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회 녹색순례] 다시 만난 민주주의 ⑥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우리 민주주의는 그렇게 이어진다

2025.04.22 | 녹색순례-2025

▲마당에 모여 체조를 준비하는 녹색순례단 ⓒ 녹색연합

오전 5시, 순례자들은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하루를 시작한다. 이번 민주주의 순례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6박 7일간의 순례가 끝이 나고 있다. 전 날 밤, 열두시가 다 되어가는 무렵 “순례니까. 민주주의 순례니까” 하고 되뇌며 하루라도 순례자들과 함께 걷고자 서울에서 여수까지 온 이도 있었다.

여느 날처럼 선식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함께 나눠먹을 반찬을 담은 점심 도시락을 싸넣은 배낭을 멘 순례자들이 마당으로 모인다. 오전 6시 45분 구름이 잔뜩 낀 새벽, 체조 구령을 넣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전직 군인 형서다. 순례에 참여하며 녹색연합 활동가 예원의 삶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그는 예원의 군 동기이자 배우자다. 작년 순례에 이어 형서는 예원과 함께 올해도 순례에 전일 참가했다. 체조 후 형서는 30kg에 달하는 군장을 메고 백여명이 넘는 군인들을 이끌어가며 수십 키로 행군을 해 본 7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잘 걷는 방법’을 전수한다. 오늘은 순례 중 가장 긴 거리인 30km 가까이를 걷는 날이기에 순례자들이 다치지 않고 잘 마무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그는 선뜻 나서 체조를 자원했다.

▲순례 중 만난 강아지 ⓒ 녹색연합

전날 묵었던 와온마을회관을 떠나 순천왜성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은 가볍다. 매일의 길을 여는 대장의 걸음을 기고자가 속한 3조는 녹색연합 깃발을 들고 따른다. 그 뒤를 4조가, 1조가, 2조가 차례로 걷는다. 조용한 아침 와온길 위 수십의 순례자들은 광주에서 또 여수와 순천에서 매일 듣고 보았던,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침묵하며 나아간다. 그렇게 한 시간을 걸었을까, ‘마을 앞 천천히’가 쓰인 표지판을 지나 노월마을에 다다랐을 무렵 하늘을 뒤덮었던 구름이 걷히고 새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을 걸으며 만난 마을 사람들은 이 수십의 무리가 반갑다. 잠옷 바람으로 창문을 활짝 열고 양 팔을 좌우로 크게 흔들며 인사하고, 트럭을 몰고 가다 순례단의 걸음에 맞춰 속도를 줄여 보조석 창문을 내리고는 손사래를 치는 순례단의 손에 기어코 용돈을 쥐어주고, 허리굽혀 밭을 매다 일어나선 “으디서 와부렀는지” 또 “으디를 가는가”를 궁금해한다. 여순사건 등 역사적 아픔으로 인해 ‘세상이 언제 또 바뀔지 몰라서’, ‘혹여나 내 말이나 행동이 자식에 해가 될까’ 외지인에 대한 태도가 폐쇄적일 거란 선입견이 무색하다. 지나는 집집마다 강아지는 멍멍하고 짖고 고양이와 염소, 이름을 다 알지 못하는 이런저런 새들도 각자의 목소리로 온 동네 사방에서 아는 체 한다. 개가 짖고 동물이 울고 타인을 반기는 게 당연한 동네다.

▲순례길 내내 길가에 떨어져있던 붉은 꽃들 ⓒ 녹색연합

걷는 내내 핏방울같이 작고 붉은 꽃들이 떨어져 길게 펼쳐져있다. 군데군데 핀 동백과 철쭉은 이곳에선 핏빛이다. 무릎까지 비쭉 높게 올라온 들풀은 그 날카로운 끝이 꼭 총칼같다. 백운산과 지리산 등지 낮게 엎드려 몸을 숨긴 빨치산은 바람에 스치는 풀잎 소리 하나에도 소스라치지 않았을까. 유독 이 곳 길가에는 민들레꽃이 많다. 샛노란 민들레꽃 주위를 뱅뱅 도는 흰 나비와 바람에 흩어지는 하얀 민들레홀씨에 국가의 폭력에 스러진 영혼들이 겹친다. 이 풍경을 앞으로 또 옆으로 두고 걷는 발자국 소리와 깃발 펄럭이는 소리만 겹쳐 한참을 난다. 오전 11시, 순례단은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왜장 소서행이 호남을 공격하기 위해 쌓았다는 순천왜성에 올랐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소서행장을 노량 앞바다로 유인해 크게 승리한 역사깊은 곳이다. 아래 펼쳐진 절경을 내려다보며 순례단은 “왜인들이 좋은 곳에 터를 잡았네요” 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싸 온 도시락을 꺼내 나눈다.

▲세풍습지 ⓒ 녹색연합

든든해진 속에 순례단들의 발걸음이 더욱 힘차다. 오후 1시 40분, 세풍습지에 다다랐다. 세풍습지를 보호지역으로 승격시키려는 전남녹색연합의 노력은 올해 두꺼비 서식지 복원 사업과 더불어 전남녹색연합이 가장 힘쓰고 있는 올해 2대 과제 중 하나다. 수많은 새들이 세풍습지를 날아다닌다. 그 중에는 고니와 흑두루미, 큰기러기와 같은 멸종위기 보호종도 있다. 세풍습지를 지나 연신 발걸음을 옮긴 순례단은 오후 5시 우두마을 민간인 학살터에 도착했다. 동그랗게 앉은 순례단을 앞에 둔 박발진 전남녹색연합 상임대표는 우두마을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설명한다. 학살은 1949년 9월 17일 우두마을 당산나무 앞 도로변 개울가에서 자행됐다. 빨치산과 토벌군의 격전이 벌어지던 때였다. 광양경찰서 경찰은 가장 낮은 지형에 사람들을 4열로 세워놓고 총살했다. 당숙이 입산해서, 그 조카의 친구라서 죽임을 당했다. 학살터를 마지막으로 민주주의 순례는 끝이 났다.

▲6박 7일 순례의 마지막 날 녹색순례단 ⓒ 녹색연합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건너려 도보를 뛰어내리는 청개구리에 한 쪽 무릎을 꿇고 폴짝폴짝 개구리가 뛰어오르는 속도에 맞춰 주먹을 쥐었다 폈다하는 활동가 일수가 있다. 그 둘의 속도가 맞아 쏙하고 손아귀에 개구리가 들어왔을 때 작은 생명은 앞으로도 개굴개굴 울 수가 있었다. 개구리를 손에 쥔 일수의 앞에는 매일의 길을 여는 대장 선영이 있다. 흰 색 손수건을 달랑달랑 가방에 달고 선영보다도 저만치 앞서가다 홱 뒤돌아 전부를 담으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맨 뒤로 뒤처졌다 어느샌가 정신차려보면 다시 또 맨 앞에서 걷고 있는 활동가 황도 있다. 그 뒤에는 발 아래 핀 들꽃 하나 함부로 밟지 않고 피해 걷는 순례자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순례단을 위해 준비하고 대비하는 활동가 태영과 은정도 있다. 각자가 가진 재능을, 서로에 대한 마음을 계산하지 않고 아낌없이 나누는 사람들. 시키지 않아도 앞다투어 깃발을 들고, 경광봉을 흔들며 서로의 무거운 짐을 기꺼이 나누어 들고자 하는 순례자들이 이 길 위에 있었다. 오늘 아침 마지막 순례를 앞두고 “타인에게 관심없는 민주주의란 얼마나 무용한가”라며 ‘나’에 집중해온 기존의 녹색연합 순례와는 다르게 ‘우리’와 ‘동료’를 깊이 생각하는 순례였음에 감사함을 느낀다던 녹색연합 사무처장 규석의 말이 떠오른다. 민주주의 순례는 끝났지만 우리는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눕고 울고,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가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면서 그렇게 우리의 민주주의를 이어갈테다.

▲김수영의 시 ‘풀’ ⓒ 녹색연합
▲녹색순례단 ⓒ 녹색연합

* 본 내용은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기고되었습니다.

* 작성자: 본부 녹색연합 김선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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