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에서 만나 할머니

2004.11.22 | 행사/교육/공지

5일장에서 만난 할머니

우리는 가끔 여행을 간다. 여행이 아니라 장보러 간다. 그것도 전국의 5일장을 찾아 다닌다. 너무 먼데는 시간이 안 나서 갈 수 없고 당일치기로 갈 수 있는 장터를 돌아다닌다. 우리는 이를 테마여행이라고 부른다. 약간 멀리 떨어진 시장에 가서 저녁 찬거리를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떠난다. 여주 목아 박물관에 가는 것이 아니라 콩이 비교적 싼 여주 5일장에 간 김에 근처 목아 박물관에 간다. 부석사에 가는 것이 아니라 곶감이 좋은 영주 5일장에 갔다가 부석사에 들른다.

부석사에 가는 길에 만난 군인트럭 – 책읽는 군인

산나물이 많은 단양장에 갔다가 그 근처에서 오래 전에 봐둔 돗나물터를 찾아 햇돗나물을 잔뜩 캐서 집에 돌아와서는 돗나물 물김치를 담가 먹는다. 포도가 많은 서정리 5일장에 갔다가 근처에 모신 부모님 산소에 들러서 김밥을 먹고 오기도 한다. 하다못해 나는 아내가 조사해서 엑셀 표로 그려준 전국 5일장 날자표를 지니고 있다가, 지방 출장 일로 먼 곳까지 갈 일이 생길 때는, 그것에 가서도 어김없이 물어물어 장터를 찾아 살만한 산물이 없어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온다. 우리는 소위 콩 마니아라서 여기저기 각종의 콩을 찾아 한두 되씩 사가지고 온다. 지금은 다 남주고 별로 없지만 콩 사는 일은 참으로 즐겁다. 이제는 국산콩과 수입콩을 구별할 수도 있다. 엄격히 말하면 우리 눈으로 구분하는 것은 아니다. 않은뱅이 좌판에서 콩 파는 할머니와 이 얘기 저 예기 하다보면 금새 국산인지 수입인지 알게 된다는 말이다. 콩나물콩이나 메주콩이나 검정콩이나 씹어봐서 비린내가 흠뻑 나야 우리 콩이 확실하다. 특히 검정콩이나 쥐눈이콩은 겉이야 다 검지만 속은 누런 것과 퍼런 것이 따로 있다. 가능하면 속이 퍼런 콩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누런 것보다 맛이 휠씬 더 좋다는 말이다. 문제는 퍼런 콩은 드물어서 장에서 사기가 쉽지 않다. 사실 이런 사실들도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모두 주워들은 이야기이다.    

특히 아내는 장터 할머니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여주 5일장에 갔다가 좌판 할머니한테 메주콩을 사면서 콩 한말이 7.5킬로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장에 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얘기하다 보면, 곧 사라질 것 같은 그 옛날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물건을 사면서도 서로 웃을 수 있는 마음이 좋다. 우리는 장을 돌아다니면서 절대로 물건값 깎는 법이 없다. 그 대신 한 줌 더 달라고 하면 한 줌 더 주신다. 나이 들어감이 아름다울 수 있는 사회는 결국 우리가 만드는 것 같다 .

삶에 묻어난 할머니의 지혜 – 가남장

재미있고 기억나는 집안 얘기를 하나 할까 한다. 십년 전쯤이었나, 좋은 와인이 한 병 생겼다 그 때만 해도 와인 따는 기구가 집집마다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 와인을 마시기 위해서 코르크 마개를 칼로 어떻게 짓자르고 젓가락으로 누르고 해서 병 속으로 마개를 집어넣어서야 겨우 와인은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다 마시고 나니 그 병이 너무 예뻐서 병 속에 있는 코르크 마개를 빼내어야만 그 병을 쓰겠는데 아무리 해도 코르크 마개를 빼낼 재간이 없었다. 식구들이 다 머리를 짜내고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았지만 마개는 계속 병 속에 있었다. 이때 친정 엄마가 그걸 보시더니 길다란 천 끈을 가져오시더니, 병을 이리 내보라 하신다. 병을 드렸더니 천을 병 속에 넣더니 순간적으로 끈을 확 잡아당기니 그 틈에 끈과 코르크 마개가 같이 빠져 나왔다. 식구들 모두들 환성,  와,~ 와,  물리학 교수도 못하는 일을! 우아아 !!!

살면서 나이 드신 분들의 지혜와 경험을 간간히 접하게 된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눈여겨보고 인정하는 가이다. 아이의 새로운 말, 새로운 생각에는 귀를 기울여도 나이 드신 분들한테는 그러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도 나이가 들어갈 텐데. 우리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생활의 경험과 인생의 경험도 많이 쌓아두지 못하고 나이만 먹어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놓아버릴 것들이 생기는 나이. 그러나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나이. 살림을 꾸려가느라, 사회에서 처지고 뒤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에 과거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지만, 이제는 미래를 생각하는 일이 과거를 생각해 봄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항상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여보! 애구 깜짝이야.

5일장 이야기를 다시 계속해야지. 하여간 장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는 다양하다. 콩 이야기, 산나물 이야기, 엿장수 이야기부터 변화하는 시대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한번은 성우리조트 가는 길에 있는 둔내 5일장에 갔다. 장이라고 해야 썰렁하기만 하다. 동네 슈퍼마켓에 밀리고 전국 유통망에 밀리고 해서 이제는 지역산물마저도 별로 없는 그런 장터가 되어 가고 있었다. 슬픈 일이다. 전국의 많은 시골 장터가 대부분 그러하지만 특히 둔내장의 몰락은 더 심하다. 한때 성우리조트가 들어선다고 해서 둔내면은 활기에 차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 사람들이 몰려와서 알자배기는 다 빼먹고 동네 청년들에게는 서울 사람 흉내 내는 괜한 소비 바람만 집어넣어 동네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단다. 스키 대여업으로 돈을 쥔 동네사람도 몇 있으나 이나마 큰 밑돈이 필요해서 아무나 달겨들 일이 아니라고 한다. 골프장 근처 동네 사람들은 행여 소위 가든이라고 이름붙인 식당이나 하면 돈이 될까 해서 2억씩 처들여서 식당을 개업했지만 돈 있는 사람들은 시골 식당 대신 곧장 근처 대규모 콘도나 호텔로 아니면 아예 서울로 가버린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처음에 기대에 부풀었듯이, 서울 사람 호주머니 돈이 떨어지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 조그마한 동네에 쓸데없는 단란주점이나 늘어나니 동네 분위기는 험악해져 갔고 동네 사람들은 줄어들고 이제 겨우 명맥만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장터 아저씨에게 듣고 나니 나도 맥이 빠진다.

스키장때문에 오히려 더 죽은 둔내장

5일장을 처음 찾아다닐 때는 인터넷에서 구한 전국 5일장표를 보고 다녔다. 그런데 막상 다니다 보면 이미 오래 전에 없어진 장이 많다. 그래서 항상 가기 전에 가려고 하는 읍면소재지 면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날자와 장소를 꼭 확인한다. 일요일이라도 근무자가 항상 전화를 받으며, 이 정도는 친절히 답변해준다.

앞서 말했지만 전국의 닷새장의 규모는 작아지고, 지역 특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듯하다. 대부분의 장에서 공통된 것이 있다. 우선 물건이 비슷비슷한 한약재상이 반드시 있다. 그리고 할머니 옷 파는 좌판 옷가게가 꼭 있다. 또한 그릇가게와 일용식품 좌판이 들어선다. 그리고 장터 사람들이 먹을 칼국수, 비빔밥 장사들도 따리 붙어 있다. 그러나 아직은 아주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지역의 특산물이 많지는 않지만 여전하다. 또한 계절에 따라 할머니들의 텃밭에서 나온 농산물이 작은 바구니에 얹혀서 사갈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뻥티기 아저씨와 엿장수들이 건재 한다. 또한 지역에서 한 평생을 풀무질로 보내신 대장간 할아버지들도 낫이나 호미를 만들어서 바닥에 깔아놓고 계신다. 뭐니 뭐니 해도 장터에 나온 사람들끼리 오가는 잡담과 인정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온정을 느끼는 그 장터 -주천장

마지막으로 장을 돌아다니면서 물산을 사려면 말과 되의 크기와 무게를 꼭 알아야 한다. 우리처럼 잘 몰랐던 사람들은 왜 물건마다 말과 되의 무게가 다 다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는 웬만한 것은 다 안다. 당연히 말과 되는 부피 개념이고 같은 부피라도 곡식 종류마다 다 다르고, 또한 말린 정도마다 다 다른 것이다. 말과 되를 무게로 환산해보면 다음과 같다.    

메주 1말     6.5 kg
쌀 1말       8.0 kg
콩 1말       7.5 kg 약간 안 됨.
팥 1말       9.0 kg
참깨 1말     6.0 kg 약간 안 됨        
들깨 1말     4.5 kg
마른고추 1근 600 g (마른고추 한 근을 빻으면 약 450g의 고춧가루가 나옴)
고춧가루 1근 600 g

참 많은 장을 돌아 다녔다. 여러 장을 돌아보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중국산과 국내 지역산물의 품질과 가격 차이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국 소금과 중국산 새우로 만든 젓갈은 그 맛과 가격의 차이가 심하다. 그만큼 중국산인지 조심해서 사라는 말이다. 한번은 새우젓 시장으로 유명한 충청남도 광천 장에서 중국 새우젓과 우리 새우젓의 가격 차이가 무려 5배였다. 그런데 맛도 그 가격 차이만큼이나 나는 듯 했다. 이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농산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모르고 있다. 지금 피폐해져가는 농촌을 정말 되살려야 한다. 이런 생각이 절박하지만, 도시 속 아파트에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보기 드물게 활발한 원주 새벽장  – 직접 농사지은 것만 장에 가지고 나올 수 있음(4월에서 11월까지만)

이날 너무 늦게 나가서 – 파장하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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