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사람의 생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무명의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는 것과 내가 아는 사람의 죽음을 접하는 것은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죽어갔음에도, 그 죽음을 손 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은 매우 큰 충격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충격이 준 비통함과 슬픔, 그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다.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고 행동하기 위해, 우리는 죽어간 이들을 구체적으로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나의 슬픔과 비통함에 실재성을 부과해야만 한다.
“형! 예은이 아닌가 봐. 예은이처럼 안 생겼어. 아니지?”
왼 눈썹 위 상처, 치아 안쪽 교정기, 손과 발….
‘아빠! 왜 나를 몰라봐? 나 예은이야.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내가 얼마나 힘들게 나왔는데….’
예은아! 돌아와줘서 고마워. 무서웠지? 힘들었지? 잘 견뎌줘서 고마워.
이제 집에 가자. 엄마한테 가자.
수학여행 간다고 집을 나선 지 꼭 열흘 만에 그렇게 타보고 싶다던 헬리콥터 타고 돌아왔습니다.
– 딸 없는 세상에서 아빠가 보내는 편지 중에서-
겁내지 마라,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기죽지 마라, 끝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걱정하지 마라, 아무에게도 뒤쳐지지 않는다.
슬퍼하지 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조급해하지 마라, 멈추기엔 이르다.
울지마라 너는 아직 어리다.
– 故 양온유학생의 페이스북 글 중에서-
잘 안다. 우리 가족 지금 많이 힘든 시기라는 걸 잘 안다.
오죽했으면 단 한 번도 눈길 주지 않았던 저 소득층 신청서를 냈을까. 난 하나도 부끄럽지않다.
솔직히 난 이게 됐으면 좋겠다. 그럼 엄마 아빠의 등이 좀 가벼워질테니까.
지금 내가 우는 건 왜일까? 난 강해져야 한다. 우리 가족을 책임지고 싶으니까.
엄마 아빠에게. 안녕, 오늘 제주도로 가게 되는 승희라고 해요.
내가 수학여행 가는 것 때문에 일주일간 예민하게 굴어 미안합니다.
엄마 아빠 탓이 아닌 거 아는데도 괜히 심술부렸어.
그래도 승희 비위 맞추려고 애쓰고 챙겨줘서 정말 정말 고마워요.
이번에 승희가 돈을 엄청 썼지만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해.
3박4일 재밌게 놀다올게. 그리고 갔다오면 열공 빡공 해야지.
엄마 어젯밤에 고생해서 같이 밖에 나가줘서 고마워.
나 없는 동안 셋이 재밌게 보내~ 사랑해. 승희가.
– 장학금으로 여행보내준 속 깊은 딸, 故 신승희양의 휴대폰에서 –
'엄마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해', ' 누나 사랑해, 그 동안 못해줘서 미안해', '언니가 말야, 기념품 못 사올 것 같아, 미안해', '얘들아, 내가 잘못하고 있으면 다 용서해줘, 사랑한다'는 카톡을 보내며 아이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사랑한다며 서로를 위로하고, 구명조끼를 서로 챙겨주며, 선생님의 안위를 묻는 아이들. 옆 친구들이 무서워할까봐 애써 밝은 목소리로 농담을 던지는 아이들, 구조를 기다리며 복도벽에 기대어있는 아이들의 모습. 급박해진 상황에서 아이들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애쓰셨던 선생님들. 그리고 구조 중이라며, 아내를 안심시키는 남편의 카톡.
이렇게 끝까지 침착했던 사람들을 단 한명도 구해내지 못했다. 가슴이 먹먹하다.
선장과 선원들에 대비되며, 죽어간 이들이 있다.
故남윤철, 故최혜정, 故고창석, 故양승진, 故전수영, 故유니나, 故이지혜, 故김응현, 故박육근, 故이해봉, 故김초원, 故최덕하, 故정차웅, 故양온유, 故박지영, 故정현선, 故김기웅 등과 실종자 양대홍씨가 그들이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해 다른 사람들의 구출을 돕다가 숨져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단원고 선생님들에 대한 증언은 최근 생존자 학생들의 인터뷰가 공개되면 추가되었다. 전해지지 않는 이야기들도 있을 것이다. 혼자 나오면 살 수 있었을 텐데, 함께 나오기 위해 애쓰다 죽어간 사람들은 이들 이외에 더 있을 것이다. 생존자가 없기에 전해지지 못했을 뿐이다. 두 아이가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도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급박한 상황, 혼자 살기위함이 아닌, 같이 살기 위해 애쓴 이들의 죽음은 회자되어야 한다. 왜냐면 그들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이 더불어 살고자 하는가?, 아니면 나혼자 살고자 하는가?"라는.
우리 사회는 사실 각자도생, 또는 가족단위에 생존이 내맡겨진 현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복지국가의 필요성이 지난 대선 강조되었다. 박근혜대통령도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복지국가를 이루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집권이후 경제민주화 복지국가는 빌 공(空)자 공약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파이를 키우는 것이 파이를 나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성장 담론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논리가 부지불식간에 사회에 확산되었다. 오락프로그램도 한몫했다. 그것이 재미인듯이 여겨지게 만드는 것에 대한 반성이 부족했다. 이런 현실이 선장과 승무원의 말도 안 되는, 인면수심의 행동을 만들어낸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같은 질문을 던지고, 질문의 답을 찾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숨져간 이들의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픈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슬픔과 비통함을 마주보고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바꿔야할 현실을, 너무나 거대하게 보이는 벽을 딛고 오를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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