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경제 위기와 식량위기
쿠바는 400년간의 스페인 지배와 30년간의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종속이라는 뼈아픈 역사를 거치면서 1959년부터는 미국의존적 경제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사탕수수의존 경제구조를 바꾸고, 농지개혁 등 재분배정책에 집중하였다. 대토지 소유자를 소멸시키고 개인 토지 소유를 일천 에이커 내로 제한했다. 이러한 토지개혁으로 인해 소농들은 쿠바에서 재배된 채소의 52%,옥수수의 67%, 담배의 85%를 생산함으로서 농업구조를 개편하였다. 1960년 초기에 저발전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계획’을 강조하고, 설탕수출의 역사적 의존성을 축소시키며 농산물 수출의 다각화와 산업화를 통한 경제발전전략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1963년 당시 국제시장에서 설탕가격 인상으로 설탕생산 확대를 강조하게 됨으로서 설탕생산 우선 경제정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1972년에는 사회주의 블록의 기술적 분업체계에 가입했고, SDPE라는 소련식 경제개혁 모델을 받아들였다. 쿠바는 이 분업경제체제에서 주로 설탕과 관련 부산물들을 대부분 소련과 동유럽과 중국에 팔았는데, 쿠바 수출액의 75%를 차지하였다. 이로인해 국영 설탕 농원은 곡식보다 3배나 많은 농지를 차지하게 되었고 중남미에서 가장 가진 뒤처진 국가였던 쿠바는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국민들의 생활수준과 삶의 질을 근대화되고 전체인구의 80%가 도시에 거주하게 되었다. 복지정책 향상을 통해 교육과 체육, 의료분야에서 선진국에 버금가는 수준을 이루었다. 쿠바가 의약에서 컴퓨터까지 모든 것을 생산하는 고도로 산업화된 국가였음에도 쿠바 농업은 설탕, 담배, 감귤에 절대적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또, 방대한 규모의 근대 농업은 기계화되었고 농업자재는 모두 수입에 의존했다. 결과적으로 쿠바는 설탕을 생산하는데 사용되는 석유연료의 대부분과 그 외 비료의 48%, 가축 사료의 36%, 살충제의 82%를 수입했다. 1990년대까지 석유수요량의 대부분을 소련으로부터 액면가 이하로 수입하고 식량의 60%를 전부 소비에트권에서 수입했다.
그러나 1989년 동유럽의 몰락과 함께 1991년 소련의 해체 등 사회주의 붕괴로 쿠바의 정치·경제적인 타격을 입었다. 지원되던 소련원조가 끊어지자 1989~1992년 사이에 석유지원은 86%하락했고, 비료와 농약과 가축 사료 수입이 80% 감소했다. 농업에 대한 석유 공급은 반으로 줄었다. 이로인해 1994년에는 쿠바 내 농업 생산은 1990년대 수준의 55%로 떨어졌다. 동시에 식량수입은 42%하락했다. 이것은 한 때는 쿠바에서 소비되는 식량의 60%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 결과로 쿠바 경제위기의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부분은 식량 공급이었다. 1989년 이후 쿠바의 경제규모가 25%이상 축소되고 급기야 아바나에서는 실업률이 6%, 전국적으로 실업률은 40%에 이르렀다. 설상가상 평소 쿠바를 눈의 가시처럼 여기던 미국은 30여년 전부터 시행해오던 경제봉쇄를 더욱더 강화하였다. 그나마 유지되었던 미국과의 무역량의 80%가 식료품과 의약품을 수입을 하였으나 차단되었다. 미국의 기업뿐만 아니라 중남미의 다른 나라들도 쿠바와의 교류를 차단하게 하였다. 쿠바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고립상태에 봉착했다. 400년간의 스페인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 30년간의 미국의 경제적 종속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룬 쿠바이지만, 결과적으로 식료품의 66%, 기름의 98%, 기계와 부품의 80%, 의약품의 대부분을 소련을, 대부분의 의약품을 미국의 수입에 의존하는 쿠바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붕괴와 더욱더 강화된 미국의 경제봉쇄로 인해 경제적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내게 되었다.
농업 활성화를 통한 경제위기 극복
도시의 유휴지를 최대한 발굴하여 텃밭과 도시농장으로 개발하였다. 부족한 퇴비와 농자재는 주변 지역자원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서 자연스럽게 지역물질의 물질순환 시스템이 활성화되었다. 도시민들의 생활방식도 변화하였다. 인공포장을 뜯어 텃밭을 만들고, 음식물쓰레기와 농사부산물을 모아 퇴비로 만들었다. 제초를 위해 여가시간을 텃밭에서 보내면서 농업기술을 공유하기 위하여 지역공동체가 활성화 되었다. 최근 아바나시의 도시농장은 쿠바 전체에서 소비되는 채소의 60%를 생산한다. 도시농업은 쿠바의 식량위기를 극복하게 한 핵심적인 정책이다. 정부는 유기 종자들과 제반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한 농업 가게를 열었다.
협농농장을 비롯해 쿠바의 도시농업은 해외에 의존해 오던 농약, 비료, 대규모 농기계, 석유 등에 의존하는 고투입 농법의 한계를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의 유지를 위하여 지역의 유기자원과 생물학적 기술을 최대한 활용한 유기농법을 100% 실현함으로서 전세계 농업계에 커다란 집중을 받았다.
쿠바정부는 식량위기에 대한 생존전략이자 국책사업인 농업을 3대 국가핵심산업으로 지정하고 다양한 농업 활성화 정책을 펼쳤다. 먼저 기성세대들의 농업이 후진적이라는 문화적 편견과 차세대들의 농업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국영 텔레비젼을 통해 교육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하였다. 또 중학교 교과과정에 한 달 이상의 농촌 체류 및 체험 과정을 필수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농약, 비료, 석유 등의 자원부재로 고투입 농업의 한계는 저투입 농업, 자생적 유기농업 인식 생성, 자발적인 실천을 통해 극복하였다. 결과적으로 식량문제 발생 후 농업이 신개발 분야로 육성되어 농민수가 증가하고, 경작토지면적 증가하고, 관련 시장 및 산업 활성화가 되었다. 현재 쿠바의 농민은 사회문화적으로 준공무원 대우를 한다는 받고 있다.
1990년대의 농업 개혁은 지속가능 농업과 건강한 시장의 발전과 국영 농장들의 사유화와 협동조합화에 중점을 두었다. 대부분의 국영농장들을 민영화시키기보다는 농업협동조합으로 바꾸어 생산의 인센티브를 강화시켰다. 1993년 9월에, 쿠바 정부는 국영 농장들을 노동자들에 의해 소유되고, 노동자들에 의해 경영되는 민간 협동조합으로 재구조조정 하기 위하여 협동농장(UBPCs)을 시행하였다. 협동농장은 농지, 기계, 경작도구, 주택 등 기초적인 지원하였고, 경작지의 41.2%의 대부분의 국영 농장 2,007 개(조합원 수 총 122,000 명)를 새로운 협동조합들로 바꾸었다. 쿠바의 협동농장은 경제적으로는 인센티브제를, 운영면에서는 협농농장의 조합원들의 자발적 계획 및 참여운영을 기본으로 적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단점이었던 저생산성, 하향식 전달, 수동적 태도, 자신감 박탈, 자유부족 등의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을 극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협동농장은 정책 구상단계에서부터 식량생산 및 경제적인 수단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농촌지역개발의 전략으로서 계획하여 추진하였다. 하향식의 전달체계가 아니라 의사결정과정에서의 생산자들의 참여를 증진함으로서 풀뿌리단위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 쿠바 시민사회의 다양화를 꾀한다는 목표를 가진다. 지역수준에서의 의사결정체이자 지속가능한 농촌개발을 위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쿠바정부는 체제가 붕괴된 기존의 공산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소련식 사회분업체제의 경제에 대한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정권이 수정켐페인을 채택함으로서 정권의 민감한 경제변화 감지와 정치적 유연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미래지향적이고 효과적인 대응방안 마련, 경영효율 개선, 국가독점구조 변화, 생산자 참여형 협동농장제도 도입, 해외자본 통제기능 유지 등을 실천하여 생산성 확대와 체제 안정화를 달성함으로서 경제변화 대응역량과 효율적 운영 역량의 실험에 성공하였다. 쿠바 체제는 수정캠페인을 통해 1990년 초반 사회주의 경제블록이 몰락 후 미칠 영향을 미연에 방지 할 수 있었고, 쿠바체제가 생존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이었다.
쿠바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나?
쿠바의 경제위기는 소련식 사회주의의 경제체제 붕괴, 미국의 경제봉쇄 등과 같은 시대적 이슈에 의한 것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해외 의존적 경제구조의 본질적인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농업과 식량, 연료 등의 해외의존적 경제구조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지원으로 도시농업이 자연스럽게 시장원리를 도입하면서 성공함과 동시에 쿠바 정부는 국내 생산과 경쟁하는 저가의 농산물의 수입을 제한하고, 국내에서 충분히 생산할 수 없는 것만을 수입하였다. 국영공단과 국영기업의 불필요한 보조금을 끊고 효율성을 높여 성과를 올리면서도 일반 국민사이에서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사회문제를 방지하였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저가의 배급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였다. 결국 미시경제면에서 커뮤니티 수준의 지역경제의 회복을 도모하고 거시경제면에서 명확한 사회안전망 전략을 정부가 제공하였다. 자국의 자원을 이용한 식량 자급과 지역자원순환 유기농법 실천, 해외자본의 부정적 영향 최소화를 위한 정부 역할, 경제변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 특정이익집단이 아닌 다수의 국민들을 위한 미래지향적 대응전략 마련,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보호 등으로 쿠바의 정책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이념을 떠나 ‘보편적인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 실현을 우선시한 것이다. 이것이 다른 공산주의 국가의 붕괴와 다른 길을 선택한 쿠바가 경제위기, 식량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한 가장 핵심적인 힘이라 생각된다.
최근 유가상승이나 세계적 경제위기에 대해 전사회적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한편 세계적으로는 경제위기 못지않게 식량위기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이슈화가 되지 않고 있다. 유가상승, 경제위기, 식량위기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들이다. 해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 석유의존도가 높은 농업, 75% 이상의 식량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식량공급 구조로 보아 쿠바의 경험이 그리 우리와 별개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물론 한국과 쿠바의 상황이 동일하게 일치하지 않지만, 세계경제의 변화, 석유시장의 변화, FTA 확산 등으로 인한 미래예측이 어렵다는 불안감과 우려가 앞서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현상 속에서 한국의 농업과 농촌은 더욱 심각한 위기에 놓이게 될 것이다. 복잡다양한 국내․적 상황에서 현실에 대한 현명한 진단과 미래지향적인 대안 제시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글 : 김경화 (녹색사회연구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