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보따리 “중국의 녹색이야기”

2009.01.07 | 행사/교육/공지

두 번째 이야기 보따리 “중국의 녹색이야기”

열심히 해바라기씨를 까먹는데 몰입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나도 중국사람 다 되었네’라고 혼잣말을 뱉는 시간을 넘어 기차는 스무 시간을 달려 베이징역에 도착했다.
5월 21일 베이징에 도착해서 안휘성 황산여행을 마치니 7월 3일 다시 베이징이다. 그동안 45일 배낭 매고 중국을 돌아다녔다. 960만 평방킬로미터(㎢) 넓이로 한반도 면적의 44배, 14억이 넘는 거대인구를 가진 중국 땅을 중국인들도 평생 다 못 가 본다는데, 고작 40여일 중국에 다녀왔으니 주마간산(走馬看山)도 다 하지 못한 셈이다. 중국말 한마디 못하는 내가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몇몇 지인을 빼고는 아는 사람 없이 별 탈 없이 녹색여행을 할 수 있었으니 이런 행운과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중국인이 즐겨 쓰는 말 ‘천하’에 제일 복 많은 사람이 아니겠나!

내게 이번 여행은 내려놓고 떠남이었다. 나 자신과의 마주섬이었다. 그동안 낯설게 동떨어져 있었던 대륙안 자연과 사람과의 만남과 관계맺음이었다. 그리고 녹색으로 살아가는 즐거움과 에너지를 재충전해 주는 인생수업이었다.

올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 이산화탄소 배출국이 되었다. 등소평 개혁개방정책 이후 급속한 성장과 소비 증대로 중국은 석탄, 석유 등 세계의 에너지와 자원을 마치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북공정처럼 중국은 공정의 나라이다. 중화주의를 중심에 둔 역사공정뿐만 아니라 자연을 대상으로 한 개발공정이 중국 전역에 광풍처럼 몰아치고 있다. 물론 역사공정은 대규모 자연훼손을 동반하는 개발공정과 함께 진행되기 일쑤이다. 동북공정과 백두산공정도 그 하나이다. 백두산 관할 행정권이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중국 길림성 직속으로 바뀌고, 백두산은 중국의‘장백산’으로 세계화, 브랜드화하고 있다. 세계지도에서 우리의 ‘백두산’ 대명사를 찾아볼 수 없는 형편이다. 올해 초 중국은 백두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신청하였고 장백산 공항 신설, 백두산 선봉 스키장 건설, 압록강 상류지역인 백두산 남쪽풍경구 문을 열며 백두산 개발 프로젝트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또한 지난 1958년 대약진운동시기 1억 명이 동원된 대연강철(大煉鋼鐵)사업으로 용광로에 몸을 태우느라 헐벗어 버린 숲처럼 서기동수(西氣東輸), 남수북조(南水北調), 양쯔강 삼협댐으로 중국의 산하가 파괴되고 있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중국의 세계유산인 만리장성, 이화원, 자금성, 포탈라궁, 삼강병류 등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며 보호대책을 요구하였다. 삼강병류는 2003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동방대협곡으로 누강(怒江), 란창강(瀾滄江), 진사강(金沙江) 3개의 강이 400km를 흐르며 협곡을 이루는데 노강 줄기에 13개의 댐을 건설해서 삼협댐 7배에 이르는 수력발전을 계획하였다. 이 사업은 일단 중국 환경단체와 지역주민, 세계여론에 밀려 중단하였지만 최근 산과 절벽을 파헤치고 있는 것이 규모를 축소해서 진행한다는 것이 현지 소식이다. 도르레로 강을 건너는 소수민족 리수족의 오랜 전통과 문화, 풍요로운 원시자연이 노강과 함께 자유롭게 유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족을 포함해 56개 민족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 사막에서 빙산까지 다양한 생태계와 아름다운 원시자연은 분명 중국이 가진 풍요이자 국력이다. 그러나 흑묘백묘(黑猫白猫)라는 실용주의 사회주의는 티베트와 같은 소수민족을 중화주의로 동화시키고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는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전 국토에서 벌어지는 개발열풍, 첨예한 빈부격차는 천민자본주의를 닮아 안타깝게 했다. 그래도 중국 전역에서 만날 수 있는 만만디 심성을 닮은 광대한 원시자연과 소수민족의 넉넉한 웃음은 우리가 아시아인으로서 함께 지켜가야 할 세계유산이다. 리장의 위룽설산(玉龍雪山, 5596m)이 빚어낸 고원습지 라스하이(拉市海)에 갔을 때 일이다. 나시족 할머니 등에 업힌 여자아이가 예뻐서 부탁하여 사진을 찍는데 처음 보는 카메라에 놀란 아이가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이 아이에게 이 이방인은 어떻게 비쳤을까? 너무도 미안해서 덩달아 울었던 기억이 오래도록 남는다. 이렇게 첨단자본주의 문명과 원시자연에 사는 소수민족이 공존하는 사회, 그 중국에 나는 처음 말을 걸기 시작하였다.

북경, 길림성 연변 두만강과 백두산 탐방, 허베이성(河北省) 펑닝(豊寧) 만족자치현 사막화현장, 국제상업도시 상하이, 항저우(抗州) 서호(西湖), 윈난성(云南城)의 쿤밍(昆明)과 따리(大理), 세계문화유산 리장(麗江)고성, 차마고도 호도협(虎跳峽), 중국의 낙원 샹그릴라(香格里拉), 세계유산 황산에 이르는 45일, 힘들고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았지만 항상 나를 지켜준 수호천사와 함께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었다. 때로는 예측하지 못한 어려움도 있고 걸려 넘어지는 때도 있는 법인데 자연의 이치이니 어려움에 부딪히면 더욱 준비하고 많은 존재와 관계 맺어 갈 일이다. 걸려 넘어질 때는 가던 길도 되돌아보고 자기를 성찰하며 오만과 독선을 내려놓고 갈 때 바른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옳다고 믿고 가는 길도 나의 의지와 힘만으로 가는 것이 아님을 매 순간 깨닫는다. 수많은 인연과 관계가 나를 돕고 나와 더불어 존재하며 살아가는 것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 중국의 녹색현장으로 이끌어 준 수많은 인연과 보살핌에 정말 감사드린다.

김제남의 녹색아시는 3편으로 구성됩니다. 2008년 12월호 제1편 <필리핀의 녹색이야기>에 이어, 2009년 2월호 제3편 <일본의 녹색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글·사진 : 김제남 (녹색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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