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생태철학 5강 – 맑스의 생산력주의와 성장주의, 토건주의, 성공주의

2013.12.18 | 행사/교육/공지

12월 5일 목요일. ‘벌써’라는 추임새가 적절한 철학 속의 생태 읽기 마지막, 다섯번째 강의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마지막 강의는 그간 근대사회의 경제를 지탱해온 ‘성장주의’의 결과와 한계를 되짚어보고, 진정한 의미에서 서로를 살리는 경제적 구조와 그 철학적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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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 경제 위기, 자원의 고갈,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격차, 노동의 착취와 자원의 착취. 가파른 상승세를 타던, 무한할 줄 알았던 양적 성장은 어느새 한계를 맞이하였습니다. 급격한 근대화와 경제 성장을 이룩한 우리 나라에서는 여전히 ‘성장’을 통해 파이를 키워야만 더 많은 파이를 분배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로 성장을 정당화할 때가 많지만 성장은 곧 승자독식으로 이어지며 대다수에게 분배되는 파이는 성장률에 훨씬 못미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도한 현실은 이제 ‘저성장’, ‘제로성장’, ‘역성장’을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먼저 여기서 얼핏 비슷한 것 같은 ‘성장(growth)’이라는 개념과 ‘발전(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장이란 외연적이며 실물적, 하드웨어적, 양적 규모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발전이란 내포적, 관계적, 소프트웨어적 성숙, 다시 말해 꽃이 발아하듯, 번데기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듯 질적인 성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발전 개념에서 주목해야 하는 속성은 바로 ‘관계적’이라는 것입니다. 거대한 성장주의의 광풍 아래 그 의미와 힘이 축소, 무시되었던 ‘관계’. 이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볼까요?
따로따로 떨어져 각각 차단된 100그루의 나무, 생명선이 모두 연결되어 하나의 연결망을 구축하고 있는 50그루의 나무. 위의 두 경우 중 어느 쪽이 더 튼튼할까요? 강의 중 선생님께서 던지셨던 질문입니다. 생명의 원리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있다면 당연히 우리는 후자를 고를 것입니다. 연결망의 시너지효과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대형마트에서 필요한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는 소비자로서 고정된 의미를 행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재래시장에서 밀당의 경험은 ‘선물’의 주고받음과 유사한 의미를 포함합니다. 즉, 단순히 물건이 오고가는 사건이 아니라 관계의 형성을 통하여 내포된 인격도 함께 전달되는 것이지요. 이는 서비스업에서의 기계적, 소모적 친절과는 아주 다른 이야기입니다. 사랑할수록 사랑은 증폭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협동조합’은 ‘선물’의 거래가 가능한 구조를 창출하기에 적합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자금의 규모와 관계없이 조합원이라면 누구나 1인 1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돈’보다는 ‘사람’에게 좀 더 가치를 부여합니다. 더불어 유한한 자원에 대한 대안점과 부족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실제로 영상을 통해 접하였던 이탈리아의 볼로냐라는 도시는 이탈리아 평균 소득의 2배가 넘는 높은 소득과 3% 정도의 낮은 실업률을 자랑하는데요. 그 중심에는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도시의 핵심기업 50개 중 15개가 협동조합이며, 시민의 3분의 2가 한 곳 이상의 협동조합에 가입되어 있는 조합원인 이 곳은 ‘협동조합의 도시’입니다. 또한 한살림 생협은 단순히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차원이 아니라 농민과 도시 소비자를 잇는 관계망 형성을 통해 농민을 살리고 땅을 살리는 운동체로서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협동조합으로 대표될 수 있는 대안섹터운동이 진정한 의미에서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입니다. 조합의 규모가 불어남에 따라 운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처음 설립의 취지나 가치가 흐릿해지고, 점점 효율성과 성장, 경쟁을 추구하는 경영방식을 취하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조합원들 사이의 참여 열정의 편차가 크며, 저는 사실 비효율적인 의견 조율 방식 자체가 소모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강의 중 한 수강생 분이 말씀해주신 예화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되는 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의 먹거리 문제에 대한 어찌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슈에 의견의 불일치한 지점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고, 공동체적 합의를 도출하는데 장장 6개월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공동체 내부적으로는 관계망을 더욱 튼튼히 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지만, 외부인의 입장에서, 자본주의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비합리적인 운영방식이라 보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비효율적이며, 비경제적이며, 공동체의 관계의 성숙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구조는 그만큼 서로서로를 돌보는 시간과 정서적 에너지, 충분한 소통이 필요합니다. 이미 광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이 견고하게 우리의 삶 곳곳을 지배하고 있으며, 공동체보다는 대다수로부터 낯선 존재로써 살아가는 것이 편안한 삶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얼마나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주체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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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님이 서울시장이 된 이후로 길을 지나다 보면 ‘5인 이상이 모이면 협동조합 만들 수 있다’는 포스터 전단을 심심치 않게 발견하곤 합니다. 아직도 잘은 모르지만 제가 협동조합이라는 것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두기 시작했던 것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한낱 계약직 신세인 저는 한해가 저무는 시기가 찾아오며 또다시 고용불안이 스멀스멀 의식화되어 올라오네요. 단편적으로 조금 더 많은 월급을 받게 되는 것이 미래의 불안을 조금이나마 더 잠식시킬 수 있는 방도라 믿어왔지만 진정한 탈출구는 그 믿음을 깨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강의였습니다.

수줍은 듯 한땀한땀 강의를 진행하시던 신승철 선생님의 목소리를 이젠 매주 들을 수 없다니 왠지 아쉬워집니다. 매 강의마다 이렇다할 합일점에 다다르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새로운 차원의 고민과 질문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소통의 장을 마련하여 주신 녹색연합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하며, 글을 갈무리 합니다.

 

글 : 김지은 장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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