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말 그대로 ‘하루 종일 걷는’ 순례단. 순례단의 꼬박 하루는 걸음과 말, 두 가지로 채워져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루 3만보 이상의 고된 걸음을 옮기며 주고받는 말은 참 다양합니다. 네 번째 날의 이야기는 ‘순례단의 말’을 중심으로 담아보았습니다. 말 따라 걸음 따라 오늘도 함께 걸어볼까요?

“맞서 싸우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
오늘은 상반기 순례단이 집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돌아갈 자들은 남은 순례단의 안녕을 빌며 그간의 소회를 나누었어요. 한 활동가는 순례 내내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가 무엇일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개발하려는 세력들은 도무지 포기를 모르는데, 그에 맞서 싸우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고요. 개발을 향한 고집보다 생명을 향한 고집이 더 세다는 것을 보여주자고요.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니까요.

“차와요, 차옵니다”
순례단이 다 함께 수도 없이 외친 말은 ‘설악산을 그대로!’ 도 아니고, ‘케이블카 철회하라!’도 아닙니다. 바로 ‘차와요! 차옵니다’ 인데요, 조금 김이 빠지시나요? 아찔하게 아름다운 숲을 거닐 때도, 머리에 불을 지른 것 같은 땡볕의 둑방길을 걸을 때도 있지만, 순례단이 자주 지나가는 길은 바로 ‘도로’입니다. 이동거리가 워낙 길기 때문에 도로를 지나지 않고서는 순례가 불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순례단의 맨 앞과 맨 뒤의 활동가는 경광봉을 들고 안전을 책임집니다. 차가 오는지 매의 눈으로 살피고, 차가 오면 여지 없이 외칩니다. ‘차옵니다!’ 긴 순례단의 행렬에 맨 뒤의 외침이 맨 앞까지 들릴 리가 없겠죠, 우리들은 외침을 앞으로 앞으로 전달합니다. 그래서 하루종일 돌림노래처럼 울려퍼지는 말, 차옵니다, 차와요.

“꽃이 하늘을 향하면 나비와 벌이 날아오고, 땅을 향하면 개미가 와요.”
한 시간여를 걸으면 적당한 곳을 찾아 쉼을 청합니다. 모둠별로 모여 행동식(오늘은 방울 토마토였어요!)을 먹고, 신발을 벗고 뜨거워진 발바닥을 식히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제가 있는 5모둠에는 전남녹색연합의 박수완국장이 함께 하고 있는데요, 자연물에 대한 지식이 방대하고 이야기 솜씨가 대단해서 쉬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큰 이유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 꽃은 뭐예요?’ 질문하기가 무섭게 시작 되는 숲해설, 아 좋아요. 제비꽃은 개미에 의해 씨앗이 널리 퍼집니다. 땅을 향하는 꽃에는 개미가 수분을 담당하고, 하늘을 향하는 꽃에는 나비, 벌 등 날으는 곤충이 수분을 담당한다고요. 경쟁하기보다 공생을 택하는 식물 생태계에 대해 열띤 대화가 오가는 우리들의 쉬는시간, 어떤가요?

“한 줄로 걸을 게요!”
함께 먹고 자고, 한 없이 걸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레 친밀해집니다. 환경 활동가로서의 고민뿐 아니라 취미, 지난 여행, 가끔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나누며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런 걸음이 4일차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안전을 위해 한 줄로 걷던 대열이 둘, 셋 이야기를 나누며 흐트러지기 마련입니다. 같은 마음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기꺼이 활동하는 서로가 참 좋거든요. 자꾸 알고 싶고, 공감하고 싶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집니다. 때마침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변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 순례단을 안전하게 이끌어야 할 대장은 자꾸만 외치게 되죠. ‘안전을 위해 한 줄로 걸을 게요!’

“도무지 길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하지만 한 발 들어서면 수많은 생명들이 나를 반기는, 자연의 빈틈 없는 질서가 이어져있음을 느낍니다.”
오늘 순례단의 하루는 조금 더 깁니다. 20km를 걸어와 지친 몸을 살펴볼 새도 없이 다시 모여 박그림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날입니다. 꽃보다 똥이 더 반가운 그림쌤, 산양 똥에서 그들의 살아있음을 느끼고 그 힘으로 다시 설악과 산양을 위해 일어나는 그처럼 저도 설악을 위해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설악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글. 녹색연합 이음팀 신지선
*제 24회 녹색순례는 한살림연합에서 유기농 쌀과 미숫가루를, 에코생협에서 식재료를, 철도노조에서 물품을 후원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