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14회 녹색연합 정기총회에서 신임 공동대표로 한윤정 대표가 취임했습니다. 총회가 끝나고 바로 다가온 월요일에 성북동 녹색연합 사무실에서 한윤정 대표를 만났습니다. 녹색연합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짙은 녹색 옷을 챙겨 입는 모습에서 ‘녹색’을 향한 유쾌한 진심이 느껴졌는데요. 인터뷰 당일에도 초록색 옷을 입고 나타난 한윤정 대표는 의외로 ‘터프함’이 자신의 추구미라고 소개했습니다.

녹색연합의 새로운 공동대표로 선임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됩니다. 지난 3월 22일 열린 제14회 정기총회를 기점으로 공식적인 여정을 시작하셨는데요. 당시 나눠주신 소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순간의 감정을 다시 한번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우선 녹색연합이라는 아름다운 공동체에 함께할 수 있어 정말 기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해가 1991년인데, 공교롭게도 그해 녹색연합이 창립되었더라고요. 34년이 흐른 지금, 이렇게 깊은 인연을 맺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녹색연합을 떠올리면 커다란 나무가 연상됩니다. 뿌리 깊고 든든한 나무이지만, 매해 봄이면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생명력 넘치는 존재죠. 그동안 녹색연합의 활동을 밖에서 지켜봤는데 이제는 더 가까이에서 배우고 함께할 수 있게 되어 기대가 큽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력 속에서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꿋꿋이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매해 봄 싹을 틔우는 생동감을 지닌 나무라니! 왠지 모를 힘이 솟는 느낌입니다. 오랜 시간 환경 현장을 묵묵히 지켜온 녹색연합의 이미지와 잘 맞다는 생각도 들어요. 오래되고 큰 조직의 대표로 함께 하겠다 마음먹기까지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많은 고민과 결단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 됩니다. 앞으로 어떤 것을 함께 하고 싶으신지도 궁금해요.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보다는 ‘녹색연합 활동이 멋지다. 함께하고 싶다. 배우고 영감을 나누며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녹색연합은 다양한 환경 의제를 다룹니다. 현장 활동부터 정책과 정치, 사회적 전환까지 여러 층위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조직이죠. 최근 생긴 단체라면 단일한 목표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녹색연합은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이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축적된 경험을 어떻게 조화롭게 연결할 것인가입니다. 녹색연합만의 독창성을 살리면서도, 다양한 활동을 큰 흐름 속에서 함께 엮어가는 방향을 고민하고 싶습니다.
또한 저는 기자 생활을 하며 현장의 중요성을 깊이 체감했습니다. ‘현장’의 성격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요. 온라인과 소셜미디어가 중요한 소통 수단이 된 지금, 직접 발로 뛰는 활동과 효율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지 고민도 필요하지요. 무엇보다 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힘을 낼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모르겠지만 활동가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려 합니다.
녹색연합은 늘 ‘발로 뛰는 현장에서 답을 찾고, 가장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킨다’고 소개하곤 합니다. 지금 이 인터뷰를 진행하는 순간에도 경북 의성과 안동에서 큰 산불이 나 활동가가 새벽부터 현장으로 달려간 상황이에요. 이렇게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환경단체의 역할은 무엇인지, 어떤 메시지를 언제 전하면 좋을지 고민이 깊어집니다. 고민만 하다가 소통하기 좋은 시기를 놓치진 않을까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요. 기후재난 같은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시민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야 할까요?
일본 후쿠시마 사고 당시에 바로 현장에 달려갔던 어떤 사진가의 이야기가 떠오르는데요, 이제 지구상에는 공간적인 오지는 없고, 시간적인 오지만 존재한다는 거예요. 기후재난, 산불, 핵사고의 현장은 ‘시간적인 오지’이며, 바로 그 순간에 그 현장을 경험했느냐 아니냐가 질적인 차이를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녹색연합의 모든 활동가가 모든 현장에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 역사적인 현장에 활동가가 달려가 연대하는 조직이 되는 것은 중요합니다. 운동은 이성과 논리도 중요하지만, 사실 가슴으로 하는 거잖아요.
환경 현장에서 어떤 장면과 메시지를 송출할 수 있느냐 하는 고민은 중요하긴 하나 본질은 아닌 것 같아요. 운동의 본질은 녹색연합 활동가가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이 활동에 생명을 주는 것이겠죠.

지난 몇 년간 환경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통찰을 담은 칼럼을 지속적으로 쓰셨습니다. 스스로를 전환연구자라고 소개하시는데요, 그 맥락이 궁금합니다.
환경 의제에 관심은 있지만 관련 일을 해보거나 학문으로 연구하진 않은 자생적인 전환연구자라고 할까요. 전환은 전문지식과 기술이 아니라 일상적인 말로 삶의 바뀜을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모든 분야가 같이 바뀌려면 근본의 가치관, 생각,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싶었어요.
칼럼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단순해요. 과거와는 달라야 한다. 그러면 무엇이 달라야 할까. 마음, 생각, 감각 그리고 생활이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줄기였어요. 기후위기 시대를 살며 우리는 이 세상을, 우리가 사는 현재를 어떤 눈으로 보아야 할까에 대한 관심사가 컸기에 칼럼의 주제나 소재도 하나로 모으기보다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최근의 칼럼에서 “자연재난은 늘 있었지만, 인간이 원인을 제공하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는 인류세의 재난은 성격도 규모도 다르다. 그 위험과 한계를 인식하면서 인간사회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 이를 생태민주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포스트 윤석열 시대를 준비한다면 이런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항공기로 돌진하는 새 떼를 막을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생태와 민주주의는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까요?
기후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19세기 말, 국제사회에서 논의하기 시작한 지도 30년이 넘었습니다. 없었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죠.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더 많은 사람이 이를 인식해야 합니다. 정책이 변화하려면 시민들의 요구가 있어야 하고, 정치인들은 그 요구를 반영해야 하죠. 하지만 개선 속도보다 악화 속도가 더 빠른 것이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문제가 뭔지도 알고 답도 있고 과정도 보이는데, 제도적으로 빠르게 바뀌지 않기도 하고요.
지금은 각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봅니다. 정치적 입장을 넘어 시대적 윤리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논의를 해야 할 때입니다. 성장과 분배에 의존하는 과거식 민주주의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생태국가를 근간으로 하는 개헌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지요. 정권을 바꾸는 것보다 더 큰 전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국면이 아닐까요.

오랫동안 기자로 활동하시고, 잡지 창간 등 언론과 미디어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오셨습니다. 환경 운동 안에서 미디어는 어떤 기준과 태도로 소통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전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셨을 것 같은데요.
<바람과 물>을 만들 때는 ‘이 잡지는 누구 보라고 만드는 거냐’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창간호부터 마지막 12호를 만들때까지 계속 고민이었는데, 결국 ‘누구 보라고’ 만들 수는 없더라고요. 기업에서 마케팅을 한다면 상업적인 타깃이 존재하겠지만, 우리는 그런 마케팅보다는 기후운동, 사회적 변화를 목적으로 했기에 대상을 정한다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굳이 대상을 정한다면 3.5퍼센트의 기후시민1을 떠올렸어요. 기후문제가 워낙 광범위하기에 각각의 문제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좀더 큰 그림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 타깃을 정확히 정했던들 잡지 콘텐츠를 그들에게 딱 맞춰 제공할 수 있었을까요? 결국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진실하고도 새로운 이야기라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앞뒤가 잘 맞는 정합성을 갖고, 좋은 느낌과 인식의 변화를 주는 콘텐츠라면 반드시 접속하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단 한 명이어도 그가 변화하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보람있는 일일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녹색연합의 후원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한국의 도시화율이 90% 이상이라고 해요. 모두가 도시에 살고, 도시적인 감각을 갖죠. 여행을 떠나도 ‘편안한 자연’에서는 문제가 없는데, 예상치 못한 야생을 만나면 화들짝 놀라잖아요. 가끔 북한산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면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도 해요.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높은 산이 있다니, 우리 곁 가까이에 생태적인 세계가 존재하는구나. 그런 느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와 자연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 말이죠. 더 많은 생태적 세계를 감각하는 힘을 함께 기르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자연뿐만 아니라 터프한 자연! 녹색연합은 그런 터프한 자연, 즉 야생이라는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단체입니다. 함께 더 자주, 깊게 참여하자는 제안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짧은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녹색연합’ 팻말을 들고 녹색희망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는데요, 녹색연합 활동을 지지하는 시민, 그리고 적극적으로 관계 맺는 후원자들과 더 가까이 만날 준비를 이미 마친 것만 같은 에너지였습니다. 새로우면서 진정성이 담겨야 하는 운동의 메시지에 대한 고민, 가슴 벅찬 현장과 끝나지 않는 투쟁을 대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특별한 울림으로 남습니다. 예쁘고 정돈된 자연보다는 터프한 자연을 만나고 싶다는 의지도 확인했으니, 자 이제 이 인터뷰를 보는 여러분께 손을 내밀어 봅니다. 녹색연합과 터프한 자연을 만날 준비 되셨나요?
인터뷰와 정리 : 홍보팀 배선영
사진 : 홍보팀 김다정
한윤정 대표는, 1991년부터 2016년까지 25년간 경향신문 기자로 일했습니다. 문화부 기자 시절(2004년), 신학자이면서 ‘과정 철학자’인 존 캅 교수를 취재했고, 그의 책 <지구를 구하는 열 가지 생각>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국제 네트워크인 ‘생태문명원’ 한국법인(한신대학교 생태문명원)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생태전환 매거진 「바람과 물」을 만들었고, 정기적으로 경향신문에 칼럼을 기고합니다. 함께 쓴 책으로 <생태문명 선언>, <기후 돌봄> 등이 있습니다.
- 기후시민 3.5 : ‘인구의 3.5%가 행동하면 사회적인 변화가 가능하다(에리카 체노워스, 사회학자)’는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진행된 기후 캠페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