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쯤 되니 온몸 곳곳이 뻐근합니다. 제 마음은 양양에 가기 전부터 녹색순례에 갈 채비를 했지만, 제 몸은 그러지 못했나 봅니다. 그래도 이 근육통이 양양부터 속초까지 걸으며 설악을 온몸으로 느낀 것의 증표라 생각하니, 오늘 발걸음도 힘차게 내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은 다시 설악산국립공원으로 가 비선대와 울산바위를 보고 오는 일정이었는데요, 주제는 바로 ‘자연을 듣는 날’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휴대폰과 잠시 멀어지는 디지털 디톡스도 함께 해보았습니다. 설악산국립공원에 도착한 녹색순례단은 주제를 되새기며 모두 차분한 마음으로 설악산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말소리를 줄이고 자연에 귀 기울이며 걷다보니 다양한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지식이 부족해 어떤 새가 어떤 울음소리를 내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수많은 생명들이 설악에 깃들어 산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자연을 듣는 날’이라는 주제를 내세우지 않았다면 이렇게 맑은 새소리들을 듣지 못했겠지요.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한 녹색순례단은 나무 데크에 모여 앉아 바위벽을 멋들어지게 뽐내는 비선대를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조용히 자연의 소리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선대계곡의 시원한 물줄기 소리가 산행으로 뜨거워진 우리의 몸을 마음을 식혀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듣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이 계곡을 의지해 각양각색의 야생생물들이 삶을 이어나가고 있을 것을 상상하니 참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비선대에서 내려와 가볍게 점심을 챙겨먹고 다시 울산바위를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울산바위로 올라가는 길에는 설악산의 또 하나의 명소인 흔들바위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흔들바위를 소개하는 글이 적힌 팻말을 들여다보니 블록 모양의 바위가 풍화작용으로 인해 모서리가 깎여 지금처럼 둥글둥글한 형태의 흔들바위가 되었다고 적혀있었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것인지 흔들바위가 새삼 하나의 작품처럼 보였습니다. 자연은 이처럼 우리가 없었던 태초의 시간에서부터 존재하고 있는 것일 터, 결국 설악은 인간이 함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흔들바위에서 울산바위까지의 거리는 1km 정도였지만 계단이 많아 쉽지 않았습니다. 힘들어하는 동료가 있으면 챙겨주고 독려하면서 모두 포기하지 않고 안전하게 울산바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구슬땀을 흘리며 올라와서 그런지 울산바위 전망대에서 보이는 장엄한 설악의 풍경은 정말 절경이었습니다. 속초시내가 한눈에 조망되는데 청초호와 영랑호가 보였습니다. 설악을 사랑했던 이성선 시인은 그의 시에서 이를 두 개의 맑은 눈동자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호수 주변은 유원지로 매립ㆍ개발되어 그 맑은 눈빛을 잃어가고 있다는데요, 당연히 호수에 깃들어 사는 철새, 백로, 어류가 살 곳을 잃었을테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심지어 속초시는 영랑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영랑호수윗길 부교를 만들었습니다. 영랑호 둘레길을 한번 도는데 1시간 이상 걸려 시간이 길다는 것이 영랑호를 둘로 쪼갠 이유였습니다. 오로지 인간의 편의와 이익을 기준으로만 자연을 바라보고 개발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설악산에 든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양양에 만든다는 오색케이블카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설악산에서 듣고 싶은 소리는 영롱한 새소리와 청량한 계곡소리입니다. 케이블카 지주가 꽃히는 소리, 케이블카가 오고 가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녹색순례단처럼 자연의 소리를 듣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어떨까요? 어떤 소리가 더 자연에 걸맞는지 금방 답을 찾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 진예원 활동가
* 제24회 녹색순례는 한살림연합에서 유기농 쌀과 미숫가루를, 에코생협에서 식재료를, 철도노조에서 물품을 후원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