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녹색순례의 하루는 선식 배급으로 시작한다. 매일 여섯 시 삼십 분, 각자 챙겨 온 물통을 들고 식당에 모여 두유에 미숫가루를 탄다. 그 자리에서 선식을 먹지 않고, 일곱 시에 모둠별로 모여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고 ‘밥 노래’를 부른 뒤 함께 선식을 먹는다. 밥은 하늘이고, 하늘을 혼자 가지지 못하듯이, 밥은 서로 서로 나누어 먹는다는 가사의 노래다.
아침 시간을 마치면 모두의 침낭과 짐을 한데 모아 숙소를 비우고, 사용한 공간을 청소한다. 밖으로 나선 우리는 커다란 원으로 모여 하루를 위한 준비 운동을 한다. 그날그날 행렬을 구성하는 모둠의 순서가 달라지는데, 오늘은 2조, 3조, 4조, 1조 순서였다. 2조의 모둠원이 피로가 덜 가신 목소리로 준비 동작에 숫자를 붙여 세기 시작했다. 벌써 닷새째, 역사가 새겨진 장소와 장소 사이를 도보로 이동하여 방문하고 있다. 몸이 피로할 수밖에 없고, 그러나 마음은 매 순간 단단해지고 있다. 준비 운동 시범자의 꾸밈없는 피곤한 모습에 한 차례 웃음이 일었다. 이렇게 오늘도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일정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 녹색연합의 깃발을 들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앞에서 길을 터준 사람들 덕분이다. 제25회 녹색순례는 ‘다시 만난 민주주의, 생명의 길을 걷다’라는 제목으로 광주와 여수, 순천을 돌아보는 여정을 계획했다. 연초에 주제와 지역을 결정하면서, 우리는 5.18의 광주와 10.19의 여수·순천이 남긴 역사와 운동을 다시 만날 필요를 느꼈다.
신년 워크숍 한 달 전 선포되었다가 해제된 계엄의 여파가 계속되던 시점이었다. 국민을 폭도로 규정하여 총칼을 겨누려던 시도는 즉시 무산되었으나 그 충격과 혼란이 여전했다. 하물며 군부가 이미 정권을 장악한 1980년 5월의 광주였다.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군정은 시민을 폭력으로 진압했다. 일제로부터 해방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48년 10월에는 당시 여수에 주둔하던 14연대 군인들의 항거가 있었다. 군대는 제주를 진압하라는 지시에 저항함으로써 악을 실현하는 일에 상투적으로 임하기를 거부했다.
오늘 녹색순례의 행로는 여수에서 순천을 향했다. 하루하루 새긴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여자만의 동쪽 연안을 따라 위로 걸었다. 남해의 갯벌은 대개 모래가 많다고 하는데, 서해의 갯벌처럼 점토가 꽤 섞였다는 갯벌이 옆으로 펼쳐졌다. 행렬은 시골길로 접어들었다가 도로 바다에 가까워졌다. 데크에서 모둠별로 모여 아침에 준비한 도시락을 풀었다. 이후 두어 시간을 더 걸어 와온소공원에 다다른 우리는 그곳에서 빨치산의 역사를 에세이 같은 소설로 남긴 작가를 만났다.

정지아 작가는 나무벽의 구멍으로 가는 줄기의 햇살이 들더라는 회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구멍은 좀벌레가 나무를 먹어 생겼고, 총알이 뚫어 생겼다. 순천의 고등학교에서 사건의 흔적을 스스로 발견하기 전, 어린 시절의 작가는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주변 어른의 안타까움을 샀다. 작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전쟁 전부터 활동한 ‘구빨치’로서 천운으로 목숨을 건진 이들이었다. 고등학생이던 작가는 이십 년 전의 총알 자국으로 전쟁 전후의 역사를 돌아보았고, 앞으로 이십 년 후면 그 시절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스러짐으로써 과거의 해석이 갱신될 것을 기대했다.
긴 시간에 걸쳐, 빨치산의 자식이라는 사실이 더는 낙인이 아니게 되는 변화가 있었다. 이는 작가와 같은 사람이 사실을 기록하여 기억으로 남긴 덕분이다. 과거의 자식인 우리는 기억을 나누어 가져 마땅하고, 또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이다. 그렇듯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지만, 여러 시간이 같은 땅 위에 산재하여 존재한다고 상상해 보겠다. 우리는 시간의 사이사이를 통과하는 역사의 장소를 방문하고 있다. 하루 전은 4월 19일이었다.

올해 녹색순례의 하루는 저녁 식사로 마무리된다. 아침과 같이 동그랗게 모여 몸을 푸는 스트레칭을 하고, 한데 모았던 침낭과 짐을 하룻밤의 숙소에 들이고, 순례 자료집과 도시락, 우비 등을 챙겨 종일 메고 다닌 가방을 내려놓는다. 먼저 씻은 뒤 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숨을 돌리고 느지막이 씻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 자연스럽게 정해진 차례대로 하나둘 수건을 걸친다. 그사이 저녁 식사를 담당하는 모둠은 시간에 맞춰 요리를 준비한다.
순례를 시작할 때 모두 일주일 동안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반찬을 한두 종류씩 준비해 왔다. 여기에 더해 그날그날 저녁마다 지원팀의 도움을 받아 다 함께 먹을 국을 끓인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4모둠이 만드는 파개장이었다. 모두가 채식주의자이지 않고,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만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지만, 일주일 정도 공용 음식을 비건으로 준비해 먹는 일에는 무리가 없다.
오전에, 잠시 바다가 보이지 않던 길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이야기하며 기고자는 평소에 찾지도 않는 라면을 꼽았다. 액젓을 사용하지 않은 파개장은 라면에 대한 헛된 그리움을 즉시 해소하는 맛이었다. 파개장을 요리한 사람 중 한 명은 기고자의 침낭 이웃으로, 기고자의 옆의 앞에서, 설거지가 ‘그릇을 아끼는 느낌’이라서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과연 그렇다. 그릇을 씻을 때 손으로 오는 감각이 ‘그릇을 아끼는 느낌’을 준다. 이때까지 계속 써 온 쓴 그릇을 오늘 또 썼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이렇듯 존재를 소중히 여겨 아끼는 것이 녹색이며, 몸으로 직접 느끼는 것이 기고자에게 순례가 가지는 의미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 주는 매체가 썩 많다. 인터넷에 검색하는 것도 손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구태여 시간이 흐른 장소나마 찾는 것은 그곳에서 몸에 익는 감각이 있는 때문이라고 기고자는 생각한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도, 산을 깎아 바다를 매립한다는 개발 계획을 이해하려면 황당하다. 그런데 현장에 찾아가 그 산과 바다를 눈으로 볼 때의 충격은 또 한참 다르다. 나라는 인간과 자연이 어떠한 관계인지 몸으로 감각할 때 확대되는 세계가 있다. 눈앞의 이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더 잘 알 수 있다. 이곳에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무참한 사건이. 그렇게 존재를 중히 대하는 마음으로, 녹색으로 순례하며, 역사를 돌아보고 몸으로 기억하여 우리가 나아갈 길을 내다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