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지난 여름보다는 좀 덜 더운 것 같네, 라고 문득 말하고 보니
어랏, 벌써 ‘입추’입니다. 입절기때마다 아직 추운데 입춘이라니, 아직 선선한데 입하라니 하게 되지만, 이렇게 절로 작년 더위와 올 더위를 비교할 만큼 여유가 생긴거지요. 태양의 변화가 막 땅에 도착했고, 그 변화가 우리가 느낄 정도가 될려면 다음 절기까지 기다려야 하니, 입절기는 계절의 변화가 막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인 셈입니다. 그 신호에 따라 차근차근 다음 시간을 준비하는 거지요. 자연의 알람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올 더위는 다들 어떠셨나요? 저는 지난 해 더위와 습기 때문에 제습기를 장만했습니다. 저녁마다 안방에 제습기를 한 시간 정도 켜서 물기를 없애야 잠을 좀 잘 수 있었지요. 에어컨은 없더라도 제습기는 꼭 있어야겠다고, 아열대 기후처럼 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제습기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제습기 예찬을 하고 다녔는데, 올해는 제습기를 딱 두 번 틀었습니다. 그만큼 살만했다는 뜻이겠지요. 올 여름도 지난 여름처럼 덥다면 어떻게 살아? 했더니 작년과 올해는 또 다릅니다. 이런 게 절기의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반복되지만, 그 반복이 늘 같지 않아 우리에겐 어제와 다른 오늘과 내일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더위와 비가 지나고 입추에 접어들며 자연은 열매맺기를 시작합니다. 이즈음 예전에 기청제(祈晴祭)라는 걸 했다고 합니다. 기우제와 반대되는 행사인데 날이 뜨겁고 맑기를 비는 행사인거죠. 곡식과 과일이 잘 익기위해서는 이젠 비는 그만 와야 하는데, 늘 입추가 지나고 추석이 올 즈음 태풍 소식이 있었으니 어쩌면 태풍이 피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는 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름날 더위와는 또다른 따가운 가을햇살도 곡식이 익어가는 데는 아주 중요합니다. 뭔가가 익기 위해서는 이 뜨거운 시절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뭔가 의미심장한 기운을 줍니다.
여전히 광화문에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기를 염원하고 있는 유가족분들에게도 이 뜨거운 시간이, 귀중한 열매가 맺는 시간이길 염원합니다.
사무실 마당의 팥배나무입니다. 저 파란 열매도 팥알처럼 점점 붉어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