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보따리 “필리핀의 녹색이야기”

2008.12.18 | 행사/교육/공지

첫 번째 이야기 보따리 “필리핀의 녹색이야기”

세월은 참 빠르다. 40대중반을 넘어서니 세월의 무상함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90년대 초 녹색운동의 단초를 처음 열었던 열정과 세월이 흘러 녹색운동의 역사와 지혜로 기록되거나 구전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난해 활동한 지 17년 만에 녹색안식년을 얻었다. 그리고 그동안 관성화되고 굳어진 직위와 활동을 내려놓고 자유를 누릴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일인가. 연착륙을 하려니 3월중순경이 되어서야 일손을 놓고 대학교수업을 하기 시작하였다. 25년 만에 재입학을 하니 처음에 학교후배들은 교수가 새로 왔나 신기해하고, 타과 교수들은 웬 늙수그레한 아줌마가 학생들과 나란히 앉아 있으니 어리둥절해 하였다. 과교수님들은 일일이 수업시간에 이 나이 든 선배를 후배들에게 녹색운동가로 소개시켜 주셨고 타과 수업시간엔 자진해서 만학도이니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를 하였다.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꼬박 하루를 보내며 수업하고, 보고서 쓰고, 시험보고, 책 읽으면서 대학생으로서 자유를 누렸다. 무엇보다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을 골라보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역사학자인 에릭홉스봄의「극단의 시대」등 두꺼운 역사책을 정독한 것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후배들에게 녹색을 주제로 발표도 할 겸해서 만든「기후변화와 중국의 역사」는 좋은 공부가 되었다. 그리고 교양수업을 활용해 본 중남미 영화보기는 세상과 영화를 보는 눈을 띄워 주었다. 방학을 반납하고 계절학기 수업을 들으며 졸업학점을 어느 정도 따 두고 올해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여행을 준비하였다. 마침 아름다운재단에서 하는 활동가 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500만원의 재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틈틈이 한 달에 10만원씩을 적립한 몫 돈 500만원을 찾아 1000만원의 예산을 마련하였다. 그렇게 나의 필리핀, 중국, 일본 4개월의 ‘녹색아시아를 찾아서’라는 방랑여행은 시작되었다.


필리핀에서는 아시아엔지오센터 성이국장 집에 한 달반을 머물면서 필리핀 현지인들과 영어수업을 주로 하였다. 영어에 주눅 들어 있는 나의 심보를 바꾸어 볼 심산이었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언어를 몰라도 최소한 공통언어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영어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필리핀은 여행 속 여행을 준비하는 첫 번째 나라로 봄을 맞기도 전에 38-40℃를 오르내리는 한여름을 겪었다. 여전히 영어실력이 초급단계를 넘지 못했지만 필리핀 선생들로부터 스투디어스라는 평가를 받으며 잘 어울려 놀았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한국의 몇몇 엔지오들이 모여 만든 아시아엔지오센터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국경의 벽을 넘지 못하는 한계, 언어의 한계를 넘어 아시아인으로서 아시아에 대한 이해와 활동의 폭을 넓히는 것을 돕기 위해 필리핀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년 1회 10여명의 활동가들이 현지에서 5개월여 기간 연수하는 프로그램이 정례화되어 있어 필리핀과 아시아를 배우는 좋은 공부가 되고 있다. 지난 시기 마르코스 독재정부를 몰아낸 민주주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은 가난과 부정부패로 몸살을 앓고 있다. 년 3모작이 가능한 기후대와 토지 형편에도 불구하고 놀고 있는 땅이 많고 9천만 명의 인구 중에 3분의 1이 일일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7천여 개의 크고 작은 아름다운 섬의 나라로 년 간 300만 명에 이르는 관광객이 필리핀을 찾지만 그 수익이 현지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정부권력과 외지자본으로 집중되고 주민은 도시빈민으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찾기 위한 노력이 가뭄의 단비처럼 필리핀에 뿌리내리고 있다.

내가 찾은 세부 근처의 보홀에서는 지역과 주민이 주체가 되어 지방정부, 환경단체와 협력하여 생태관광을 시작하고 있었다. 보홀의 초코렛힐, 안경원숭이 타시어, 망그로브 숲, 로복강 투어와 함께 보홀 속 팡라오섬과 이를 둘러싼 발리카삭섬, 파밀라칸섬 등 진풍경을 녹색여행으로 만날 수 있다. 보홀로 출발하기 전에 생태관광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 ‘방곤’의 안내를 받으려고 연락을 취했는데 잘 연결이 되지 않아 혼자 지도를 보며 찾아다니는 배낭여행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탁빌라란 시내에 있는 방곤 사무실을 찾았을 때 글렌 랩라도 대표는 원주민이 코코넛과 야자수로 정성스레 만든 서류가방에 자료를 챙겨 주며 다음엔 꼭 생태여행을 즐기고 가라며 아쉬워했다.

실제 생태관광을 하는 주체들의 진정성 있는 안내가 아니라면 이곳도 역시 돈 중심의 상업관광으로 주머니 속 돈 걱정을 해야 하는 가난한 녹색여행가들은 마음 상하는 일을 겪을 수밖에 없다. 특히 필리핀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50만 명으로 가장 많고, 대궐 같은 집 짓고 사업하며 큰 손 노릇하는 한국인들이 늘어나니 한국인은 모두 부자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어 거침없이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팡라오섬 알로나비치 방가로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해양보호구역인 발리카삭섬으로 가서 아름다운 산호초 바다 속 다이빙을 즐기려고 했는데 기름 값을 아끼려고 가까운 섬에 데려다 주며 발리카삭섬이라고 나를 속이던 선주와 한바탕 다툰 기억이 그 예의 하나이다. 그래도 새벽녘에 파밀라칸섬에서 물살을 가르며 비상하는 돌고래를 만나니 기분이 확 좋아진다. 파밀라칸섬 일대는 돌고래 주요 서식지로 92년 고래잡이가 금지되면서 고래잡이하던 주민들이 포경선을 개조해서 대안 생계방안으로 고래 생태관광선으로 운행하고 있다. 다음에 꼭 녹색연합 회원과 함께 보홀로 녹색여행을 갈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만으로도 벌써 마음은 들뜬다.

김제남의 녹색아시는 3편으로 구성됩니다. 제2편 중국의 녹색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글, 사진 : 김제남 (녹색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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