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갯벌 현장을 처음 찾았을 때, 그 너른 갯벌에 펼쳐지는 생명의 유희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다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자연이 빚어내는 위대함이었다. 갯벌 위에 한 어머니는 부지런히 손을 놀려 가무락을 찾고, 한 무리의 갈매기는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먹이를 찾으며 노닐고 있었다. 어머니의 호미가 닿은 갯벌은 검은 윤기의 잘 생긴 가무락을 수도 없이 캐내 아들딸 대학 보내고 시집장가를 보냈다. 우리는 그 아름답고 평화로운 새만금갯벌을 생명과 조화의 땅이요, 생명과 조화의 바다라고 불렀다. 새만금갯벌은 사람과 그 곳에 깃든 생명이 향유하는 현재의 자연자원이며, 우리 아이들이 누려야 할 미래의 자연자원이다.
2000년 5월 5일 어린이날 새만금 간척사업이 벌어지는 전북 새만금 해창갯벌에는 꼬물꼬물 몸자국을 그리며 가는 비단고둥과 수없이 몸을 숨겼다, 내었다 하며 숨박꼭질하는 게를 따라 아이들의 까르륵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미래세대환경소송단> 발족식을 함께 연 아이들은 전날 서울행정법원에 농림부장관, 해양수산부장관 앞으로 ‘새만금공유수면매립면허 취소 및 새만금 간척사업 시행인가 취소 청구소송을 내며 미래세대가 향유할 갯벌을 파괴하는 새만금사업 중단’을 요구했다. 지금도 대명사처럼 불리고 있는 이른바 ‘새만금 미래세대 환경소송’이다. 92년 지구환경정상회의에서 채택한 <리오선언>이 미래세대 환경권을 밝히고 있듯이 ‘자연자원은 현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미래세대가 오래도록 두고 누려야 할 공동의 재산으로, 미래세대에게 빌려온 것이다’는 것이 미래세대 환경소송을 하게 된 바탕생각이었다.
새만금갯벌이 사라지면 이곳에서 누릴 미래세대 자연향유권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던 몇몇 어른들은 부모로서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책임 있는 행동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법학자인 전재경 박사는 ‘현 세대가 향유하고 있는 자연자원은 미래세대로부터 신탁 받은 재산’이라는 미래세대 환경권의 철학과 법 논리를 제공해 주었다. 갯벌생물학자인 제종길 박사는 새만금 갯벌의 생태학적 중요성을 현장조사를 통해 밝혀 주었고, 박오순 변호사는 미래세대 환경소송 책임변호사를 맡아 주관하였다. 녹색운동가로서 나는 <녹색연합> 활동가들과 함께 국제환경협약에서 명시하고 있는 미래세대 환경권 및 보호사례를 조사하며 미래세대 환경소송을 준비하였다. 우리는 필리핀에서 미래세대를 대리하여 천연열대림 벌목금지 소송에서 승소했던 안토니오 오포사 변호사를 국내에 초청하여 토론회를 열었다. 초청토론회에서 오포사변호사는 ‘필리핀 숲이 빠른 속도로 개발되면서 당시 3살이던 우리 아들이 10년 후에는 숲을 구경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아, 우리 아들의 자연자원을 지켜주기 위해 벌목금지를 요청하는 소송을 냈다’고 회고하였다. 90년 43명의 필리핀 어린이가 원고로 낸 벌목금지소송은 93년 법원이 판결문에서 미래세대 환경권을 인정하면서 승소하였고, 필리핀정부는 70여건의 벌목허가를 취소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재판부는 원고가 적격하지 않다며 1년여 만에 소송을 각하했고, 결국 미래세대 환경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같은 날 환경단체 <풀꽃세상>은 ‘모든 갯벌생명체를 대신하여 조개중의 조개라 불리는 백합이 세세만년 갯벌에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백합에게 풀꽃상을 시상하고 ‘자랑스러운 어린이들에게 어른으로서의 부끄러움과 함께 격려의 마음을 전달한다’며 ‘미래세대환경소송인단’에 부상을 전달하였다. 환경소송인단을 대표하여 초등학교 5학년생 전수진, 6학년생 제아라실은 영국 이스트본에서 열린 세계어린이환경회의에 참석해 새만금갯벌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어린이 환경권을 찾기 위한 미래세대환경소송에 세계 어린이의 관심과 지지를 호소하였다. 미래세대 환경소송 이후 10년! 그 당시 아이들은 이제 중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었는데 그 당시 아이들의 순수한 녹색울림은 어디에서 메아리치고 있을까?
2010년 4월 27일 새만금방조제 준공식이 있었다. 91년 정치논리로 탁상에서 시작한 공사는 19년 만에 개발주의자의 욕망을 따라 기다란 33km의 방조제를 완성하였다. 33km에 이르는 방조제 대공사를 축하하는 화려한 깃발아래 몰살당한 생명체들이 수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99년 환경단체가 주장한 갯벌의 가치와 사업타당성조사를 위해 ‘민관공동조사단’이 구성되고 2년에 걸친 공동조사가 이루어졌다. 갯벌의 다양한 생태가치가 밝혀지고, 새만금호를 담수호로 유지하는 수질 개선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2001년 5월 정부는 식량안보에 대응하여 농지를 조성한다며 사업을 강행하였다. 2003년 3월 28일부터 5월 31일까지 전북 부안에서 서울 시청까지 65일 동안 삼보일보 오체투지로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님, 김경일 교무님, 이희운 목사님은 새만금갯벌 생명평화를 염원하며 온몸을 던졌다. 그러나 참여정부도 친환경 농지조성을 하겠다며 방조제 최종물막이공사를 강행하였다. 그리고 새만금사업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최악의 대형토건사업으로 변질되었다. 현 정부의 새만금종합개발사업은 2020년까지 간척지를 산업단지, 상업단지, 관광단지 등 모든 개발사업의 종합세트를 만들 계획이다. 새만금갯벌은 천혜의 생태관광 자원일진대, 이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대규모 골프장 등 관광단지를 조성한다고 하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이보다 더한 녹색맹의 소탐대실이 있을까?
대형토건사업으로 변질한 새만금사업은 온 국토의 생명의 물줄기인 강을 막아 생명을 몰살시키는 4대강사업과 다르지 않다. 생명을 몰살하는 4대강사업, 새만금사업에는 녹색이 없으며, 미래세대를 위한 미래가 없다. ‘녹색’은 생명을 존중하여 더불어 사는 것이며, 미래세대에게 빌린 땅과 자연을 잘 쓰고 관리해서 되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래세대 환경소송이 남긴 녹색의 공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