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녹색 인플루언서와 맞닿는 순간, 초연결!
초연결 첫 인터뷰이로 모신 신승우 작가는 나무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영화학과를 전공해 촬영/조명 감독으로 활약하던 그는 2024년 전시 ‘나무의 시간’이 열렸습니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산업화와 개발 속에서 잊혀가는 오래된 숲과 나무의 이야기를 포착하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 가능성을 물었습니다. 나무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신승우 작가는 언제나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한 명 한 명의 나무를 소중히 응시하는 그가 어떤 심정으로 작업해왔는지, 함께 귀 기울여보세요🌳

● 나무를 응시하면 언어를 초월하여 연결되는 ‘사건’이 일어난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이 사건들을 사진이라는 매체로 표현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언어로 통하지 않는 나무와 ‘연결되었다’ 혹은 ‘통하고 있다’ 내지는 ‘같이 있다’라는 본능적인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반려동물과 눈을 오래 마주치고 있으면 문득 상대의 살아있음을 감각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에요. (아는 것과 감각하는 것은 정말 다르지요..!) 저에게 나무의 생과 존재는 구체적인 언어보다는 불확실한 이미지로서 감각되고 와닿았어요. 제가 감각한 것을 충실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사진을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 경제 자원이 아닌, 시간과 기억을 가진 한 존재로 나무를 바라보는 관점이 인상 깊었어요. 고유의 언어를 상상하고, 통과해온 시간을 헤아릴 수 있다면 나무를 객체로 보는 대신 연결과 존중의 태도를 갖게될 것 같아요. 올해 <나무의 시간> 전시의 키워드였던 ‘애니미즘’과 ‘생태주의’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청해 듣고 싶어요.
뿌리 깊은 자본주의의 논리는 인간을 제외한 비인간존재들을 생이 아닌 자원으로 보고, 쉽게 해칩니다. 여러 개발이나 재난 등으로 죽어간 나무, 동물들은 재산 피해로만 집계되거나 언급조차 되지도 않아요. 자본주의와 도시는 너무나 견고하여 사람과 나무, 동물의 생의 크기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쉽게 지워지고 가려져버립니다. 이런 가운데 틈을 낼 수 있는 것이 애니미즘이라고 생각했어요.
오래된 나무들을 찾아다니다가 일본의 ‘미와’라는 마을에 가게 되었는데요. 마을에 있는 ‘미와산’을 신으로 모시고 보호하는 신사가 있었어요. 제국주의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신도의 원형을 보존하며 애니미즘을 실천하는 곳이었습니다. 애니미즘(animism)의 아니마(anima)라는 단어는 ‘영혼’(신)이라는 뜻도 있지만 ‘생명’을 의미하기도 해요. 마을 사람들이 미와산을 신으로 여기는 마음은 미와산이 그 자체로 살아있음을 믿는 마음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마을공동체는 자연스레 산을 존중하고 지켜주며, 축제날에는 온마을 사람들이 산 앞에 모여 평화를 기원하고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고대 종교인 ‘애니미즘’은 삼라만상을 신/생명으로서 인지합니다. 삼라만상(비인간존재)의 살아있음을 상상하는 ‘애니미즘적 상상력’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생태주의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한국 곳곳에서는 곤돌라, 케이블카, 공항이 건설되고 있고 예정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무의 살아있음을 감각하고 이해한다면 이런 파괴적인 증식이 아니라 다른 모습의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먼저 쓰러져 간 나무들을 애도하고 견고한 자본주의 세상에 틈을 내고 싶은 마음에 애니미즘, 생태주의를 키워드로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 영화 <모노노케 히메>, <산이 부른다>, 도서 「애니미즘의 상상력」, 「애니미즘과 현대 세계」를 추천해 드립니다!
● 인간의 짧은 삶과 대비되는 나무의 수명을 마주할 때마다 시대를 초월하는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나무의 나이를 짐작하며 어떤 상상을 자주 하시나요?
수백수천 년의 시간이 사람으로서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하고, 미지의 것이라 우주처럼 느껴집니다. ‘숭고함’이라는 낯설고 어려운 단어를 실감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사람은 살아온 시간을 어떻게 감각할까 생각해 보면 경험에 대한 기억으로 하는 것 같은데요. 이 나무는 어떤 것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상상합니다. 주목이 1년에 1cm씩 자란다고 해요. 지금은 아득하게도 거대한 나무가 천 년 전에는 흔히 보이는 어린나무들 중 하나였을 거란 생각에 또 감탄하기도 하고요. 나무는 인간과 다른 나무만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스쳐 갔을 여러 생명들과 풍경들을 상상합니다. 이 나무의 기억에 나도 스치듯 포함될 수 있을까? 하는 상상도 하고요.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새삼 거대한 자연의 흐름 속에 나 또한 함께 흘러가고 존재하고 있구나 실감합니다.

● 처음으로 나무와 연결되었던 강렬했던 순간이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산속 학교 한가운데 누워 별똥별이 떨어지는 소리를 한참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소리가 저를 활동가로 이끌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먼지)
가리왕산에서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알파인스키장 건설을 위해 파헤쳐지고 잘려 나간 나뭇더미를 본 경험이 지금의 활동까지 이어져 온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 나무의 생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하고, 그저 풍경의 일부로만 생각했었는데요. 처참하게 베어져 쌓여있는 나무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시신들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살아있는 것이었는데, 죽어서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모습을 보고 여러 감정이 휘몰아쳤던 것 같아요. 애도의 마음, 그리고 인간, 자본주의 논리에 대한 증오도 있었습니다. 이건 누가 보아도 잘못된 일이다, 뭐라도 해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들로 자연스레 이어졌습니다.
● 사진으로 기록한 나무들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마을이나 원시림 등의 특정 장소를 찾으시나요? 혹은 어떤 특징을 가진 나무를 찾아가시나요? 우연히 만나는 나무에게 반가움을 느끼는지도 궁금해요.
기본적으로 수령 1,000년을 넘거나 남짓한 오래된 나무라면 무조건 찾아가려 합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워낙 다양해서 하나하나 무척 소중하거든요. 4.3 사건 당시 주민 한 명을 숨겨준 팽나무, 홍수에 떠밀려와 우연찮게 민가 옆에 자리를 잡은 향나무, 오랜 세월 발견되지 않아 사람과의 접점이 없는 원시 자체의 나무 등등.. 오래된 나무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지만, 항상 그 나무가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듣는 것들 좋아합니다.
수령 1,000년을 넘는 나무를 찾아가기는 해도 아쉽게도 아래 질문에서 답변드린 나무와 이어지는 ‘연결감’ 같은 것이 항상 느껴지진 못했답니다. 오히려 깊은 원시림 한구석에 있는 나무에게서, 길가에 서 있는 나무에게서 찌르르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 응답을 받는 나무는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기에 항상 감각을 곤두세우고 우연한 만남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무에 이름을 붙이고, 수령을 측정하고 분류하는 것조차도 인간중심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원칙에 갇히지 말자고 마음을 먹는 요즘입니다!) 문득 가리왕산 등산로에서 만난 나무가 생각나네요.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찌르르’하는 연결감을 마주해 종종 찾아갔답니다! 잘 계시려나요?
● 나무를 찾으면 나무에게 천천히 말을 건다고 하셨어요. 인사도 꾸벅 하신다고요. 어떤 마음인지 궁금해요. 어떤 나무와 가장 친하신가요?
나무의 ‘살아있음’이 사람의 ‘살아있음’과 다르지 않다고 많이 느꼈어요.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나누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만나면 코 인사를 나누듯, 나무에게도 인사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셔터를 누르기 전에 우선 나무를 잘 알고, 이해해야 한다 생각해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합니다. 인간과 언어로 통하지 못하다 보니 비언어적인 소통의 방법을 많이 찾고 행합니다. 구석구석 둘러보고, 나무의 결을 만져보고, 안아보고, 흙 아래 뻗어 있을 뿌리의 크기를 상상합니다.
특히 가장 친하고 오래 보아온 나무는 강원도 정선 두위봉에 있는 주목인데요! 만난 지도 어느덧 7년 정도 되었습니다. 수령이 1,200년 된 이 나무를 이해하려면 우선 가능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았어요. 적어도 1년에 한 번 이상, 많으면 계절별로 나무를 찾아가 종종 밤을 같이 보내곤 한답니다. 주목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내적친밀감이 높아져서 지금은 제법 친구처럼 지낸다고 생각해요. 예전의 인사가 배꼽인사였다면 지금은 ‘여어!’의 느낌이랄까요.

● 한밤중 원시림을 찾아가는 과정이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활동가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편리하고 안전한 스튜디오가 아닌 자연을 무대로 활동하는 사진가는 어떻게 장비를 준비하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마음가짐인지도요!
여건이 허락한다면 백패킹 장비를 들고 가 나무 인근에서 작업을 합니다. 나무 구석구석을 자세히 바라볼 여유도 생기고 나무가 바라보는 일몰, 밤, 일출 등 모든 시간을 겪어볼 수 있거든요. ‘나무의 시간을 어떻게 감각하고 담을 것인가’가 모든 작업과 함께하는 질문이거든요. 1,000년의 시간을 쫓을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선에서 오롯이 나무와 함께하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에 주는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자 BPL*, LNT* 수칙을 철저히 지킵니다. 경량텐트와 경량침낭 등을 챙기고 음식은 가급적 비화식으로 준비하려 합니다.
기본적인 카메라 장비들 외에 독특한 게 있다면, 현미경에서 떼어낸 렌즈와 그걸 카메라에 장착할 수 있는 어댑터를 챙깁니다. 나무를 멀리에서도 보고, 가까이에서도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 외에도 장노출 촬영을 위한 ND필터와 타이머, 광각부터 망원렌즈, (때에 따라) 조명까지.. ‘어떤 시간에 어떤 이미지를 담아야지’하는 계획을 세우기는 하지만요. 그때그때 나무와 함께하며 감각하고 주목하는 포인트가 다를 수 있다 보니 촬영 장비는 항상 만반의 준비를 하는 편입니다.
*BPL이란, BackPacking Light의 약자로 ‘가벼운 짐싸기’를 뜻합니다. 짐의 정량적 무게보다는 자연에 들어갈 때 불필요한 짐을 최대한 줄이는 것을 지향합니다. 자연을 사랑한다면 자연 그대로를 보존할 수 있는 캠핑을 실천해야겠죠?
*LNT란, Leave No Trace의 약자로 ‘흔적 안 남기기’를 뜻합니다. BPL이 캠핑에서 주로 쓰인다면 LNT는 모든 야외 활동에 적합한 모토입니다. 조용히, 흔적을 남기지 말고, 접촉을 최소화한 채 다녀오는 것이 자연에 대한 예의입니다.
● 스케일 상관없이 마음껏 작업할 수 있다면 어떤 결과물을 만들고 싶으세요? 물적,인적 자원의 한계가 없을 때의 행복한 상상이 궁금합니다.
국경과 이념을 넘어 세계 곳곳에 있는 오래된 나무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정말 오래된 꿈은 스웨덴에 있는 수령 9,567년의 ‘Old tjikko‘* 나무를 만나는 것이고, 이란을 비롯한 중동 지역에 있는 오래된 올리브나무들, 소코트라의 원시나무들, 아프가니스탄의 Wakhan corridor*의 오래된 풍경들도 보고 싶습니다. 스웨덴을 제외하면 전쟁, 이념의 차이로 인해 가기 어려운 땅들이네요. 물적 인적 자원 뿐 아니라 더 많은 게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 앞에 국경이나 이념, 체제가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자연도, 사람도 모두 연결될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합니다.
*올드 티코(Old Tjikko)란, 스웨덴 달라르나 주에 살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올드 티코가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닌, 수천 년 동안 새로운 뿌리와 가지를 내려 자란 군락이라는 것이 밝혀져 이제는 전 세계 클론 나무 중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그리고 노르웨이 가문비나무/독일가문비나무(Picea abies) 중 가장 오래된 나무로 불립니다.
*와칸 회랑(Wakhan corridor)이란,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에 위치한 동서로 가늘고 길게 뻗은 회랑 지대입니다.

● 나무가 지금 우리 세상을 보고 뭐라고 말할까요?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산불로 전소된 산천 두양리 은행나무를 보러 간 적이 있어요. 새카만 숲을 보고, 재가 되어 바스러지는 땅을 걸어가며 <모노노케 히메>의 재앙신을 떠올렸답니다. 인간의 잘못으로 죽어간 수만 명의 나무가 원혼이 되어 재앙신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산불로 재가 되어버려 생명과는 거리가 먼 풍경 속에서 피어오르고 있던 새싹을 발견하기도 했답니다. 산불이 겨우 진화된 지 며칠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도 말이죠. 슬퍼하고 있던 것도 무색하게 새싹은 피어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이야기하자” 말하더라고요.
지난 ‘나무의 시간’ 전시에서 신승우 작가는 작품 판매 수익금을 녹색연합에 후원했습니다. 나무를 찾아가 기록하고, 상상하고, 소화한 결과로 환경단체를 후원하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남다른 고민의 깊이가 느껴졌습니다. 자연과 인류의 관계, 한 명의 나무와 한 명의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도록 제안하는 그의 작업이 유독 반갑고, 또 필요한 시기입니다.
마침 카페꼼마 여의도점(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8길 16, 2층)에서 4월 14일(월)부터 5월 11일(일)까지 신승우 작가의 전시 ⟨나무의 시간⟩이 열린다고 하니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분은 꼭 가보세요. 운영시간이 [월금 07:30 – 21:30 / 토일 10:00 – 20:00]으로 넉넉합니다. 사진은 언제나 화면보다 인화지로 봐야 멋지다는 거 다들 아시죠? 더 궁금한 점 있다면 ☛갤러리 아미디☚ 게시글을 참고하셔요. 그럼 다음 작업 역시 응원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316호|초연결 ‘사진으로 나무를 통역하는’ 신승우 작가 인터뷰
신승우 작가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none_the_less___/
질문 : 홍보팀 배선영, 김다정, 이음팀 신지선, 소하연
정리 : 홍보팀 배선영, 김다정
*이번 글에서는 인터뷰이의 언어에 동감하며 나무를 ‘명’으로 세었습니다. 나무를 한 그루로 셀 때와 한 명으로 셀 때, 마음에 어떤 차이가 생기는지 살피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이 인터뷰를 끝까지 읽어주신 분께도 이런 마음이 전해지길 바랍니다.