람들이 다 너무 착하고 좋아서 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안전하게 인솔해주신 만형쌤, 정말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고 많이많이 알려주신 국장님, 진짜 혼자서 가면 엄청 잘 갈 수 있으면서 맨날 나 기다리고 힘내라고 같이 가 주시고, 평소에는 내 수준에 맞춰 주면서 놀면서 또 엄청 챙겨주시고 어른 같은 현주 언니, 진짜 안 힘들고 빨리 갈 수 있는데 기다려주고 죄송하다 하면 오히려 뭐가 죄송하냐고 해주시는 재민 오빠, 앞에서 길 뚫어주고, 챙겨주고, 달래주고, 무거운 짐 들어주시던 바라 언니, 매일 뒤에서 보조해주시고 오히려 다친 사람 없어서 다행이라 하시던 준영쌤, 궁금한 거 계속 물어봐도 귀찮은 기색 없이 다 대답해주시고 정말 여러 가지로 많이 가르쳐주신 수지 언니, 막내라고 아껴주고 정말 도움되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많이 챙겨주시고, 공짜 과외도 해주겠다 하시던 성현언니, 쿨하게 항상 챙겨주고 많이 얘기하고, 사진도 찍어주고, 비싼 숟가락 부러 트려도 용서해주신 나리언니, 항상 웃는 얼굴에 장난쳐도 다 받아주시던 아름 언니, 마지막으로 정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운전해주시고, 뒷바라지를 힘든 기색 없이 해주시던 전택쌤까지 다들 항상 너무 착하시고 좋은 분들이었다.
체력이 부족해서 뒤쳐져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들도 힘들었는데 좋았다고 해 주는 사람들이었고, 나만 미성년자인데도 본인들 술 드실 땐 항상 주스를 많이 준비해주시고, 모두들 항상 밝게 대해주시던 분들이다. 나이차이가 많이 안 나는 분들도 있었지만, 정말 때로는 존경스러웠고 굉장히 차이가 많이 나는 어른 같았다. 배울 점도 많았고, 많이 배우고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야탐단에 와서 멋있는 어른들을 많이 만난건 정말 행운이다.
사람들이 다 착하고 좋기도 하지만, 일단 모인 사람들이 원래 공통점이 별로 없다 보니 정말 다이나믹 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도 장점이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정말 즐거운 일이고, 갖기 힘든 기회라 생각한다. 또 생각이 정말 깊은 분들도 많다. 내가 봐도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선택의 기로에서 현명한 선택을 한 사람들도 많다. 꿈을 정말 현실적으로 멋지게 쫓는 사람도 있고, 정말 효녀인 사람도 있다. 사회가 어떤 건지도 이야기 들었고, 나는 아직 경험해보지도 못한 인생 이야기도 들었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 사람도 있었고, 나는 해보지 못한 고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 내가 얼마나 어린지 느끼고 모르는 게 많은지도 알았다. 개인적인 것들이라 다 적지는 못하지만 정말 여러 가지 인생 이야기도 많이 듣고, 많이 배웠다. 내 인생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내가 결정한 진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 좋은 경험이 되었다. 또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인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많이 배울 수 있던 좋은 기회였다.
정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돌아와서 쓰려 하니 힘들었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오히려 힘들었던 것도 좋게 기억나고 즐거웠던 기억이 더 많이 나는 것 같다. 이래서 엄마들이 첫째를 낳고 아팠던 것을 잊어버리고 또 애를 낳는 것이라고 하나보다. 내가 딱 19라는 나이에 이런 체험을 해서 이런 것들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나이가 더 들어서 갔다면 지금 느낀 것을 똑같이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멸종위기인 동물을 보호하는데 한 부분을 차지 했다는 것도 너무 좋고, 남들이 할 수 없는걸 난 해봤다는 것도 좋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도 정말 좋은 일이었다. 정말 너무너무 좋기만 한 추억이다.
입시가 두 달 정도 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 고3이 뭐 하냐고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만, 야탐단 10일을 갔다 오고 나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10일밖에 투자하지 않은 것 치곤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지원했지만, 이번에 배우고 느낀 것은 코앞의 입시보다도 내 인생에 있어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일생에 있어 한번 밖에 못해볼 체험이었고, 너무 특별한 경험이었다. 만약 흥미가 가고 관심이 있어서 이 글을 읽는 분이 있다면, 고 3도 다녀와서 후회하지 않으니 날 믿고 꼭 한번 지원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