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디자인은 환경문제를 최소화하는 녹색디자인이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윤호섭 명예교수님은 ‘굿 디자인이란 생태윤리 의식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에 전할 지구를 생각하는 녹색디자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지구를 생각하는 녹색디자인이란 어떤 것일까?
우선 ‘디자인’의 어원은 라틴어 데시그나레(designare)에서 유래했는데, ‘지시하다’, ‘표현하다’, ‘성취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지시할 수 있는 설계 도면과 같은 것, 그것을 실체로 표현해내는 것, 마지막으로 뜻한 바를 완성해 내는 것을 디자인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은 우리 생활에 필요한 집과 공간에 대한 환경디자인에서부터 각종 제품 디자인,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시각디자인까지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여기에 ‘친환경’ 개념을 더하면, 녹색디자인은 디자인을 계획해서 구현하고, 사용하고, 폐기하는 전 과정에서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친환경적으로 디자인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주변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배치하는 것이 우선이다. 다음은 단열과 자연채광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설계해 건물의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여야 한다. 빗물을 모아 정원수로 사용하고, 건축 재료는 친환경소재를 이용한다. 독일 프라이브르크의 ‘헬리오트롭’은 집 전체가 태양을 따라 회전하면서 태양광발전기로 에너지를 생산하기도 한다. 지난해 열린 중국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도 태양광과 풍력발전기에서 생산한 전기를 사용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은 벌써부터 친환경디자인 건축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런던은 지금 빈민지역이었던 동부 스트랫포드 일대를 재건축해서 8만석 규모의 주경기장을 짓고 있다. 건축재료로는 오래된 건물들을 철거한 폐콘크리트의 70%를 재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맨홀뚜껑도 미술가들이 조각품을 만들어 활용할 정도다. 이렇게 건축한 ‘재활용 스타디움’은 올림픽이 끝나면 좌석과 지붕을 해체해 소규모 다용도 경기장으로 지역사회에 환원된다. 주경기장 건설에서부터 올림픽 이후 활용까지 ‘환경’과 ‘주민’을 배려한 것이다.
사실 친환경건축은 몇 해 전 ‘집이 사람을 공격한다’라는 방송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주목받기 시작했다. 건축에 쓰이는 벽지, 바닥재, 천장재, 페인트 등에서 나오는 포름알데히드, 벤젠, 아세틸렌 같은 물질이 심각한 새집증후군과 실내공기오염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린이를 비롯한 사람들의 건강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흙, 목재, 스트로베일 같은 친환경 건축 소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은 고유가와 기후변화문제로 인해 에너지를 덜 소비하는 ‘저탄소 주택’으로 친환경건축의 개념이 확장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제품을 사용한다. 그래서 상품 소비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우리가 친환경제품을 디자인할 때, 원료만 친환경으로 만들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제품을 사용할 때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제품의 크기, 수명도 중요하다. 크기는 되도록 작게, 수명은 오래도록, 사용할 때는 에너지 소비량이 적은 것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정답이다. 쓰고 나서는 재활용하거나 자연에서 쉽게 분해되는 것이어야 한다.
세탁 효율을 30%이상 향상시키면서도 물과 전기 소비를 대폭 줄인 세탁기, 연비가 높은 자동차, 물을 오염시키지 않고 쉽게 분해되는 세제 등도 모두 친환경디자인 제품이다. 최근 국내에서 출시된 핸드폰은 태양광전지를 통해 햇빛을 받아 충전한다. 외관 케이스는 플라스틱생수병을 재활용한 소재로 만들고, 유해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 놀라운 변화이다. 이제 기업도 친환경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옥수수전분으로 만든 생분해성플라스틱을 이용한 노트북과 휴대폰도 생산되고 있다. 뉴욕에서 열린 친환경디자인 경연대회 ‘그리너 가제트(Greener Gadget) 2009’에 ‘블라이트’라는 기발한 작품이 등장했다. 빛을 가리기 위해 창문에 설치하는 블라인드에 태양광 발전 장치를 붙인 것이다. 블라인드는 낮에 빛을 받아 전기를 생산해 충전기에 저장한 뒤 밤이 되면 전등의 역할을 한다.
캘리포니아 주는 지난해 2009년형 자동차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표시하는 레이블 부착을 의무화했다. 이 레이블에는 해당 차량이 배출하는 가스를 기준으로 지구온난화 점수(Global Warming Score) 또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스모그 점수가 표시된다. 기업들이 친환경 자동차를 개발하도록 주정부가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환경문제와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소비자들도 제품을 구매할 때 ‘환경’에 대한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우리의 일상생활의 변화와 실천도 중요하다. 이때도 친환경디자인은 큰 역할을 해낸다.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시각적인 이미지와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북극곰’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지구온난화로 2070년이면 서울도 아열대기후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실행에 옮겨야 한다. “Made in Seoul Banana” 디자인은 서울에서 바나나가 자라기 전에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실천을 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환경교육과 캠페인에 있어서 친환경디자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윤호섭 교수님이 운영하는 그린 캔버스(http://www.greencanvas.com)는 바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처럼 친환경디자인은 건축물에서부터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제품들과, 사람들의 인식에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디자인의 대상 범위를 보다 확장하면, 우리가 사는 도시공간과 우리의 삶까지도 환경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친환경디자인이 우리의 생활 속에 자리 잡으면서, 우리사회가 보다 녹색으로 푸르러 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