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속의 생태읽기 세 번째 시간 주제는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와 TV 문명’이었습니다. 한국인 평균 하루에 3시간, 1년에 1달 반, 평생 10년 정도의 시간을 TV 시청에 쏟는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TV와 애증의 관계인 것 같아요. ‘바보상자’라고 알고 있고 비판하면서도, TV를 보면서 멍 때리고 아무생각 없이 깔깔 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니까요.
선생님은 ‘공동체’ 내에서는 사랑과 욕망이 유동적으로 흘러간다고, 즉 나일 수도 있고 너일 수도 있고 내 것일 수도 있고 네 것일 수도 있는 이런 흐름이 존재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건 내 거야!”라는 고정관념을 통해서 유지됩니다. 물건과 사랑을 분리시켜서 물건만 오가고, 이 물건을 사면 사랑이 전달되는 것 같은 환상을 주입합니다. TV는 이러한 관념을 강화시킵니다.
TV를 보면 노인, 아이, 장애인, 소수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구경꾼일 뿐이죠. 가정주부는 자신이 희생해야 할 이유를 TV의 가족드라마에서 배웁니다. TV는 끊임없이 소비를 자극하면서 ‘노동에서는 천대받지만 소비에서는 환대받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늘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마약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죠. 중학생이 ‘사랑과 전쟁’이라는 프로를 많이 보는 이유가 흥미로웠습니다. TV는 질투, 경쟁, 증오와 같은 동적인 정서만 표현하고 영적인 것, 사랑, 존경 같은 정서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기 드보르는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이라는 그룹에 속해있던 사상가로서 68혁명을 적극 주도한 사람입니다.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은 구경거리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미디어에 의해 조작되고 전도된 가짜 이미지들과 이데올로기 등’을 뜻합니다. 자본주의는 ‘행복을 담배 한 개비로 간주하거나 여가를 맥도날드 햄버거로 동일시하면서, 일상의 변화 없이 소비가 대리 만족시켜 줄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집에 TV가 없는 저는 핸드폰으로 맛집을 검색하면서 카페의 고급스러운 브런치 사진을 볼 때마다 맘이 흔들립니다. 그 브런치가 저에게 의미하는 것은 ‘여유로운 사색’이라는 걸 이제 알겠습니다.
예전에 혼자 살면서 자동차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의식적으로 TV를 켜고 씻고 밥을 먹고 출근을 했지요. 퇴근해서 8시쯤 집에 오면 다른 여가생활을 할 심신의 여유 없이 또 바로 TV를 켜서 멍하니 보다가, 켜 놓은 채로 잠든 적도 많았는데요. 생각해보면 혼자 있다는 외로움, 공허함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는 인터넷 쇼핑도 많이 했었어요. 노동이 너무 고단해서 친구들과 놀거나 문화생활을 할 여력도 없다보니 오로지 물건 사들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지요. 그 때 저는 그저 돈만 생산할 뿐 다른 어떤 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소비자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TV와 같은 미디어는 누가 어떻게 장악하느냐에 따라 대안적인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공동체에서 미디어를 활용한 사례를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대구 성서공동체FM을 소개한 ‘만만한 방송국’이라는 영상이었는데요. 주부, 아이들이 직접 진행하는 것도 신나보였고요, 지역 공단의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고국 노래를 틀고 부르는 것을 볼 때는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선생님은 TV가 주는 ‘부드러운 예속’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배계급은 TV를 통해 우리에게 마치 달콤한 낮잠을 자는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고,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들을 대사회적인 투쟁이나 문제제기가 아닌 ‘힐링’으로, 심리치료로 풀어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체제 밖을 넘어서려고 하는 사람, 체제를 뒤흔들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즉시 ‘강경한 탄압’이 가해집니다. 이렇게 분리해서 통치하면서 이 사회를 유지해가고 있는 것이지요.
선생님은 사랑과 환상이 같을 수 있을까? TV의 수다스러움이 공동체의 수다스러움을 대체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남기셨고, 질문과 토론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 날은 짧은 뒤풀이도 있었답니다. 거의 클럽 같은 분위기의 왁자지껄한 술집에서 서로 고함을 쳐가며 얘기를 나눴어요.
벌써 3번의 강좌가 끝났네요. 앞으로 남은 강좌도 기대할게요!
글 : 장학생 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