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회 녹색순례] 다시 만난 민주주의 ①진정으로 다시 마음에 새기는 광주민중항쟁

2025.04.16 | 녹색순례-2025

새소리와 뜨거운 햇빛, 흩날리는 벚꽃 아래 스물다섯 번째 녹색순례를 시작한 곳은 국립5·18민주묘지이다. 지난 12·3 계엄으로 시작된 2025년 민주주의 투쟁을 겪으며, 우리는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광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생명의 길이, 민주주의 없이 불가능함을 다시 한번 온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광주민중항쟁.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전라남도 광주 한복판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치던 시민들을 대한민국 국군이 무참히 학살한 사건이다. 우리 근대사에서 씻을 수 없는 국가 폭력 사건이며, 여전히 가해자의 사과와 열사들에 대한 참배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비극이다.

구묘역(망월동묘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발대식을 마친 순례단은 ‘시민의 솟음길’이라는 이름의 길을 향해 첫걸음을 떼었다. 솟아난 시민들이 묻힌 곳에서 그들이 솟아난 자리까지 걷는 오늘의 길은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광주 시내를 거쳐 전남대학교 정문-광주역광장사적-5·18최초 발포지-5·18민주화운동기록관-전일빌딩-옛전남도청과 5·18민주광장까지의 총 16.9km이다. 광주광역시의 북구 동쪽 끝에서 횡으로 내려가 동구 남쪽까지 걷는 길로, 흙이 없는 아스팔트 길을 이렇게 오래 걷기는 처음인 것 같다.

민주묘역에서 나와 전남대학교 정문까지 걷는 길 유채꽃, 광대나물꽃, 민들레, 홍매화, 자목련, 수선화, 복숭아꽃, 자주광대나물, 별꽃, 대만흰나비, 현호색, 봄맞이꽃, 박새, 어치 등등 길을 걷는 곳곳에 생명들이 성실히 자신의 삶을 산다. 치열하게 존재하는 생명들을 만나는 봄의 걸음은 치열하게 존재하던 5월의 광주 시민과 그대로 겹쳐진다. 전남대학교까지 순례단이 걷는 그 길은 너무나도 삶의 터, 생활의 장소였다. 태어나 살아가는 존재를 죽이는 것은 무엇인가?

추모의 마음과 45년 전 그곳에 있었던 이들을 떠올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전남대학교 정문에 있는 제1호 5·18 민중항쟁 사적비 앞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찬연히 빛나는 5·18 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된 곳이다.”라고 시작하는 비문이 보여주듯, 광주민중항쟁은 5월 18일 전날 전국 비상계엄이 내려진 후 이를 알지 못하고 학교에 있던 학생들을 폭행하고, 끌고 가며 진압하였고, 이에 저항하던 학생들이 시민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도심으로 진출하며 시작되었다. 이후 학생 및 시민과 계엄군의 충돌이 계속 이어지며 다수의 희생자가 나오고, 22일에는 교정에서 매장된 시신들과 폭행, 고문한 현장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1 아름다운 호수와 평화로이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있는 시민들, 운동하는 학생들이 가득한 푸릇한 봄의 캠퍼스를 바라보며 이런 과거를 떠올리기가 쉽지는 않을 텐데, 잊지 않으려는 광주의 수많은 노력이 고맙고도 애틋했다. 잊을 수 없는 역사가 이 지역의 곳곳에 쌓여 있기에 그럴 것이다.

이런 흔적들을 찾아 5·18 최초 발포지를 거쳐 옛 전남도청과 전일빌딩이 있는 5·18민주광장으로 발걸음을 계속했다. 걷는 모든 곳이 항쟁의 장소, 만나는 그 땅과 하늘이, 남아 있는 건물이 국가 폭력의 증인인 그 길의 끝에 있는 5·18민주광장에는 세월호 11주년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미 북구청 앞을 지날 때 나무마다 달린 노란 리본과 바람개비를 본 터였다. 순례가 시작된 오늘은 4월 16일, 국가 폭력에 대항하면서도 평화의 시민자치를 실현함으로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민중항쟁의 땅에서 여전히 국가란 무엇인지 묻게 되는 날이다.

12·3 계엄이 아니었어도 광주민중항쟁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사건임을 모르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엄의 순간을 겪으며,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은 어쩌면 진정으로 80년의 광주를 다시 마음에 새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더한 절망의 시간을 연대와 희망으로 견뎌낸 이들을, 목숨을 걸고 우리에게 건넨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으며 녹색순례는 나아간다.

  1. 출처 : 5·18기념재단 광주 사적지 소개
    https://518.org/base/road/place/read?roadPlaceNo=29&searchCategory&page=1&searchType&searchWord&menuLevel=3&menuNo=6 ↩︎

* 본 내용은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기고되었습니다.

* 작성자: 대전충남 녹색연합 송송이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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